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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강해

행9장26-31절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교회 260617 원주희 목사

작성자원주희|작성시간26.06.17|조회수44 목록 댓글 0

행9장26-31절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교회 260617 원주희 목사

https://youtu.be/VNqVjOxJF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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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울의 떠남과 초대교회의 평안 (사도행전 9:26~31)

사울(바울)이 회심한 후 예루살렘의 제자들과 사귀고자 했으나, 제자들은 그를 두려워하여 믿지 못했습니다. 이때 바나바의 중재로 사도들에게 나아가 사울이 다메섹에서 담대히 복음을 전한 사실을 증언했습니다. 이후 사울은 예루살렘에서 헬라파 유대인들과 변론하며 복음을 전했으나, 유대인들이 그를 죽이려 하자 형제들은 그를 가이사랴를 거쳐 고향인 다소로 보냈습니다. 트러블 메이커처럼 보였던 사울이 떠나자, 역설적이게도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그 수가 더 많아지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와 메시아의 세 가지 직분

바울이 전한 복음의 두 가지 핵심은 '스데반의 설교(성전 미신 타파)'와 '부활하신 예수의 신성'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를 좋은 스승이나 능력을 행한 선지자(엘리야, 엘리사 등) 또는 다윗의 자손으로서 로마의 식민 통치에서 해방해 줄 '정치적 메시아(왕)'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메시아(기름 부음 받은 자)의 직분은 왕, 선지자, 제사장 세 가지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행적을 통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제사장이신 메시아'로 들어가셨고, 나아가 단순한 인간 메시아가 아닌 '하나님 자신'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3. 스데반과 바울의 메시지가 가져온 파장

예루살렘의 초기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오해하여 메시아를 죽였으니 회개하고 믿으면 사죄와 성령의 은혜를 받는다는 비교적 온건한 '유대인 맞춤형 복음'을 전했습니다. 반면, 스데반과 바울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신성(神性)을 선포했습니다.

특히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 건물이 성전이 아니라 주님의 영이 거하시는 우리 몸이 참된 성전임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에게 신성모독이자 극심한 정치적 문제가 되었고, 바울이 가는 곳마다 유대 사회와 부딛치며 교회가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방인 선교를 위해서는 유대 민족주의를 극복한 기독교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교리가 필요했습니다.

주님은 다소로 바울을 보내셔서 준비시키고 남은 교회는 유대주의 기독교 틀 안에서 평안을 주셨습니다.

 

4. 주를 경외함이 없는 성령 운동의 위험성

초대교회가 부흥한 비결은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가 균형을 이룬 데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50~60년대 역사를 돌아보면, 은사와 이적만 좇고 주님을 경외함이 없을 때 음란, 탐욕, 이단 교주화 등의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했습니다. 올바른 성령의 역사는 자기를 높이거나 물질을 탐하지 않고, 오직 주님을 경외하는 제자도가 기본입니다. 제자도의 기본기 위에 성령의 다양한 나타나심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교회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5. 현대 중동 정세와 정치적 메시아주의의 한계

오늘날 이스라엘의 '메시아닉 주(Messianic Jew)' 교회나 일부 기독교 세력은 초대교회 당시 유대인들처럼 다윗의 영토(애굽 강에서 유브라데 강까지)를 회복하는 '정치적 메시아 나라'를 오매불망 갈망하고 있습니다. 현 네타냐후 총리의 정책이나 정착촌 확대, 가자지구 및 레바논 폭격 등은 이러한 시오니즘적 열망과 닿아 있습니다.

일부 기독교계는 예루살렘에 제3 성전이 세워져야 주님이 재림하신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제3차 세계대전을 유발할 수 있는 위험한 발상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게 임하는 민족 종교나 영토적 나라가 아니라, 우리 마음과 온 우주에 충만하게 임하는 영적인 다스림입니다.

 

6. 결론 및 기도: 우리 땅에 맞는 신앙 운동

세계 정세(중동 위기, 이란·러시아·북한·중국의 밀착 및 동북아 긴장 등)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우리에게도 심각한 고민을 안겨줍니다. 기독교는 특정 민족의 한계를 넘어서는 우주적인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치적 메시아주의에 휩쓸리지 말고,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기독교 진리에 어긋나지 않는 '우리 땅에 맞는 올바른 신앙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결론적 기도 제목

어디로 튈지 모르는 위기의 시대 속에서 성령의 다스림을 구하며, 중동 땅의 아랍인과 유대인 사이에 참된 평화가 임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나아가 오늘날 모든 교회가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 안에서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복음의 수가 더해지는 은혜를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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