아래글을 쓴후 회사생활을 한지도 거의7~8년이 되었나봅니다 우여곡절은 계속이지만 변화한 것은 이나이에도 제법 현장생활에 익숙해져 기술적인 경험은 더욱쌓이고 콤퓨터활용등은 젊은 사람들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될 정도는 되었습니다 급여도 년봉6천이며는 자존심에 당장 때려치고 싶어도 참아야 되고.... 언제까지 일지는 모르지만 걸을 수 있는한 계속하려 하는데......? 사람일 잘 모르지요 인생 2막에 들어 암울하던 생각이 울컥나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이글을봅니다 이제는 인생3막입니다 2018.10.30
친구여! 언제라도 받아 주고, 늘 곁에 있고, 작은 위로가 될것 같은, 소중한 친구들에게 이글을 쓰고 있습니다. 봄날의 햇살처럼 따사한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밀려오는 잔잔한 그리움들에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봅니다.
그동안 친구들을 찿아 뵙지못하고 소홀히 하였던 점 너그러히 용서하여주십시요. 친구는 저절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고, 시간과 마음을 내어 주어야 하는 것인데..... 그러나 늘 마음만은 친구들과 함께 였습니다. 오늘 따라 고향의 품과 같은 친구들의 포근한 정이 그립습니다.
우리가 사람 같이 살 수 있는 날들이 얼마나 더 남았겠습니까? 무엇을 욕심을 내며 무엇을 더 움켜지겠습니까? "태어 날때는 손을 움켜지고, 죽을 때는 손을 핀다."고 하더외다. 세상사 바람처럼 살다가 구름처럼 떠나는 것을.....
마음고생으로 수년간 휴면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떨쳐버리고 다 잊어 버리기로 하였습니다. 내 아직은 수양이 덜 되어 용서가 않되나, 그냥 다 잊어 버릴려 합니다. 난 다행히도, 특이하게 잊어버린다 생각하면 그냥 잊혀져 버려지더외다.
호주사업의 투자가 사기로, 떼 돈을 날린 채 한 동안 슬럼프에 빠져있다가 간신히 안정을 되찿아 가고 있습니다. 누구를 만나는 것도 두렵고, 창피하여, 친구들, 일가친척, 동창회를 비롯한 모든 모임들을 끊어 버리고,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어느 조그마한 회사에 다니며 은둔의 삶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억척스런 아내덕으로 경제적인 여유는 ......
제기럴, 성공한 삶을 살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고 발버둥 쳤는데, ...... 이제 다시 꿈을 꾸기에는 바램도, 의지도, ..... 나이 듦에는 나도 별 수 없이 여기에서 스러져가야 되나봅니다. 아마 나의 그릇은 여기까지 였던가 봅니다.
지금에사, 이 나이에 뒤돌아보니, 좋은길, 빠른길, 안정된길, 실제로 주어진 여건과 기회가 많았었는데,... 왜 이 어렵고, 험난한한 길만 택하여 왔는지 나자신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기사 이만큼 인것도 감지덕지, 아내덕, 그 보다도 더한 하느님의 은총이었겠지만.......
하느님을 찿아 성당에 다닌지도 10 달이 넘었습니다. 세례를 받은지 100 일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첫 고해성사도 하였습니다.
아직까지 사회적인법에 저촉될 죄는 없었지만 , 그래도 그동안 살아생전 모든죄 사함을 받고, 정신적이라도 조그마한 죄를 짓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고 있습니다. 모두가 내 탓 이라고 생각하니 모든것이 편안하여지고, 감사하여집니다.
숨막 힐 듯한 회사분위기. 어느 아줌마(과장) 전화통을 붙잡고 소리 치고, 짜증내는 소리에 정신이 혼미해 지지만 아니 이 보다도 더 한것도 참아냈는데, 겨우 이정도 쯤이야 자장가 소리려니 위안합니다.
아파트 관리비를 보태고, 아이들 용돈, 늙으신 어머니 용돈을 주는 것이 훨 났지 않겠습니까
제기럴, 노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집에서 하는 일 없이 산에 다니고, 동네 도서관에나 다니는 것보다, 얼마나 백번 천번 다행스런 일이지 않겠습니까? 이래도 기술자면허라도 있으니 이렇게 일하고 싶을때 까지는 일 할 수 있을것 같기도 합니다 만....
오랜 세월 친구들에게 다가서지 못해 낯이 설어 헛푸념 ,짝사랑 일진대 그냥 혼자 술 한잔 기울이며, 술기운에 아니, 외로움에 취해서 인가 봅니다. 건강들하시구. 오래오래들 사시구려.
2011년3월31일 잠실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