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평 용문산(龍門山, 1,157m) 우중산행 ♡
(용문사, 은행나무, 한강기맥, 남•북한강 분수령)
1. 산행 일시 (5시간 45분)
2026년 6월 20일 (토) 08시 00분 ~ 13시 45분
2. 산행 경로 : 일자종주 원점회귀 산행 (10.1km)
용문사 관광단지 주차장(182m) - 용문사 - 은행나무 - 마당바위 - 정상(가섭봉, 1,157m) - back - 상원사 방면 직진 - 용문사 - 주차장 (원점회귀)
3. 산행 소감
경기도 양평 용문산.
실로 용이 또아리 틀고 있음직한 산세를 갖고 있는 산이다.
옛 지명으로는 미리산이라 하니, 지금 한자어와 일치한다.
근데 나는 미리산이 더 정겹다.
순 우리말로 지은 산과 지명이 더 우리내 스러운 이유이다.
3번째 방문지이다.
다행히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기에 전혀 다른 산행과 진배없다.
처음엔 인근 유명산과 용문산을 연계산행 했더랬다.
당시엔 오늘처럼 나무데크도 깔리지 않고, 있더라도 이제 막 공사 시작한 철데크 난간을 아슬아슬 밟고 지나갔기에 상당히 위험스런 기억이 있다.
두번째엔 한강기맥길이라 해서 이름도 잘 모르는 구간에서부터 가로 종주를 했는데, 상당히 힘든 기억과 함께 유명산과 용문사 은행나무도 패스하는 '속 빈 강정'의 산행을 했다.
오늘 세번째 산행.
때마침 비가 내려준다.
다행인 건, 바람 없이 대지만 촉촉히 적시워 주는 고마운 비란 거다.
일부 산바라기님들은 투덜대지만, 오히려 한여름 뙤약볕 맞고, 살 꼬실르며 헉헉대는 산행보다는 휠씬 운치있고, 낭만있다.
대신 반대급부로 뒤따라오는 단점
(꿉꿉함, 등산화 물먹음, 산길 위험성, 주변 조망 포기 등)
도 있지만.
약 4시간 반 여를 달려 용문사 관광단지 주차장에 당도한다.
지금은 사찰 입장료가 폐지되어 돈 몇 천원 가지고 옥씬각씬할 필요는 없다.
정확히 한 주 전, 해남 땅끝지맥길 종주 여파로 다리 상태가 영~ 꽝이다.
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미스트 흠뻑 머금은 산공기에 피부 마사지나 해 볼 요량으로 가장 후미에서 천천히 출발해 본다.
날씨가 후두둑 맞을 빗방울에도 전혀 꿉꿉하진 않다.
아직까진 장마가 시작되진 않아서 습도가 높진 않다.
등산스틱을 접을까도 했지만, 산행의 유일한 동반자를 놓고 갈 순 없기에 손목에 단단히 붙들어 데리고 다닌다.
(용문산 산세를 감안했을 때, 스틱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런 날이면 두꺼비가 마중나올 법 한데, 산행 내내 보질 못했다.
비옷을 걸치고 걷는 길,
무릎 아래 바지춤으로 빗물이 여미는데, 이게 참 고민이다.
조금 있으면 등산화 안으로 이놈들이 침투작전을 벌일 듯 한데 주인 잘못 만난 등산화한테 조금 미안하다.
그렇게 많이 내리지는 않았을텐데 용문산 계곡물의 유량이 엄청나다.
하얀 포말이 물색깔은 투명이 아니라고 하듯이 바위 사이를 미친듯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이런 기세가 정상 7부 능선까지 이어지니, 과연 이름그대로의 용트림 산이라 할 만하다.
산행 이후 정리하면서 안 사실인데, 용문산이 남한강과 북한강의 분수계라 한단다.
시간 게의치 않고, 자연스레 용문사 사찰을 비를 벗삼아 거닐어 본다.
