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9장10-21 절 아나니아의 예수체험 260614 원주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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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9장 10절~21절은 다메섹의 제자 아나니아와 교회를 박해하던 사울이 부활하신 주님의 역사 속에서 만나 변화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주님은 환상 중에 아나니아에게 '직가'로 가서 다소 사람 사울을 찾으라 명령하십니다. 사울이 기도 중 아나니아가 안수하여 눈을 뜨는 환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나니아는 사울이 성도들에게 행한 박해를 언급하며 두려워하나, 주님은 사울을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선포하십니다.
아나니아가 순종하여 사울에게 안수하자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져 다시 보게 되었고, 성령 충만해진 사울은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어 강건해집니다. 사울은 즉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며 사람들을 놀라게 합니다. 이 말씀의 영광이 성도들의 인생에 충만하기를 축복합니다.
1.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세 가지 통로와 영적 분별
하나님이 성령 안에서 소통하시는 통로는 주로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영혼 밑바닥에서 밀려오는 '마음의 감동', 둘째는 시각적 이미지가 명확히 열리는 '환상', 셋째는 영으로 인지되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초자연적 소통에는 반드시 철저한 '분별'이 필요합니다. 영적 분별이 생략되면 인간은 자기 생각과 정욕을 성령의 감동으로 오해하거나, 타인의 조종에 휘둘릴 수 있으며, 심지어 악한 영과 사단이 주는 거짓 감동에 이끌려 파멸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2. 예수를 체험하는 세 가지 경우: 성육하신 예수, 부활의 예수, 2위 하나님이신 영광의 예수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모습은 구속사적 단계에 따라 세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는 '성육신하신 주님'을 경험하는 단계입니다. 공생애 당시 제자들이 겪은 체험으로, 주님과 함께 밥을 먹고 울고 웃으며 인간의 정서와 희로애락을 육체적으로 공유한 단계입니다.
둘째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단계입니다. 승천 전 영체로 현현하신 주님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닫힌 문을 통과하시면서도 제자들과 음식을 드시며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셋째는 '영광의 주님'을 체험하는 단계입니다. 승천하셔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래적 권위와 신성을 회복하신 영광의 왕을 마주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를 만난다는 것은 곧 이 영광의 주님을 대면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엄위 앞에 서면 완전히 새롭게 변화되든지 죄악으로 인해 죽든지 양단간에 결정이 나며, 내면의 뒤흔들림이 없다면 진실한 체험이라 볼 수 없습니다.
3. 의화, 성화, 영화의 구원 여정
장로교 정통 교리에 따르면 성도의 구원은 '의화(칭의)', '성화', '영화'의 여정을 가집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는 '의화'를 입어 자녀가 되지만, 현세에서는 내면의 죄성과 끊임없이 싸우는 엎치락뒤치락하는 '성화'의 과정을 지나게 됩니다. 그리고 지상의 삶을 마감하는 임종의 순간, 하나님은 성도에게 100% 완전한 거룩함을 선물로 주어 보좌 앞에 서게 하시는데 이것이 '영화'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주권에 따라 이 땅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도 이 영화의 빛, 즉 하나님의 압도적인 영광을 미리 맛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내면을 덮치면 모든 죄악이 순식간에 도말되고 사단과 어둠의 권세는 박살이 나 도망갑니다. 성령 사역자들은 이처럼 하나님의 살아계신 영광이 삶의 자리마다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영광의 사역자'가 되기를 꿈꾸며 나아가야 합니다.
4. 영광의 임재와 함께 임한 거부할 수 없는 음성
기도하던 아나니아에게 주님의 음성이 임했을 때 분별할 필요가 없었던 이유는 그 말씀이 거룩한 '영광'과 함께 임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영광이 임하면 인간적인 의심이 순식간에 밀려 나가며, 배가 고프면 온몸으로 느끼듯 내면의 완전한 변화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임을 몸으로 직관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아나니아는 즉각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며 순종했습니다.
영적인 음성이 헷갈릴 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해 부딪혀야 합니다. 예수의 영이면 머물고 거짓된 영이면 떠나가기 때문입니다. 아나니아는 박해자 사울을 향한 두려움이 있었으나, 거부할 수 없는 영광의 음성에 자신을 쳐 복종시키고 사울을 찾아가 안수하며 주님의 충만한 선포를 전했습니다.
