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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강해

행9장31-43절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교회03 260619 원주희 목사

작성자원주희|작성시간26.06.19|조회수21 목록 댓글 0

행9장31-43절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교회03 260619 원주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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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대 교회의 평안과 부흥

사도행전 9장 31절 말씀처럼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는 역사가 우리 교회 안에도 충만하기를 축복합니다.

교회가 아무 문제 없이 평안한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평안하긴 한데 숫자가 늘지 않고 부흥이 안 되는 것’이 현재 우리 교회의 솔직한 고민입니다.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것을 넘어 수적인 부흥까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영적인 원리가 필요합니다.

 

2. 평안함을 이루는 교회: '이해''발 맞추기'

교회가 평안하고 든든하게 서가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이해’입니다. 사람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고 맞추어 주려는 노력이 필수적입니다.

이는 두 사람이 다리를 묶고 달리는 '이인삼각 경기'와 같습니다. 과거 노회 목사 체육대회 때, 운동 신경이 부족한 저에게 후배들이 이인삼각 경기라도 참여하라고 권했습니다. 직선으로 갈 때는 박자가 제법 잘 맞았습니다. 하지만 반환점을 돌 때는 안쪽 사람과 바깥쪽 사람이 속도를 조절하며 박자를 맞춰야 하는데, 이를 맞추지 못하고 바깥으로 돌다가 등치 큰 사람들이 와당탕탕 모두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교회도 이와 똑같습니다. 목회자와 장로, 평신도 성도 사이는 물론이고 목사와 사모 부부 사이도 영적으로 발이 묶여 있습니다. 한 사람이 어깃장을 놓고 못 가겠다고 버티면 공동체 전체가 나아갈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주님과도 발이 묶여 있습니다. 우리가 발을 떼지 않으면 주님도 움직이실 수 없으며, 마음에 걸림돌(금)이 많은 사람은 발을 떼지 못합니다. 은사의 세계도 마찬가지로 주님이 한 발을 떼실 때 함께 발을 맞추어 떼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 관계는 왈츠 춤을 추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춤을 출 때 여성이 남성의 리드에 몸을 맡기면, 남자가 당길 때 당겨지고 밀 때 밀리면서 자연스럽게 스텝이 맞아 들어갑니다. 주님과의 관계도 이와 같습니다. 주님이 당기시면 당겨지고 밀면 밀리면서 주님과 영적 ‘케미’를 맞추고, 성도 간에도 발을 맞추어 나갈 때 교회는 비로소 평안하여 든든히 서갈 수 있습니다. 이 안정감 위에서 성도들의 신앙이 자라나게 되며, 여기에 성장의 역사가 더해지려면 주를 경외함과 동시에 성령님의 위로하심이 필요합니다.

 

3. 성령의 위로하심 1단계: 온전케 하심

성도들의 신앙이 자라나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위로하심이 삶에 풀어져야 합니다. 성령의 위로가 임하면 우리 마음의 맺힌 것과 억울함이 모두 풀어지고 신원(伸冤)되는 역사가 일어나며, 이를 통해 우리는 '온전하여지는 단계'로 들어서게 됩니다. 세상에서 받은 상처와 아픔이 성령의 위로 안에서 치유되는 것입니다.

이 온전하여짐은 결코 멀리 있는 신비적인 현상만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중에 눈물이 쏟아지면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던 사람이 마음속에 떠오를 때 “주님, 주께서 나를 용서하셨으니 저도 용서합니다”라고 고백하게 되는 과정이 바로 온전케 하심입니다.

마음속에 억울함이 쌓여있을 때는 한숨과 분노가 터져 나오지만, 성령의 은혜가 임하면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는 영적인 힘이 밀려옵니다. 우리의 입술 고백을 통해 주님은 더 깊이 임재하시며, 이로 인해 우리의 정신, 영혼, 육체뿐만 아니라 가정과 삶의 모든 자리에 이르기까지 주님의 온전함이 퍼져나가게 됩니다.

 

4. 성령의 위로하심 2단계: 자기 몫을 감당함

성령의 위로로 온전해진 성도는 그때부터 ‘자기 몫(직분)’을 온전히 감당하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목사라 할지라도 은혜가 떨어지면 목사 노릇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사람의 냄새와 육신의 연약함만 풍기게 됩니다. 장로님도, 권사님도 은혜가 떨어지면 직분자로서의 제 몫을 해내지 못합니다.

흔히 교회 주변에서 목사를 비하하여 ‘먹사’라 부르거나, 집사를 ‘잡사’라고 비난하는 이유도 결국 직분자들이 은혜를 맛보지 못했거나 은혜가 고갈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반드시 성령으로 온전케 하시는 과정을 통과해야 합니다.

유가(儒家)의 사상 중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목사는 목사답고, 장로님은 장로님답고, 권사님과 집사님은 각자의 직분다움을 회복하여 소임을 다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첫 번째 부르심입니다. 사모 역시 사모다운 기쁨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렇게 성령의 은혜로 자기 ‘다움’을 회복하고 소임에 충실할 때, 비로소 성도의 삶에 풍성한 영적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기 시작합니다.