1907년 항일투쟁과 1950년 6.25전쟁으로 사찰은 전부 소실되었지만, 지금의 산사는 옛 기억은 말끔히 지워내 처마의 '풍경' 소리만 빗물과 콜라보 공연 중이다.
내 시선을 유독 붙잡은 공간이 있다.
바로 대웅전 전면 양쪽의 문짝 문양이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어느 산사에서 본 그 문양이다.
문살을 평소의 격자 문양 대신 불로장생의 십장생을 돋을새김해 놓았으니, 장인의 노력과 노련미가 내 눈에 고스란이 들어온다.
아마도 다시 중건할 때 오래도록 무탈하게 남아있길 바라는 염원이 담기지 않았을까.
계단을 타고 내려오며, 이곳 용문사의 명물 '천년 은행나무'를 대한다.
얼마 전까지 우리나라 현존 최고 높이(36m)에 최고 오래된(1,100여 년) 은행나무 타이틀을 달았는데, 오래된 건 강원도 원주시 반계리 은행나무(1,300년)에 뺏겨버렸다.
일본놈들이 1900년 초반 항일의병 소탕 목적으로 전체 산사를 불질러버렸다는데, 이 은행나무만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하니 분명 신령님의 영험함이 깃들어 있다 하겠다.
어찌나 잘 관리했던지, 천년이 넘었음에도 은행잎들은 시든거 하나 없이 전부다 탱글탱글 초록에 물들어 있고, 가까이서 본 기둥가지들도 노익장 저리가라 이다.
근데 멀리서 본 이 나무의 형상은 사실 너무 볼 품없다.
제 멋대로 하늘 올려보며 삐죽삐죽 가지를 늘어트린 형세다.
아직 가보진 못했지만, 사진으로 대한 반계리 은행나무를 그래서 더 가보고 싶은 이유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용문산 산행을 해 보자.
아주 천천히 발바닥 전체로 디디면서 걸음걸음을 옮긴다.
이제는 산행 보폭이 습관화된 때문이다.
산꾼들에게 무릎 보호는 생명이다.
바로 옆으로는 시끄러물 만치 계곡물이 엄청나게 불어있다.
사실 이 백색소음과 계곡을 대하는 것 만으로도 산행은 끝났다.
계곡 한가운데 떡~ 하니 칼날로 절단낸 듯한 마당바위까지 폭포수는 이어진다.
그리고 여기까지는 쉬이~ 오르막길이다.
그 다음 2단계.
정상까지의 까칠한 등로가 기다린다.
혼자 따다닥~ 오르면 힘들겠지만, 옆 동료분들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오르니 정상의 하늘이 조금씩 비추인다.
이 구간에서 내 친구 스틱이 큰 도움을 준다.
확실히 무릎 하중과 중심축 잡는 데에는 이 친구 이상 없다.
휴전선 철책선도 정상의 노랑 철제 은행나무도 그리고 정상석도 예전 그대로다.
다만 나와 주변 풍광만이 바뀌었을 뿐이다.
애초 장군봉을 거쳐 상원사로 한바퀴 돌아오고 싶었지만, 여기까지 무탈히 온 것 만으로도 감사하다 여기며 왕복 원점산행으로 내려가련다.
대신 울퉁불퉁 계곡길은 하산길로는 위험하기에 살짝 옆길로 우회해 내려간다.
날 좋은 날 용문산 정상에서는 설악산, 금강산까지 보인다는데, 상관없다.
오늘은 보슬보슬 비와 버무려진 재밌는 산행을 했기에.
위험해서 사고나는 게 아닌, 방심해서 사고가 난다.
우중산행도 산꾼들에게는 선물이 아닐까.
산 아래 사람들에게는 미친 소리로 들리겠지만.
ㅎㅎㅎ
4. 산행지 개요
■ 용문산 (龍門山, 1,157m)
1. 개요
경기도 양평군에 있는 높이 1,157m의 100대 명산이자 국민관광지이다.