5. 예언적 음성들과 영광의 음성의 차이
우리는 '예언의 감동'과 '거부할 수 없는 영광의 음성'을 구분해야 합니다. 예언의 은사는 성령 안에서 부어주시는 영적 감동을 인간의 언어로 전달하는 것이기에 교회의 유익과 덕을 위해 분별하며 수용하는 참고 사항의 성격을 가집니다. 반면, 하나님의 영광과 함께 찾아오는 영음은 거역할 수 없는 신적 권위가 있어 인간적 계산을 끝내게 만들고 오직 절대적인 신뢰와 즉각적인 순종만을 낳으며 그대로 성취됩니다. 아나니아는 이 영광스러운 음성을 들었기에 상식을 뛰어넘어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6.영광 안에서 스데반의 설교를 이해하다.
사울은 다메색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 육신의 눈은 멀었으나 영혼의 눈은 활짝 열렸습니다. 사흘간 기도하며 아나니아가 들어와 안수하여 다시 보게 되는 환상을 영으로 이미 보고 있었습니다.
사울은 정통파 율법주의자로서 스데반의 설교 중 두 가지를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첫째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선포였습니다. 유일신 신앙을 가진 유대인들에게 이는 신성모독이었고, 예수님이 종교재판에서 죽임당한 본질적 죄목이기도 했습니다. 둘째는 건물 성전을 뛰어넘어 '성도의 몸이 성전'이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예루살렘 성전 건물에만 거하신다고 믿었으나, 스데반은 성령의 내주하심을 경험하여 성도의 몸이 성전 됨을 전했습니다. 은혜를 경험한 자는 기도의 불로 죄성을 태우는 역사를 스스로 알게 되지만, 영적 체험이 없던 사울의 눈에는 이것이 신성모독으로 보였기에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처형에 앞장섰던 것입니다.
7. 영광의 체험과 변화
완고했던 사울은 임종 때나 마주할 하나님의 영광을 다메색 도상에서 주권적인 은혜로 미리 경험하며 본질적인 영적 대전환을 겪었습니다. 아나니아가 안수할 때 성령이 임하여 그의 몸이 성전 됨을 경험했고,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지며 실상을 바라보는 영안이 열렸습니다.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어 강건해진 사울은 제자들과 교제하며 성령의 조명 속에 구약의 메시아가 바로 예수임을 완벽히 깨달았습니다. 이에 회당으로 달려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고 즉각 선포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원한 메시아는 로마 압제에서 해방해 줄 '다윗의 자손(인간 영웅)'이었으나, 사울이 만난 예수는 열방을 통치하시는 온 우주의 주재이자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이로써 사울은 자신이 박해하던 스데반의 복음을 목숨 걸고 외치는 사도로 변화되었습니다.
8. 핍박자에서 증거자로
박해자였던 사울이 예수의 포로가 되어 그 이름을 증거하자 사람들은 경악했습니다. 성령 체험을 넘어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통과하면 내면의 죄성이 도말되고 천국의 상태가 주어지며 이 같은 본질적 변화가 일어납니다. 사도 바울은 이 확신이 있었기에 훗날 서신서에 "만삭 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나에게도 주님이 나타나셨다"며, 박해자였던 자신을 만나주신 주님의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눈의 비늘이 벗겨지며 예수가 진짜임을 확증한 사울은 돌 맞아 죽을 위험 속에서도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했습니다. 오늘날 유대인들 중에는 예수를 선지자로 보며 신성을 부인하는 이들이 있지만, 영광의 주님을 대면하면 고백의 깊이가 달라집니다. 아나니아의 작은 순종을 통해 바울이라는 위대한 인물이 파송되는 출발점이 마련되었습니다. 이 영광스러운 은혜와 부활의 권능이 성도들의 삶과 예배 가운데 영원히 함께하기를 축복합니다.
결단의 기도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연약함과 허물을 다 아시면서도 자녀 삼아주시고 이끌어주심을 찬양합니다. 오늘 우리 삶의 주권을 주님 손에 올려드리오니 성령께서 통치하시고 역사하여 주옵소서. 예배하는 모든 백성들에게 십자가 보혈의 은혜와 부활의 능력을 부어주시고, 영안이 활짝 열려 영광의 주님을 대면하는 복된 자리가 되게 하옵소서. 동행하여 주시기를 원하오며,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