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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강해

행10장 15-43절 베드로의 복음 설교 260621 원주희 목사

작성자원주희|작성시간26.06.21|조회수14 목록 댓글 0

행10장 15-43절 베드로의 복음 설교 260621 원주희 목사

https://youtu.be/ul9ynC0qB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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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은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화평의 복음이 온 유대에 전파된 사건을 다룹니다.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며, 예수님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자를 고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그를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은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증인들에게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해지셨으며, 그를 믿는 자는 누구나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게 됩니다.

 

1. 만유의 주 예수 그리스도와 베드로의 선포

이 말씀의 축복과 은혜가 우리 교회 가운데 함께하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베드로는 이방인인 고넬료의 집에 방문하여 요한의 세례(회개의 세례)로부터 시작되는 단순하고 명확한 복음을 전했습니다.

당시 고넬료와 그의 가족들은 이방인이었음에도 유대교 신앙에 정통한 경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민족적으로는 유대인이 아닌 이들에게 유대 민족주의적 관점, 즉 '다윗의 자손으로서 다윗의 나라를 회복하고 로마의 식민지로부터 해방을 가져다줄 메시아'를 전하는 것은 성경적이지도 않고 전혀 올바르지 않은 접근이었습니다.

 

2. 민족종교에서 세계인의 신앙으로

예수님의 공생애 당시 제자들을 비롯한 이들은 예수를 민족의 메시아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면서 그들의 좁은 가치관은 완전히 깨어지고 변화되었습니다.

반면, 끝까지 자신의 메시아관을 바꾸지 않은 인물이 바로 가룟 유다입니다. 그는 원래 로마 입장에서는 테러리스트이고 유대 민족 입장에서는 독립운동가였던 '열심당'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3년 동안 오직 유대 독립이라는 자신의 꿈만 투영했기에, 자꾸만 죽겠다고 말씀하시는 십자가의 예수는 의미가 없었고 결국 예수님을 쉽게 버리고 치워버렸습니다.

오늘날의 신앙인들도 병 고침, 재정 문제 해결, 자녀의 성공 등 내 중심의 소원을 예수님께 투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신앙은 주님이 말씀하실 때 내 꿈을 꺾고 수그릴 줄 아는 것입니다. 내 꿈이 아닌 주님의 꿈이 이루어지도록 나를 굽히는 것이 복음의 시작입니다.

 

3.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 예수 그리스도

베드로가 전한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세우셨다는 사실입니다.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는 존재'라는 개념은 우리 전통 신앙에도 존재합니다. 전통적으로 천국과 지옥을 판결하는 최고신을 '옥황상제'라 불렀는데, 중국인들은 이를 줄여 '상제'라 했고 우리는 '하늘님'이라 불렀습니다. 이 '하늘님'에서 'ㄹ'이 탈락하면서 '하느님'이 되었는데, 이북 평양 지방의 사투리로는 이를 '하날님'이라 불렀으며 고어의 아래아(ㆍ) 형태로 표현되기도 했습니다. 한국 개신교의 부흥이 평양을 중심으로 일어났기 때문에 이 평양 사투리가 표준어가 되어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하나님'으로 통일된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라는 호칭은 단순히 수학적인 '하나(One)'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 신앙의 최고신 개념을 기독교가 전래 과정에서 차용한 결과물입니다.

베드로는 온 우주의 최고 재판장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선포합니다. 복음에는 이적의 측면도 있고 마태복음처럼 왕의 측면을 강조하는 면도 있지만, 베드로의 설교를 구술하여 기록한 마가복음의 초점은 인간의 죄를 짊어지신 '종으로 오신 예수'와 '온 인류의 재판관이 되신 예수'라는 두 가지 측면(신성과 대속의 죽음)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4. 현대선교의 숙제 : 문화적 장벽과 영적 전쟁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문화적 장벽을 넘어야 했습니다. 유대인이라는 신분적 한계를 깨고 이방인과 식사를 해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돼지고기 삼겹살(설교자 자신은 좋아하지만 유대인은 금기시하는)이나 기어 다니는 생물 같은 부정한 음식들을 마주해야 하는 산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겪는 상황과 일치합니다. 선교지에 가면 원주민들이 선교사를 테스트하기 위해서, 혹은 자신들에게 귀한 것이라는 이유로 굼벵이 구이나 지렁이 요리를 대접하곤 합니다. 유튜버들이 찍은 인도나 파키스탄의 길거리 요리 영상을 보면 까만 국물에 음식을 튀겨내고 과자를 발로 쓸어 담는 등 문화적 충격을 주는 장면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바퀴벌레 튀김을 주는 곳도 있는데, 선교사가 눈치껏 이를 받아먹고 동화되어야 비로소 그들과 친구가 되어 복음의 문을 열 수 있습니다.