경기도에서 화악산(1,468m), 명지산(1,267m), 국망봉(1,168m)에 이어 4번째로 높다.
광주산맥(廣州山脈)의 주봉이며 한강기맥에 속한다.
백두대간의 오대산에서 갈라져 나온 한강기맥이 서쪽으로 달리며 계방산, 발왕산 등을 일구고, 경기도에 들어와 가장 높게 솟구친 봉우리가 바로 용문산이다.
남한강과 북한강의 수계를 가르는 거대한 분수령이다. 용문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는 남쪽으로 흑천이 되어 남한강으로, 북쪽으로는 조종천 계열과 만나 북한강으로 흘러든다.
옛부터 경기의 금강산이라 불리워질 만큼 기암괴석과 고산준령을 고루 갖춘 경관이 뛰어난 산이며, 특히 신라 선덕여왕때 창건한 용문사와 높이 62m, 둘레 14m에 달하는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호)가 있는 등 역사, 문화적 가치가 높은 점을 고려하여 산림청에서 선정했다고 한다.
경기도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으로 미지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는데 조선을 개국한 이태조가 등극하면서 `용문산'이라 바꿔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2. 지리
용문산은 산세가 상당히 큰 산이다.
한반도의 주요 대간, 정맥들에서 벗어나 별개의 단독 산 군으로 존재 하고 있고 위치 또한 경기도에 있기에 막연한 느낌으로는 그다지 크고 거친 산이 아닐 것 같은 인상을 갖기 쉬우나,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산의 동쪽 방면은 주로 규암(차돌) 계열의 날카로운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어 대체적으로 매우 험한 지형이다.
산세가 크다 보니 능선 중간 중간이 도로와 고개 등으로 끊어지며 별개의 다른 산인 것처럼 이름이 붙어 있는 봉우리들도 여럿 있기는 하지만 지형지도를 보면 불교 만(卍)자 또는 열 십(十)자 의 형태로 능선이 크게 발달 하여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북쪽 방향으로는 문례봉(폭산)을 거쳐 봉미산을 지나 가평군 보리산까지 이어지는 북릉이 있고, 동쪽으로는 한강기맥을 형성 하며 단월산, 싸리봉을 거쳐 도일봉으로 이어지는 동릉, 남쪽 방향으로는 주 능선인 서남릉이 장군봉(1,065m), 함왕봉(966m), 백운봉
(941m), 두리봉, 삿갓봉, 태봉, 절토봉, 큰골봉으로 고도를 점차 낮추어 가며 용문면 삼성리 까지 이어 진다.
이 서남릉과 북릉은 일반적인 산의 한 능선으로는 길이가 상당히 길다 보니(각각 약 14km) 이를 나누어 구분하여 서남릉은 '한강백운단맥'으로, 북릉은 '장락단맥'이라는 짧은 산맥 으로 별도로 분류하고 있기도 있다.
마지막으로 서쪽 방향으로 향하는 서릉에는 마유산(유명산)(862m), 소구니산(801m)과 중미산
(834m)으로 이어지며 동릉과 더불어 한강기맥의 한 구간을 형성 하고 있다.
이 외에도 몇개의 지능선들이 있는데, 용문봉(971m)이 있는 진등(아랫 부분에 유격장이 있는 능선이다), 현재 가섭봉 주 등로 이기도 한 동남릉(동남릉에는 이름 있는 큰 봉우리는 없으며 용문시내 인근의 곰산까지 이어진다.), 서릉에서 갈라져 함왕골(사나사계곡)을 사이에 두고 서남릉과 나란히 달리다 용천1,2리 사이에서 벽봉을 마지막으로 멈추는 봉재산 능선, 단월산에 못미쳐서 동릉 에서 갈라져 상봉과 중원산을 이루는 중원산 능선 등이 있다.
그 외 능선의 주 경로에서는 갈라져 지엽적으로 연결되어 용문산괴(山塊)에 속해 있는 봉우리들로 용조봉(631m), 어비산(823m), 대부산(743m), 편전산(378m) 등이 있다.
