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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강해

행8장5-17절 능력전도 260605 원주희 목사

작성자원주희|작성시간26.06.05|조회수45 목록 댓글 0

행8장5-17절 능력전도 260605 원주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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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사마리아 성에 임한 복음과 성령의 역사

사도행전 8장 5절~17절 말씀은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할 때 일어난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우리 안에 성령이 임재하십니다. 성령 임재의 첫 번째 역사는 바로 '내 영의 변화'이자 '속사람의 변화'입니다. 속사람이 변화된다는 것은 인생에서 시시때때로 튀어나오는 혈기, 거친 성품, 그리고 왜곡된 가치관의 기준들이 하나님의 기준으로 완전히 새롭게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속사람의 변화를 기점으로 하여, 인간의 지성·감정·의지라는 혼의 영역 전체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덮이게 되며, 비로소 초월적인 지정의의 삶이 시작됩니다.

1. 초월적 지성의 임재와 은사의 발현

성령이 우리의 지성을 덮으실 때, 인간적인 가치관과 충동성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지성이 덧입혀지는 '초월적 지성'이 임합니다. 이 영역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 그리고 예언의 은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지혜의 은사: 이미 알고 있는 수많은 지식들을 영적으로 적재적소에 풀어내는 은혜입니다. 설교자가 원고를 적어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단상 위에서 말씀을 막힘없이 풀어내고 가르칠 수 있는 것은 공부의 결과가 아니라 성령이 주시는 지혜의 은사 덕분입니다.

지식의 은사: 인간의 이성으로는 미처 알 수 없는 영적인 비밀들을 하나님께 직접 받아 깨닫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영적 무장과 분별: 지성의 은사가 강하게 임한 사람들은 초월적 지성을 통해 영들을 분별하고 예언하며 하나님의 교회를 온전히 세워갈 수 있습니다.

인간은 영적 군사로서 적어도 자기를 지킬 줄 아는 기본 영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군대에서 총검술과 사격이라는 기본을 배운 뒤 포병, 전파병, 무전병 등의 주특기를 부여받듯, 성도 역시 자기를 지키는 영적 기본기 위에서 각자의 은사(주특기)에 따라 사역해야 합니다. 본문의 빌립은 지성의 은사보다는 영적 대적을 파하고 치유를 일으키는 '강한 능력의 은사'를 받아 사마리아에서 표적을 행하였습니다.

 

2. 초월적 감정의 회복과 내적 치유

인간에게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이라는 감정이 있어, 타인의 아픔에 함께 울고 기쁨에 함께 박수치는 것이 정상적인 소통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사단이 이 감정의 영역을 공격하면 감정의 질서가 완전히 파괴됩니다. 울어야 할 때 도리어 웃고, 웃어야 할 때 슬퍼하며, 우울한 상황을 만나면 끝없는 영적 침전 속으로 깊이 빠져들게 됩니다.

이때 성령님이 파괴된 감정을 만지시고 회복시키시면 '초월적 감정'이 찾아옵니다.

마음의 평강: 웬만한 환난이나 어려운 환경을 만나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마음의 평강을 굳건히 유지하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긍휼: 상처받고 헐벗은 영혼들을 바라볼 때, 내 안에서 하나님의 깊은 긍휼과 사랑이 막 쏟아져 나오는 상태입니다.

감정적 공명과 은사 사역: 기도할 때 유독 눈물을 많이 흘리는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감정의 영역을 만지시고 풀어내시는 과정 중에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성령의 위로를 경험하고 초월적 감정을 소유하게 되면, 고통당하는 다른 이들과 함께 울어줄 때 성령의 능력이 공명하여 흘러가게 되며, 강력한 내적 치유 사역의 문이 열리게 됩니다.

 

3. 초월적 의지와 성화의 과정

인간의 육신적 의지는 본래 매우 박약합니다. 세상에서 흔히 성격은 참 좋은데 하는 일마다 열매가 없고 쉽게 무너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영역을 사단에게 공격받았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내면에서 끊임없이 운행하시며 은혜를 부으시고, 우리 안에 도사린 죄성과 싸우게 하심으로써 무너진 의지를 일으켜 세우십니다. 이 과정을 통해 성도는 의화(義化)를 넘어 성화(聖化)의 여정을 거쳐 영화(榮化)의 단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세상에서도 불굴의 투지를 가진 이들이나 단순한 목표에 집중하는 운동선수들은 훈련을 통해 자기를 극복하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흔히 고집이 세다고 평하는 특정 성씨들이 비록 타인의 의견을 도외시하여 고집스럽다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꾸준하게 한 우물을 파서 '100년 전통의 명품 된장'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무언가 하나를 끈기 있게 이루어내는 성향 자체는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단에게 의지를 공격당한 이들은 '안 될 걸 뻔히 알면서도 쓸데없는 똥고집'을 부리며 오직 자기 뜻대로만 일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고집을 피웁니다. 말씀 앞에서 끝까지 꺾지 않고 "못 먹어도 고!"를 외치며 고집을 부리는 영혼은 결국 인생이 처참하게 박살 나고 맙니다. 살기 원하고 축복받기 원한다면 내 감정과 고집이 그러할지라도 "말씀이 이것이다"라고 할 때 말씀 앞에 내 의지를 철저히 꺾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무너진 의지를 만지실 때 '초월적 의지'가 나타나며, 이는 대개 질병을 고치고 악한 귀신을 결박하여 쫓아내는 '능력 사역'과 '강한 믿음의 전진'으로 귀결됩니다.

