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9장1-11절 바울 부활예수를 만나다 260611 원주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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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메색 도상에서 일어난 권능의 사건 (행 9:1~11)
사울은 주의 제자들을 향해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다메색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했습니다. 이는 예수 믿는 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색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홀연히 하늘로부터 강렬한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습니다.
땅에 엎드러진 사울에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라는 음성이 들렸고, 사울이 "주여 누구시니이까?" 하고 묻자 주님께서는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동행하던 이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것도 보지 못해 말을 잃고 서 있었습니다. 사울은 땅에서 일어났으나 눈을 뜨고도 아무것도 보지 못하여,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색으로 들어가 사흘 동안 보지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채 영적인 깊은 기도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제자 아나니아를 환상 중에 부르셔서 직가라는 거리의 유다 집으로 가 사울을 찾으라고 명령하십니다.
2. 예수를 만나면 일어나는 완전한 변화와 그 양상
참되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인생은 완전히 변화됩니다. 만약 예수를 만났다고 말하면서도 삶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실제로는 주님을 만나지 못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성령을 통해 누구나 거듭날 수 있지만, 거듭난 심령 속에서 인격적으로 예수를 만나는 체험은 별개의 깊이를 가집니다. 성경과 역사 속에서 예수님은 구속사의 진전에 따라 크게 세 가지 모습으로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공생애의 예수님: 복음서에 나타난 육신을 입고 현현하신 주님입니다. 인간의 한계 안에서 이적을 행하시고, 함께 주무시고 음식을 나누시며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죽기까지 철저히 낮아지신 역사적 모습입니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마치 '이웃집 아저씨'나 '목수의 아들'처럼 친숙하게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부활의 예수님: 십자가 죽음 이후 3일 만에 영광스러운 신령한 몸을 입으신 주님입니다. 이 부활의 몸은 육체를 가졌으나 시공간과 벽을 통과하는 등 물질적 한계를 뛰어넘으셨으며,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바드라"고 하시는 사죄와 영적 권능의 부여 성격을 띱니다.
승천 이후 영광의 하나님으로 만나는 예수님: 주님이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신 단계입니다. 오늘날 승천하신 주님을 만난다는 것은 영광의 본위를 회복하신 '성자 하나님'을 대면하는 강력한 체험입니다.
3. 구원의 3단계 여정: 의화, 성화, 그리고 영화
성도가 성령 안에서 걸어가는 구원의 과정은 크게 세 단계의 신학적 흐름으로 요약됩니다.
[의화 (Justification)] ─[성화 (Sanctification)] ─[영화 (Glorification)]
(신분적 의인 인정) (예수 닮는 거룩한 성품) (완전한 거룩함의 덧입음)
의화 (Justification):
예수를 날 위해 죽으신 구주로 믿고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법정적으로 의롭다고 선언해 주시는 은혜입니다.
성화 (Sanctification):
거듭난 성도가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거룩한 인격과 성품으로 매일 변화되며 주님을 닮아가는 과정입니다.
영화 (Glorification):
결함이 없는 완전한 거룩함으로 새롭게 덧입혀지는 최종 단계입니다. 대다수의 정통 교리(장로교 등)에서는 성도가 육신의 죽음을 맞이할 때 이 영화를 입는다고 보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생전에 강력하게 대면하는 성도들은 살아 있는 동안에도 이 영화의 영광을 가끔씩 미리 경험하게 됩니다.
스데반의 예시: 스데반 집사는 순교의 자리에서 눈을 들어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는 죽음 직전, 천국으로 들어가는 여정 속에서 완전한 영화를 경험하며 천사 같은 모습으로 영광 속에 들어갔습니다. 인간의 성품과 영성으로는 온전히 천국에 갈 수 없기에, 주님께서는 그 수준에 맞는 초자연적 은혜(영화)를 베푸셔서 우리를 완전히 거룩하게 하십니다.
4. 깊은 신앙으로 나아가는 회개의 3단계 체계
살아 있는 동안 주님의 영광(영화)을 경험하게 되면 죄에 대한 기준과 영적 지평이 완전히 바뀝니다. 신앙이 깊어질수록 성막의 구조(뜰 $\rightarrow$ 성소 $\rightarrow$ 지성소)처럼 회개의 깊이도 달라집니다.
1단계 성막 뜰 (윤리 회개)
도덕적 죄, 윤리적 잘못 (간음, 도둑질 등)
일반적인 세상 기준의 죄에 대한 뉘우침
2단계 성소 (주권 회개)
내가 내 인생의 주인 되어 내 맘대로 산 죄
하나님의 주권(Lordship)을 침해한 중심을 회개
3단계 지성소 (성품 회개)
예수님처럼 온전히 사랑하지 못한 죄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에 도달하지 못한 성품의 한계 회개
주권 회개와 삶의 영역별 전환 (Lordship)
성소의 신앙에 들어가면 죄의 주체가 '행위'에서 '주권'으로 이동합니다. 주님이 교회의 주인이신데 내가 왕 노릇 한 것, 주님이 물질의 주인이신데 내 돈이라 착각한 것들이 뼈아픈 죄로 다가옵니다. 이때 철저히 주권을 이전(체인지)해야 비로소 하늘의 축복이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물질의 주권 (십일조):
물질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구체적인 행위입니다. 유럽이나 미국의 일부 성도들은 평소 주일헌금을 드리고 종국에 유산을 전액 기부하는 방식으로 주권을 고백하기도 하지만, 한국 교회는 매달 드리는 십일조를 통해 주권을 인정합니다. 인색함 없이 하나를 떼어 드릴 때, 막혔던 삶의 재정과 살림이 영적으로 풀리는 은혜를 경험합니다.