정상 지역에서는 용문산 정상 고원부를 넓게 차지하고 있는 공군 8145부대와 방송, 통신사의 시설물에 가려져 있어 조망이 남쪽~ 북동쪽으로 제한적이다. 치악산은 조금 흐린 날씨에도 잘 보이고, 멀리 보면 태기산이나 방태산, 오대산, 계방산, 발왕산, 가리왕산도 볼 수 있다.
가시거리가 좋은 날에는 설악산, 백두대간 향로봉과 북한에 위치한 어은산, 심지어 금강산 능선까지도 보인다.
이름의 유래로는 본디 미지산(彌智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산이었으나, 조선 태조 이성계가 등극하면서 용문산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본래 이름인 미지(彌智)는 미리(彌里)의 옛 형태고, ‘미리’는 '용’의 옛말인 ‘미르’의 방언이다. 즉 미지산이나 용문산이나 뜻에서 별 차이가 없다.
3. 용문사
사실 산 자체 보다도 이 산에 있는 용문사라는 절이 더 지명도가 있는 편인데 사실 이 용문사 자체는 일제시대에 완전 소실 후 근현대에 재건된 절 이라 일부 유물을 보유 하고 있기는 하더라도 그다지 별다른 것은 없고 유명세의 진짜 이유는 이 곳에 있는 거대한 은행나무다.
4. 포토 포인트
● 용문사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제30호)
높이 약 42m에 달하는 동양 최대 규모의 은행나무
앞.
가을철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하늘을 덮은 모습은 용문산 산행의 가장 상징적인 장면임. 나무의 거대한 규모를 담기 위해 광각 렌즈를 활용하거나, 멀리서 사찰 전경과 함께 담아내는 것이 전통적인 촬영 핵심임.
● 가섭봉 정상 조망 (해발 1,157m)
용문산 최고봉인 가섭봉 정상석 부근에서 바라보는 남한강과 양평 일대의 대지.
경기 북부와 강원도 경계의 첩첩산중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날씨가 좋은 날에는 팔당호 너머 서울 도심까지 시야에 들어옴.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한 장쾌한 고산의 풍경을 촬영하기에 가장 좋은 지점임.
● 용문사 계곡 출렁다리
용문사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작은 출렁다리와 기암괴석 계곡.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과 붉게 물든 단풍(가을 기준)이 다리와 어우러져 전형적인 한국 산하의 미를 보여줌. 다리 중앙에서 계곡 위쪽을 바라보며 촬영하면 용문산의 울창한 숲과 물줄기를 입체감 있게 담아낼 수 있음.
5. 군사기지
정상에 공군 방공 레이더 부대(공군 8145부대)가 위치해있다.
간부 숙소는 옥천2리 마을회관 인근에 있다.
수도권 거주자들이 TO가 나면 지원해볼만한 부대이다.
제6보병사단의 자랑거리인 용문산 전투가 벌어진 장소이기도 하다.
6사단 예하 제2보병여단은 아예 스스로를 용문산 부대라고 부를 정도다. 현재 부대는 철원군에 있지만...
2008년 2월 20일 육군 소속의 UH-1H 헬기가 환자 후송후 복귀하던 도중 추락하여, 선효선대위를 비롯한 국군철정병원소속 군의관과 간호장교, 승무원 등 탑승자 7명 전원 순직하는 사고가 있었다.
■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楊平 龍門寺 銀杏나무)
1. 개요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에 위치한 절인 용문사에 위치한 은행나무로, 천연기념물 (구)제30호로 지정되어 있다.