 

4. 악한 영들의 공격 양태와 포로 된 자들의 실상

사마리아 성에서 빌립이 복음을 전할 때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떠나갔습니다. 많은 이들이 '귀신 들린 자'라고 하면 머리에 꽃을 꽂고 가방을 여러 개 가방을 멘 채 동네를 미친 듯이 돌아다니는 극단적인 미치광이의 모습만 떠올립니다. 그러나 그런 상태는 아주 드문 경우이며, 대부분의 영적 공격을 받은 사람들은 낮에는 밭을 갈고 밥을 먹으며 평범하게 일상생활을 영위합니다.

마치 팔다리를 하나 다쳐서 신체적 제약은 있을지언정 일상생활을 아예 못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사단에게 특정 영역을 공격받아 삶에 심각한 제한과 눌림이 잇따르는 상태가 바로 대다수 귀신 들린 자들의 실상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회당에서 선포하셨던 사단의 영적 공격 단계는 다음과 같이 점진적이고 복합적으로 나타납니다.

눌린 자: 사단에게 영적으로 강하게 짓눌려 있는 상태입니다. 이들은 피곤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습관적으로 예배당에 오기만 하면 깊은 잠에 빠져듭니다. 심지어 찬양을 부를 때부터 영적인 방해로 인해 조는 모습을 보입니다.

 

묶인 자와 포로 된 자:

손과 발이 영적으로 꽁꽁 묶이고 철사 줄에 얽매여 사단의 통제를 받는 상태입니다. 제 발로 걸어 다니며 일상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영적 포로 상태에 놓여 있어 치유가 시급합니다.

갇힌 자:

생각과 마음과 뜻을 사단에게 완전히 장악당해 무덤 사이나 밤거리를 벌거벗은 채 돌아다니는 거라사의 광인 같은 상태입니다. 이러한 단계에 이른 이들은 대개 현대 사회에서 정신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게 됩니다.

일상 속에서 어둠의 영에게 억눌린 자들을 분별하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술'입니다. 술이 들어가 의식이 흐려지고 밑바닥의 무의식이 수면 위로 떠 오를 때, 밤새도록 식구들을 붙잡고 폭언을 퍼붓거나 아내를 폭행하는 등의 심각한 술주정을 부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평소에는 멀쩡해 보이지만, 사실 내면에 깊은 상처와 억눌림이 가득하여 사단에게 눌려 있는 불쌍한 환자들입니다. 이처럼 감정과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악한 영들은 인간의 무의식이 드러날 때나, 혹은 빌립이 전한 '하나님의 복음의 빛'이 강력하게 비추어질 때 정체를 숨기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쫓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5. 질병의 복합성과 삼중(·정신·) 협진 치유 사역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떠나갈 때 중풍병자와 못 걷는 자들이 치유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영적인 공격을 받아 정신적 문제가 생긴 사람과 중풍이나 지체 장애 같은 육체의 질병을 앓는 사람은 겉보기에는 별개의 문제 같지만, 영적으로는 매우 복합적인 원인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단의 영적 공격을 받아 뇌혈관이나 몸의 특정 부위가 막힘으로써 중풍병이 오고 육신을 못 쓰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신체 기관들은 신비하게 대칭점을 이루며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수지침이나 지압에서 가운데 손가락을 머리, 양옆을 팔다리로 보아 손을 자극해 두통을 다스리는 것처럼, 우리 몸의 장기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눈(시각)과 간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서, 시각적인 경로를 통해 영적 공해와 공격을 많이 받은 사람들은 간 기능이 극도로 악화되어 간경화나 간암 같은 오른쪽 우상복부의 질병을 앓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 앞에서 눈으로 지은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악한 영을 쫓아내는 축사 사역을 행하면 신비하게도 간 기능이 정상적으로 회복됩니다. 우리의 지정의 또한 머리에 위치하지만, 의지의 영적 대칭점은 흔히 세상에서 단전이라 부르는 '아랫배'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강력한 신유와 능력 사역을 행하는 사역자들은 묵상 기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아랫배 깊은 곳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부르짖는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이 몸이 가볍게 아프거나 마음이 조금 우울할 때는 병원이나 파크골프장을 찾지 목사를 찾아오지 않습니다. 의료보험 혜택을 받아 저렴한 비용으로 수일 내에 치료하는 편이 훨씬 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의 종을 찾아와 기도를 요청하는 이들은 대개 인간의 의학으로는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중증 환자들입니다. 이들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사역자에게 엄청난 영적 공력과 에너지가 요구됩니다.