선교에서는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자국 문화를 절대화하여 타문화를 '미개한 것'으로 여기게 되며, 19세기 선교처럼 제국주의적 부작용이 생기게 됩니다. "공산주의는 다 빨갱이다"라는 선입견만 가지고는 중국 선교를 할 수 없습니다. 자본주의 역시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물질만능주의의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인간이 만든 제도는 완벽하지 않기에, 선교사는 영적 전쟁에 무장하는 동시에 복음 안에서 다른 문화와 세계관을 열린 시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5. 세대간 문화적 차이와 선교

문화의 벽은 한국 교회 내부의 세대 사이에도 거대하게 존재합니다. 당장 교회 안에서 찬양 인도를 할 때만 보아도 세대 차이가 확연히 드러납니다. 젊은 세대들은 비트가 강하고 16분음표를 쪼개며 드럼 비트를 "쿵 치면서" 들어가는 '리듬파' 음악을 선호합니다. 반면 어르신들은 이러한 빠른 비트를 따라가지 못하며, 느리고 멜로디가 중심이 되는 '선율파' 음악을 좋아합니다. 정치적 견해나 가치관 역시 세대별로 완전히 다른 문화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대적 문화를 이해하고 접근할 때 다음 세대를 향한 복음 전파가 수월해지며 갈등을 줄일 수 있습니다. 다만, 복음을 가로막는 어둠의 세력과의 '영적 전쟁'은 어느 세대에서나 치열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문화적 소통과 영적 무장이라는 두 가지 산을 잘 뛰어넘을 때 비로소 고넬료의 가정에 일어났던 복음의 역사가 재현될 수 있습니다.

 

6.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라

베드로가 선포한 복음의 본질은 명확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죄 사함을 얻고, 죄 사함을 받으면 성령님이 임하셔서 우리를 창조 본연의 온전한 형상으로 회복시키십니다. 변화되어 온전해진 사람은 '제 몫의 인생'을 살아내며 선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 열매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세상의 귀감이 되면, 주변 사람들이 "나도 믿어야겠다"라며 복음이 전파되는 '영적 도미노'의 확대 재생산이 일어나는 것이 복음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복음의 컨베이어 벨트 공장이 툭 끊어졌습니다. 이유는 교회 안에서 복음을 믿는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로만 예수를 믿는다고 할 뿐 삶이 변하지 않으니, "나처럼 해 봐라, 요러계수믿습 이렇게 찌롱할 때" 복음이 풀어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영적 도미노가 멈춰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 사이의 문화의 벽을 뛰어넘는 동시에, 교회 내부적으로 복음의 본질적 가치를 먼저 회복해야 합니다. 고넬료의 가정에 복음이 전해질 때 어떠한 안수 기도나 병 고침 없이도 오직 말씀이 선포되는 순간에 성령이 임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그때그때 필요한 방식으로 복음의 문을 열어 가십니다.

 

7. 생명 얻는 회개

세상 사람들도 '일신우일신'의 자세로 어제를 반성하고 오늘을 새롭게 살고자 결단하며 자기를 다듬어갑니다. 그러나 사죄의 은혜가 없는 세상의 반성은 결국 과거에 발목을 잡혀 상처나 옛날 좋았던 얘기만 되풀이하며 오늘을 온전히 살아내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힙니다.

반면 복음 안에서 주어지는 '생명 얻는 회개'는 우리 죄를 완전히 사하여 정결하게 만듭니다. 그 위에 정결한 영인 성령님이 임하시며, 우리를 더욱 깊은 '성화의 세계'로 인도하십니다. 이 성화는 우리의 영혼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 가정 전체를 주님의 온전하심으로 충만하게 만드는 새 피조물의 축복입니다. 이 복을 누릴 때 우리 또한 세대와 문화의 벽을 깨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땅끝까지 편만하게 전하는 통로로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결단의 기도

식어버린 이 시대에 기도의 제단을 다시 쌓고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는 저희가 되기를 원합니다. 참된 부흥의 역사가 이 땅에 다시 타오를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가 거룩한 불쏘시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주일 예배를 통해 그리스도의 영광이 풀어지고 하나님의 온전케 하시는 축복이 모든 심령과 가정 위에 충만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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