2. 상세
신라 경순왕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신라가 고려에 넘어가는 것을 한탄하면서 금강산으로 길을 떠나는 길에 심었다거나, 의상대사가 지팡이를 꽂아놓은 것이 자라났다는 전설이 있으나, 2024년 국내 연구진이 무인자동차에 쓰이는 라이다 장치로 측정한 결과 용문사 은행나무는 서기 1007년에 심어진 것, 즉 고려 목종시절에 심어진 것으로 밝혀졌으므로 마의태자 이야기(936)나 의상대사(625~702) 이야기는 허구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인지도로는 정이품송과 함께 투탑일 정도로 잘 알려진 나무로, 유명한 이유는 나무의 높이와 나이 때문이다.
한때 국내에서 가장 높고 오래된 나무로 알려졌었다.
원래 높이가 67m에 달해 유실수로서 동양권에서 최대 거목이었으나 2001년경 고사 위기에 처하자 상당한 규모로 가지치기를 한 끝에 지금은 약 38.8m 및 97.9톤으로 측정되었다.
그러나 위 사진들에서도 볼 수 있듯이 1970년대는 물론 일제강점기에 찍은 사진과 오늘날의 모습을 비교해봐도 30m 가량을 가지치기를 했다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만큼 기존 측정치가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벼락피해를 막기 위해 나무보다 훨씬 높은 피뢰침도 근처에 설치되었다.
아름다운 걸로는 반계리 은행나무가 압도적으로 유명하고, 수형이 아름다운 은행나무는 꽤 많기에 부각이 덜 되는 부분이지만, 용문사 은행나무의 수형도 상당히 독특한 축에 속한다.
가장 큰 특징은 주간이 높고 곧게 서있는 드문 경우라는 점이다.
앞서 말한 반계리 은행나무는 물론, 다른 천연기념물 은행나무를 살펴봐도 주간이 높이까지 뻗은 경우는 드물며, 대부분 낮은 위치에서 가지가 갈라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용문사 은행나무는 높은 부분까지 외줄기로 자라다가 갈라진 가지들도 수직에 가깝게 갈라져 매우 높게 자랄 수 있었고, 이 때문에 흔히 숲에 가까운 인상을 주는 다른 거목과는 달리 목탑 같은 인상을 준다.
나무에 전해지는 설화에 신라의 왕족이나 유명한 고승과 왕이 여럿 등장한다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역사적으로도 굉장히 유명한 나무였고 최고의 은행나무로 꼽혔다.
세종 때 당상관(정3품)의 직위를 받았으며 이러한 직위를 받은 나무는 조선 역사를 통틀어 정이품송과 용문사 은행나무 뿐이다.
정이품송이 세조의 프로파간다를 목적으로 직위를 받았다는 설이 있는 반면에 용문사 은행나무는 정이품송보다도 먼저 매우 오래되고 큰 나무로서 이 직위를 받았다.
이 나무가 얼마나 유명하고 중요하게 여겨졌는지 알 수 있는 부분.
은행사거리의 기원도 이 나무라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이 밖에 구한말에 일본군이 의병들을 살해하려고 용문사에 불을 질렀는데 이 나무만은 불타지 않았다는 등의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이때문에 천왕목(天王木)이라는 이명이 있다.
크고 오래된 나무가 으레 그렇듯이 이 나무도 국가의 위기가 올 때마다 소리를 내거나 가지가 부러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현재에도 그 명성은 이어져서 국내 3대 은행나무를 꼽으라면 용문사 은행나무와 반계리 은행나무
는 거의 반드시 들어간다.
수세가 예전보다 약해져서 1960년 경만 해도 20여석에 가까운 은행이 수확되어 용문사의 살림을 책임질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5석 남짓만 수확된다고 한다.
(3석 정도만 수확되는 해도 있다고, 수확된 은행은 행사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분배된다).
은행나무는 암나무와 수나무로 나뉘는데, 이 나무는 암나무다.
즉, 할머니 나무인 셈.
이 나무의 가지를 심어 자라난 후손이 서울시 노원구 중계동에 아직 살아 있는데, 중계동의 학원가로 유명한 은행사거리의 기원이 된다.
이 나무의 나이도 600여 살이다.