따라서 목회자는 영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영적 에너지를 주중에 무분별하게 다 소진해 버리면 정작 거룩한 주일에 대다수 성도에게 신령한 영명의 말씀을 먹이지 못하는 비극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성도들은 영육이 완전히 망가지기 전에 미리 기도로 예방적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치유는 '한·양방 협진 사역'과 같이 육체의 질병은 일반 병원에서 의사의 치료를 신속하게 받되, 영적인 가문과 십자가의 문제는 주의 종과 함께 성령의 능력으로 풀어가는 '병행 치료'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육체는 의학으로, 정신과 심리는 상담학적 기법으로, 그리고 영적인 짓눌림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성령의 능력으로 치유 사역을 다스려야 온전한 전인격적 회복이 일어납니다.

 

6. 목회 전략: 마음의 문을 여는 찬양과 복음의 결론

성도들이 설교 말씀에 은혜를 받지 못하고 심령이 변화되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은 영적 영양실조에 있습니다. 기도가 막혀 있고 찬양이 메말라 있는 심령에는 아무리 귀한 말씀을 선포해도 뇌리에 박히지 않습니다. 설교는 가르치는 학교 수업처럼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고, 성도의 영적 형편과 설교자의 성향이 정확히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목사님의 말씀이라도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그러나 찬양은 다릅니다. 찬양은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성도들의 약 90% 이상이 조건 없이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를 경험하게 만듭니다. 목회자가 목이 아프고 영혼을 쥐어짜는 고통이 있을지라도 예배 때마다 30분 동안 길을 쓰고 뜨겁게 찬양을 인도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찬양을 통해 굳게 닫혀 있던 성도들의 마음 문과 영적 만물을 활짝 열어놓아야만, 뒤이어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밭에 떨어지는 씨앗처럼 심령 골수 깊은 곳에 옥토와 같이 심겨 조화로운 역사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영혼을 살리기 위한 목회자의 핵심 전략입니다.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서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고 중풍병자를 고치는 능력 사역을 행했을 때, 무리들은 기적 자체에만 머물지 않고 한마음으로 빌립이 선포하는 복음의 '말'을 온전히 따랐습니다. 교회가 행하는 구제 사역, 아동 방과 후 학습 사역, 노인들을 위한 경로대학 등 모든 대사회적 사역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지만 결코 그것이 최종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노래방 기계를 틀어놓고 어르신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며 "내 나이가 어때서"를 부르고 극진히 수종을 들어드리는 모든 사역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한 거룩한 접촉점에 불과합니다.

부산의 수영로 교회 경로대학 사역이 보여주듯, 평소에는 노인분들에게 세상 그 누구보다 극진하게 잘해주어 "아, 좋다, 재밌다!" 하며 마음의 문을 완전히 열게 만듭니다. 그리고 분위기가 가장 최고조에 달해 감동을 받았을 때, 다른 사설 기관처럼 적당히 얼버무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메시지를 단도직입적으로 강하게 선포해야 합니다. 비록 복음을 전했을 때 받아들이지 못하고 절반이 넘는 무리가 떨어져 나갈지라도, 열 명 중에 단 한 명이라도 예수를 영접하여 구원을 얻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실망하지 않고 또다시 사랑으로 섬기다가 기회가 오면 또 복음의 메시지를 던지는 지혜로운 복음 전파가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삶의 자리에서 어떠한 은사를 가지고 무슨 사역을 행하든지 간에, 우리의 모든 삶의 결론은 반드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아름답게 종결되어야 합니다.

 

결론: 축복의 기도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주님의 크신 은혜와 독생자를 주신 사랑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날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존귀하신 이름 의지하여 삶의 모든 영적 전쟁에서 날마다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친히 인도하여 주옵소서. 성령의 충만한 임재를 부어주셔서 우리의 무너진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하나님의 초월적인 지정의로 날마다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주님이 주신 은사와 삶의 도구들을 가지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온전히 이루어가며, 이 땅에 주의 의를 나타내고, 무엇보다 복음의 결론을 맺음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시원케 해 드리고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축복된 삶이 되도록 우리 하나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신령한 사랑과 하늘의 변함없는 은혜로 늘 동행해 주시기를 간절히 원하오며,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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