 

5. 온전케 하시는 과정, '광야'

우리가 온전해지는 과정 속에는 반드시 ‘광야의 기간’이 존재하며, 하나님은 이 고난의 때에도 신실하게 복을 주십니다. 광야를 지날 때는 당장 힘들어 죽을 것 같고 넘어져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만나를 먹이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시며,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다만 광야를 살아갈 때는 하루하루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바라보아야 하므로,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라는 찬송이 저절로 나오게 됩니다.

목회자들도 개척 교회 시절을 겪다 보면 물질의 한계로 별별 어려움을 다 만납니다. 당장 먹을 쌀이 떨어져 걱정하다가도, 문을 열어보면 누군가 쌀 한 포대를 가져다 놓아 그것으로 위기를 넘기곤 합니다. 당시에는 친정 부모님께 이런 어려운 형편을 솔직하게 말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사남매 중 형님과 누나들은 세상에서 넉넉하게 잘 살고, 연세 많으신 아버님도 여유롭게 생활하시는데, 목회자가 된 막내 아들만 가장 힘들게 사니 부모님 마음 아프실까 봐 차마 힘든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 모든 눈물과 아픔의 시간이 바로 온전한 주의 종으로 빚어지기 위한 광야의 과정이었습니다.

광야를 통과하여 온전해진 자에게 주어지는 가나안 땅의 축복은 어마어마합니다. 하나님은 “네가 짓지 않은 포도원을 얻을 것이며, 네가 세우지 않은 집을 얻고, 네가 파지 않은 우물을 파서 누리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온전함을 입고 자기 몫을 다하는 성도에게는 자녀들의 문제가 술술 풀리고, 인생의 탄탄대로를 달리게 되는 상급의 복이 성령의 위로 안에서 흘러나옵니다.

 

6. 인지적 재능과 신령한 재능(은사)의 기름부음

성령의 위로 안에서 하나님은 성도 각자에게 주신 다양한 은사와 재능 위에 기름을 부으십니다. 어떤 이는 말과 구변의 은사를 받아 강단에 서면 말씀을 탁월하게 전합니다. 속된 말로 조디가 보살이라는 말처럼 설교할 때마다 성도들이 큰 은혜를 받습니다. 또 어떤 이는 성령의 강력한 임재가 있는 찬양의 기름 부으심을 받기도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는 크게 두 가지 재능의 영역으로 나타납니다.

 

첫째, 인지적 재능에 임하는 기름부음:

피아노 연주, 요리, 컴퓨터 다루기, 의술, 좋은 성품 등은 비신자들도 가질 수 있는 천부적인 재능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임하면, 그 재능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귀하게 쓰입니다. 다윗은 본래 물매를 돌리는 뛰어난 재능이 있었습니다. 그 재능 위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더해지자 골리앗을 무너뜨리는 영적 무기가 되었습니다. 제 아내도 국문과를 졸업하여 아이들을 지도하고 성경을 깊이 파고드는 천부적인 재능과 열정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교회학교로 흘러가니 전도사를 능가하게 사역을 잘합니다. 비록 찬양 재능은 조금 부족하여 기계의 도움을 받지만, 덕분에 제가 아동부 사역을 믿고 맡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둘째, 신령한 은사적 재능에 임하는 기름부음:

방언이나 신유 등 신령한 은사는 기도를 많이 하는 성도들에게 풍성하게 주어집니다. 보수 교단에 따라 방언이나 신령한 은사 사역을 공식적으로 권장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은사를 겉으로 표출하지 않더라도 주님과 깊이 교통하며 방언으로 개인의 영성을 쌓고 열심히 기도하는 목회자들은, 그 영적인 힘이 결국 '말씀의 은사'와 탁월한 설교 사역으로 뿜어져 나오게 됩니다.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성도가 깨어 기도할 때, 그의 의술 위에 성령의 능력이 임하여 칼을 째고 수술하는 과정 속에서 신유의 이적과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이러한 재능의 기름 부으심은 교회 울타리 안을 넘어 '세상 속에서도' 강력하게 통합니다. 따라서 세상 속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배출되어야 합니다.

좋은 예로, 방언 은사는 없지만 하나님 앞에서 늘 경건하게 살아오신 전성한 장로님이 계십니다. 그 경건의 은혜가 교장 선생님이라는 직업 속으로 그대로 흘러 들어가 미션 스쿨을 진정한 기독교 학교답게 세워 가시는 귀한 열매를 맺었습니다. 이전에는 학교 내에 없던 기독교 동아리와 교사 중창단이 조직되었고, 학생들을 위해 기독교적 마인드를 가진 강사들을 초청하여 훌륭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에 필요한 모든 재정을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공급해 주시는 기적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성령님의 위로하심이 진행되면서 일어나는 부흥의 역사입니다.

성령의 위로는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온전하게 하시고 자기 몫을 다하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하시고 축복받게 하시는 영적 여정으로 인도하십니다. 우리 교회가 이러한 성령의 위로 속에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날마다 수적으로나 영적으로나 크게 부흥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및 기도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날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승리하는 저희가 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성령의 위로하심 속에서 온전케 됨을 입고 각자의 소임을 다하게 하시며,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의를 이루어 주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은혜의 삶이 되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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