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9장17-25절 핍박자에서 전도자 바울로 260615 원주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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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니아가 사울에게 안수하여 주께서 너를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어 강건해진 후, 즉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했습니다. 당혹한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을 지켰으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내렸습니다. 아멘. 이 말씀의 은혜가 우리 교회에 충만하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 왜 초신자가 전도자가 될 수 있는가?
‘예수 믿은 지 일주일 만에 전도자가 될 수 있을까?’ 가능합니다. 보통 예수를 오래 믿을수록 교제권이 신자 중심으로 이동합니다. 10년쯤 지나면 주변에 불신자 친구는 사라지고 온통 믿는 사람만 남게 되어 오히려 전도가 어려워집니다. 반면 사도 바울은 이제 막 회심했기에 주변에 안 믿는 과거의 유대인 친구들이 ‘버글버글’했습니다. 복음을 전할 대상이 사방에 널려 있는 최적의 상태였던 것입니다.
2. 바울이 일주일 만에 전도자가 된 비결들
바울이 며칠 만에 전도자가 된 비결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어려서부터 율법 안에서 말씀으로 양육받은 영적 기초가 있었습니다. 일반 불신자들은 회심 후 과거의 습관을 버리느라 성화 과정이 길어지지만, 바울은 기반이 완성되어 있어 믿음의 방향만 바꾸면 되었습니다. 둘째, 아나니아라는 멘토와 다메색 공동체를 만나 구약 지식이 예수 안에서 ‘착착착’ 정리되며 확신을 얻었습니다. 셋째, 성령의 강력한 체험과 권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3. 바울에게 임한 성령의 은사
바울은 성령 충만을 통해 눈의 비늘이 벗겨지며 환상과 계시를 보는 영안의 은사를 얻었습니다. 성령의 불이 신체에 임할 때는 명확한 목적이 있습니다. 손에 임하면 신유의 역사가, 발에 임하면 밟는 모든 땅에 축복과 중보의 영이 주어집니다. 이는 세상 속에서도 동일하여, 성령이 임한 발로 사업장이나 가정의 문지방을 넘을 때마다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바울은 눈에 불이 임하여 평생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4. 아내의 눈이 안 떠졌던 간증
이러한 만지심은 실제입니다. 과거 집회에서 제 아내가 기도 중에 갑자기 눈이 안 떠진다며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시각장애인이 되는 것 아닌가 걱정되어 목사님께 가니 "그냥 좀 놔두라" 하셨고, 시간이 지나자 눈이 풀렸습니다. 하나님이 눈을 만지시면 영안이 열립니다. 귀를 만지시면 음성을 듣도록 귀가 커지는 느낌을 받고, 손에 능력이 임할 때는 손이 왕방망이처럼 커지는 듯한 감각을 직접 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5. 우리 몸을 의의 병기와 성전으로 드리는 삶
예배당 건물이 아니라, 성령을 모신 우리 ‘몸’이 진짜 성전입니다. 성령은 실제로 우리 몸의 오장육부와 머리, 가슴, 배에 임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손발, 눈, 입술을 도구로 쓰셔서 우리가 서 있는 곳을 성전이 되게 하십니다. 따라서 성도는 말 한마디도 조심해야 합니다. 성령을 경험하면 누구에게나 영적 안테나가 열려 꿈이나 귀, 마음의 심상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됩니다.
6. 오늘 내게 주시는 구체적인 말씀, '레마'와 분별력
영적 안테나가 열려도 분별이 필요합니다. 성경의 수많은 말씀 중 오늘 내 결정을 위해 주시는 구체적인 하나님의 음성을 ‘레마(Rhema)’라고 합니다. 레마는 성경 묵상, 찬송의 감동, 혹은 환경을 통해 주어집니다. 다만 레마는 보편적 진리인 성경 자체와 동등할 수 없고 각자에게 다르게 적용되므로 늘 성령 안에서 분별해야 합니다.
7. 레마와 기록된 성경의 관계
기록된 성경은 청동기와 철기 시대 등 과거의 배경 속에서 기록되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인공지능(AI)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문자는 부족합니다. 십자가 대속과 부활이라는 구원의 진리는 변하지 않지만, 시대적 격차를 채워 오늘날의 삶에 적용해 주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내 삶의 레마로 비추어 주실 때, 우리는 시대를 뛰어넘는 지혜를 얻습니다.
8. 유대인의 유일신 신앙과 예수의 신성 모독 재판
유대교는 철저한 유일신 신앙이기에 예수를 인간 메시아로 전하면 돌 맞지 않지만, ‘하나님의 아들’ 즉 신성을 말하면 신성모독으로 처형당합니다. (참고로 우리 민족의 '하늘님'이나 몽골의 '탱거리'도 본래 유일신 전통입니다.) 예수님이 종교 재판에서 사형 판결을 받으신 이유도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라 한 것과 건물 성전을 허물고 사흘 만에 짓겠다고 하신 죄목 때문이었습니다.