저 나무 덕분인지 절로 올라가는 길에 은행나무가 많으며, 가을에는 단풍나무등과 어울려 단풍 관광하기에 좋은 곳이 된다.
■ 용문사 (龍門寺)
1. 개요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용문산로 782[1] 용문산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 봉선사의 말사(末寺)이다.
913년(신덕왕 2년) 대경대사가 창건하였다 하나, 일설에는 649년(진덕여왕 3년) 원효대사가 창건하고, 892년(진성여왕 6년) 도선국사사 중창하고, 또 경순왕이 직접 이곳에 와서 창건하였다고 한다.
조선 전기인 1457년(세조 3) 중수되었다. 1907년 의병활동 때와 1950년 6.25 전쟁 때 소실되었다.
1982년 중창되었다.
2. 내용
용문산 남동쪽 기슭에 있는 용문사는 신라 신덕왕 2년(913년)에 창건되었다는 오래된 사찰이다.
다만 건물 자체는 1909년~1982년에 걸쳐 다시 지어진 것이다.
순종 정미의병(1907) 당시 의병의 근거지로 사용되자 일본군이 태워버렸기 때문이다.
경내에 보물 제531호 정지국사 부도(正智國師浮屠) 및 비(碑) 2기가 있다.
용문사 대웅전 앞에 있는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는 매우 유명한 은행나무다.
높이 38.8m, 둘레 14m의 크기이며, 나이는 약 1,017살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 생존하고 있는 은행나무 중에서 가장 큰 나무로서,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되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의상대사가 꽂아놓은 지팡이가 뿌리가 나 자라서 되었다고 한다.
용문사로 가는 길 근처가 용문산 관광지로 지정되어 휴식공간 과 전시물이 설치되어 있고 식당가와 매점이 자리잡고 있다.
(그동안 통행료를 징수하던 다른 절들과 마찬가지로 2023년 5월 4일부터 통행료 징수가 폐지 되었다.)
이런 방식의 강제 입장료 징수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다른 절 들과 마찬 가지로 문화재 관람 등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일반 등산객 들에게 조차도 예외 없이 강제 징수를 하고 있다
(계절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매표소/검표소 운영 인원이 출근 전인 오전 7시 30분 정도 이전에 입장하면 강제 징수 당하지 않고 입장 할 수도 있다. (새벽에도 칼같이 받는 오대산 월정사를 생각하면 혜자.)
주차료도 아침 일찍 들어오면 납부하지 않았는데 2023년 4월 11일 부터 사전 정산 또는 출차 시 납부로 바뀌어 이제는 아무리 일찍 들어오더라도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납부하여야만 하도록 변경되었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미소천사71 작성시간 26.06.21 영광입니다 별똥별님이 사진을 다 찍어주고 ㅋㅋ
에이코스를 없애야된다고 봅니다 ㅎ
개똥같은 소리 미소천사의 넋두리~~^^
즐거웠어요 별똥별님~~^^^ -
답댓글 작성자별똥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22 new
산을 진정으로 즐기시는 모습에 저도 따라서 즐거움이 배가돼요 ㅎㅎㅎ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길을 옆에 같은 취미의 분들과 걸을 때 자신감이 더 생기죠.
이번 용문산 산행이 딱 그런 것 같아요.
혼자서 비 맞고 정상 그것도 용문산엘 가겠어요?!
산악회 활력소 미소천사님이 계셔서 발걸음이 항상 신난답니다^^♡♡ -
작성자낭만인생 작성시간 26.06.21 대단한 글솜씨입니다
덕분에 잘봤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제이슨 작성시간 26.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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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별똥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22 new
칭찬해 주셔서 감사한데, 그냥 저 혼자서 산행 정리하느라 끄적끄적할 뿐입니다.
이렇게 정리하고, 다음번 꺼내보면 잊혀진 기억이 새록새록 돋을새김되면서 또한번 힐링하게 되더라구요.
재밌게 읽어봐 주셔서 감사하고, 정보 공유할 공간이 있어서 또 감사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