시간의 주권 (주일 성수):
일주일 전체가 주님의 날이지만, 그중 특별히 구별된 한 날을 주님께 드림으로써 시간의 주권을 고백합니다. 이를 인정할 때 하나님께서 나머지 삶의 시간을 붙들어 주시어 인생의 영적 생산성을 높여 주십니다.
인간관계 및 환경의 주권:
내 삶에 찾아오는 억울하고 분한 일, 나에게 상처 주는 사람조차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배치되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을 당하나" 낙망할 것이 아니라 "나를 연단하시고 영혼 사랑을 가늠하시려는 주님의 주권적 섭리"로 수용할 때, 대인관계의 상처와 얽매임으로부터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됩니다. 목회 역시 목사 자신의 힘이 아닌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한 걸음씩 보폭을 옮길 때 주님이 친히 일하십니다.
5. 사울(바울)이 핍박자가 되었던 종교적 배경 성전 모독 신성 모독
바울이 과거에 그토록 지독하게 예수 믿는 자들을 박해했던 이유는, 철저한 바리새파적 신념 체계와 가말리엘 문하에서 배운 율법적 교리 안에서 예수를 따르는 도를 '이단 중의 괴수'이자 대단한 '신성모독'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은 죄목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성전 모독:
하나님은 사람이 손으로 지은 건물에 계시지 않고 온 우주에 충만하시며 거듭난 자의 영혼에 거하신다는 스데반의 설교는, 천 년 가까이 제단을 쌓아온 유대인들에게 성전 체제를 부정하는 모독으로 여겨졌습니다.
신성 모독:
유일신 신앙("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을 가진 유대인들에게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포하는 행위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우상숭배이자 신성모독이었습니다.
율법에 정통했던 사울은 이 신념에 따라 스데반의 처형에 증인으로 서서 옷을 맡아주었고, 예루살렘을 넘어 이방 땅인 시리아 다메색 회당에까지 원정을 가면서 유대교의 순수성을 지키고자 살기가 등등하여 군대를 움직였던 것입니다.
6. 다메색 도상에서의 극적인 대면
종교적 적대감과 결기가 극에 달했을 때, 주님은 사울을 거꾸러뜨리셨습니다. 하늘의 압도적인 영광의 빛 앞에 사울이 땅에 완전히 엎드러졌을 때 들린 음성은 영적인 거대한 비밀을 담고 있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사울은 예수라는 인물을 직접 박해한 적이 없었고 단지 '예수 믿는 지상의 교회와 성도들'을 결박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영광의 주님은 성도와 교회가 당하는 고난을 '곧 나 자신(예수)이 당하는 박해'로 완벽하게 동일시하셨습니다. 주님은 영광의 본위를 회복하신 성자 하나님의 권위로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고 자기를 계시하셨고, 이 깨어짐을 통해 사울은 철저한 자기 부인과 영적 눈멀어짐의 사흘을 통과하게 됩니다.
7. 현대 영적 체험에 대한 경고와 참된 분별법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은 오늘날에도 성도들을 찾아오시며 영광스러운 '영화'의 상태를 미리 맛보게 하십니다. 그러나 영의 세계에는 마귀의 기만과 거짓 영들의 장난이 대단히 많으므로 철저한 영적 분별이 필수적입니다. 요한일서의 말씀처럼 "영들을 다 믿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해야" 합니다.
영적 체험의 분별법 (예수의 피 취하기):
기도 중에 영적 현상이 나타나거나 자칭 예수라는 존재가 나타나 영광을 구하며 교만을 충동질할 때, 성도는 영적으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흘러내리는 어린 양 예수의 피를 취하여" 그 환상과 존재 위에 믿음으로 확 쏟아부어야 합니다. 진짜 영광의 주님은 보혈의 능력 앞에 그대로 계시지만, 귀신이 가장한 가짜 악한 영들은 보혈의 농밀함 앞에서 허물흐물 녹아내리며 물러가게 됩니다.
이단의 생성 원인:
한국 교회의 수많은 이단 교주들은 기도에 매진하다가 영적 분별력 없이 환상을 보고 교만의 영에 사로잡혀 자신이 '하늘 성신'이라거나 '특별한 존재'라는 착각에 빠져 파멸했습니다. 이는 내면의 열등감과 영적 교만이 결탁하여 분별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안전한 만남:
주님을 만나는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자리는 '십자가 앞에서의 철저한 회개'입니다. 내 의를 내려놓고 회개하는 가운데 임재하시는 주님을 만날 때, 분별의 혼란 없이 "너의 죄를 사하노라" 하시는 은혜 속에서 참된 해방과 영혼의 영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결론
부활하신 주님은 오늘날에도 우리를 완전히 변화시키기 위해 찾아오십니다. 우리는 신앙의 뜰에서 머무는 윤리적 회개를 넘어, 삶의 전 영역(물질, 시간, 관계, 목회)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철저히 인정하는 성소의 회개, 더 나아가 온전한 사랑에 도달하지 못한 성품의 회개로 나아가야 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의 신령한 영광인 '영화'를 사모하며 주님과 완전히 연합해야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사도 바울이 다메색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 완전히 깨어지고 변화된 것처럼, 우리도 인격적으로 주님을 대면하기를 원합니다. 내 죄를 사하시고 구원의 반열에 세워 주신 주님, 우리의 신랑 되신 주님과 연합하여 한 영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성도의 영화를 꼭 한 번 경험하게 하시고, 그리하여 죄인 된 삶 속에서도 내 의를 전적으로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의만을 사모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