9.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는 교회의 특징
교회 건물 안에도 기도의 임재가 쌓여야 합니다. 수백 년간 성도들의 기도와 회개가 쌓이면, 교회는 하나의 생물처럼 신유, 말씀, 혹은 가정의 화합 등 독특한 은사와 기름부음을 형성합니다. 우리 교회도 이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과거 덕천에서는 기도가 쌓여 있었으나, 내남으로 온 후에는 기도를 많이 쌓지 못해 성도들의 신앙이 자라지 못했습니다. 이제 다시 기도로 우리 교회만의 기름부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10. 스데반의 설교를 이어받은 사도 바울
바울의 메시지는 과거 자신이 죽이는 데 동조했던 스데반 집사의 설교와 일치합니다. 스데반은 건물 성전에 갇힌 유대인들을 향해, 진짜 성전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이라고 선포하다 죽었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주님이 내 인생의 주관자가 되시지만, 겨우 믿으면 내 안에서 숨만 쉬게 됩니다. 바울은 성령을 체험하며 보이는 건물이 아니라 내 몸이 진짜 성전임을 깨달았습니다.
11. "네 안에 내 있다"가 아닌, 실제로 우리 몸에 임하시는 성령님
연인들의 "네 안에 내 있다"는 감정적 표현일 뿐이지만, 성령의 내주는 ‘실제’입니다. 세상의 단전호흡처럼 성령은 우리의 지정의(知情意) 전인격 중심에 실제로 임하셔서 정결케 하십니다. 성령이 임하면 우리 안에 죄를 태우는 영적 번제단과 상처를 씻어내는 영혼의 물두멍이 생깁니다. 우리는 그 은혜의 샘물을 마시며 살아가는 실제적인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12. 왜 은혜를 받아도 삶은 변화가 덜 되는가?
은혜를 체험하고도 삶이 안 변하는 것은 아직 성전의 마당(뜰)만 세워졌을 뿐 속사람의 변화가 덜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은혜를 다 쏟은 것은 아닙니다. 콩나물시루의 물이 다 빠져나가도 콩나물이 자라듯, 주님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은혜를 계속 부어주십니다. 다만 좋은 목사 밑에서 잘 지도받으면 빠르게 성장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방황하며 세월을 허비하게 됩니다.
13. 유대인의 핍박과 광주리를 통한 사도 바울의 탈출
바울의 전도로 당혹한 유대인들은 그를 배신자로 규정하고 죽이려 했습니다. 고대 성벽 도시는 성문이 닫히면 탈출할 수 없기에 밤낮으로 성문을 지켰습니다. 이를 안 다메색 성도들이 깊은 밤, 유대인의 감시를 피해 바울을 커다란 광주리에 담아 성벽 창문 너머로 달아내려 도망치게 했습니다. 위대한 사도도 초창기에는 이러한 긴박한 핍박을 겪었습니다.
14. 메시아닉 교회의 논쟁과 이방인 선교를 위한 복음의 지혜
이스라엘의 유대인 그리스도인인 ‘메시아닉 교회’는 예수를 구세주로 믿지만 신성은 잘 안 믿습니다. 과거 예루살렘 교회도 예수를 인간 메시아로만 전해 핍박을 피했으나, 스데반과 바울이 ‘하나님의 아들’을 선포하자 큰 핍박이 왔습니다. 그러나 이 진리는 이방인에게 세계 선교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습니다. 복음의 강조점을 나누어 베드로는 유대인에게, 바울은 이방인에게 향한 것은 성령의 지혜였습니다.
15. 이스라엘의 현대 정세와 시오니즘의 문제점
오늘날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부는 천만 인구의 영토 부족을 해결하려 주변국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의 비전은 과거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약속하셨던 에브라임 강부터 유브라데까지의 전 영토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이 맹목적인 ‘시오니즘’ 사상 때문에 무고한 민간인 폭격이라는 비극이 자행됩니다. 성경 예언을 인간의 폭력으로 성취하려는 위험한 시도이며, 국제 사회의 큰 기도 제목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권능 안에서 핍박자에서 신자로, 전도자로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이 축복이 우리 교회에 가득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날마다 예수 이름으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 안에 전도자들이 불같이 일어나게 하시고, 다른 누구보다 ‘내가’ 그 사람이 되어 생명의 복음을 전하고 이 땅을 변화시키는 의의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은혜와 사랑으로 붙잡아 주시길 원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