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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강해

눅18장 35-43절 기회를 잡으라 260614 원주희 목사

작성자원주희|작성시간26.06.15|조회수23 목록 댓글 0

눅18장 35-43절 기회를 잡으라 260614 원주희 목사

https://youtu.be/mRTIUU8eenU

구술원고링크

https://cafe.daum.net/bless-ch/Dikw/139?svc=cafeapi

1. 기회의 특성과 카이로스(Kairos)의 본질

그리스 신화의 기회의 신 '카이로스(Kairos)' 동상은 기회의 본질을 잘 보여줍니다. 그는 천사처럼 날개가 있고 앞머리는 무성하지만 뒷머리는 대머리입니다. 이는 기회가 다가올 때는 잡기 쉽지만, 지나간 뒤에는 결코 붙잡을 수 없음을 상징합니다. 또한 그의 손에 들린 저울은 기회 앞에서 고뇌하며 저울질하는 인간을, 다른 손의 칼은 기회라고 판단했을 때 '칼 같은 결단'이 필요함을 뜻합니다.

인생은 수많은 기회를 놓치고 후회하는 순간들로 가득합니다. 눈앞의 작은 이득에 눈이 멀거나 위험해 보인다는 이유로 놓친 기회들은 만남, 학업, 사업 등 삶의 전 영역에 존재하며 인생의 후반전을 결정합니다. "버스 지나간 뒤에 손 흔든다"는 속담처럼, 이미 지나간 기회를 두고 뒤늦게 후회하는 것이 인간의 보편적인 한계입니다.

 

2. 본문의 배경과 군중의 내면적 갈등

본문의 여리고성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순례자들로 가득했습니다. 당시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다는 소식에 영적으로 경천동지(驚天動地)한 백성들은 내심 예수가 로마의 압제에서 자신들을 구원할 '메시아'가 아닐까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이 기대를 입 밖에 내지 못했습니다. 네 개 제국의 식민 지배를 거치며 뼛속까지 두려움이 박힌 유대인들에게 예수를 '다윗의 자손(메시아)'이라 부르는 것은 로마에 대한 반역이자 유혈 진압을 부르는 극도로 위험한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군중은 예수를 '선지자' 정도로 낮추어 불렀고 제자들조차 몸을 사렸습니다. 오히려 제자들은 예수가 예루살렘에서 정권을 잡을 때 차지할 권력 자리에만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3. 옵션을 극복하고 외치라

이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 시각장애인 거지 '바디메오'는 예수가 지나간다는 소리에 "다윗의 자손이여!"라며 금기어를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군중은 화를 입을까 두려워 그를 꾸짖고 제재했으나, 바디메오는 더욱 크게 소리 질렀습니다.

유월절은 종교적 자비심이 고조되는 시기라 거지들에게는 일 년 중 가장 수입이 좋은 '대목'입니다. 사탄은 언제나 영적 기회 앞에서 "세상적 이익과 영적인 은혜를 적당히 타협하라"는 현실적인 옵션을 제시합니다. 원래대로라면 바디메오도 동정심을 자극해 한 푼을 구걸하는 삶에 안주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영원한 생명과 치유의 기회 앞에서 과감히 현실의 물질적 대목을 내려놓고, 주변의 위협을 믿음으로 돌파하며 오직 예수의 자비를 구했습니다.

 

4. 위기와 함께 찾아오는 기회의 양면성

인생의 중대한 영적 기회는 언제나 감당하기 힘든 위기의 옷을 입고 찾아옵니다.

월리스 존슨(Wallace Johnson)의 예화: 30대에 직장의 파산을 겪고 10년간 혹독한 시련을 겪던 그는, 40대에 가족 여행 중 지저분하고 엉망진창인 숙박업소를 경험했습니다. 그는 좌절하는 대신 그리스도인들이 안심하고 묵을 수 있는 깨끗한 숙소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품었고, 이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세계적인 호텔 체인 '홀리데이 인(Holiday Inn)'을 창업했습니다.

오 권사님 아들의 예화: 이와 대조적으로 기회를 놓친 인생도 있습니다. 신실한 오 권사님의 아들은 대기업에 근무하던 인재였으나 허리를 크게 다쳐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고난이라는 위기 속에서 하나님을 붙들었다면 새로운 기회를 잡았을 텐데, 그는 은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평생을 무기력하게 소일하며 주식 투자에 몰두했고, 신앙 없던 육신의 아버지를 그대로 닮아간 채 안타까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5. 무리의 신앙을 넘어선 인격적 관계와 기도의 랠리

참된 신앙은 단순히 천국 가는 보험에 그치지 않고 인생 전체가 변화되는 역사입니다. 이를 위해선 '무리의 신앙'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에워싼 군중은 많았으나 예수님과 구원의 관계를 맺은 사람은 바디메오뿐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종교적 열심을 가진 교인은 많지만, 주님과의 '1대1 인격적 관계'가 없다면 그저 무리에 불과합니다. 십자가 보혈이 내 죄를 사하셨음이 뼛속 깊이 사무치는 실제적 경험이 되어야 무리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맺는 인격적 관계의 핵심은 주고받는 '기도의 랠리'에 있습니다. 배드민턴 고수는 초보자가 공을 엉뚱하게 쳐도 다시 치기 좋게 툭 툭 띄워주며 랠리를 이어갑니다. 인간관계의 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논리로 상대를 제압하려는 공격형 대화는 결국 사람을 잃습니다. 아내를 말로 이기려는 남편은 어리석은 자이며, 대화에서는 지는 게 이기는 것입니다. 과거 아침 방송의 이금희, 이상벽 진행자처럼 따뜻한 말 한마디로 상대의 마음을 열어 속이야기를 꺼내게 하는 것이 소통형 대화입니다.

우리 기도 역시 이와 같습니다. 바디메오의 첫 기도는 "보기를 원하나이다"라는 육체적 결핍에서 시작된 투박한 부르짖음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도가 기도를 끌고 가는 영적 랠리가 시작되면, 기도는 점점 더 깊어져 반드시 '십자가'의 자리를 통과하게 됩니다. 그 안에서 깊은 통회가 터지고, 용서가 일어나며, 세상이 줄 수 없는 주님의 초자연적인 평강이 영혼을 뒤덮는 인격적 교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6. 내외면의 난관 극복

바디메오는 자신을 가로막은 내적·외적 난관을 모두 극복했습니다.

내면의 난관: 이름 없이 '디메오의 아들'로 불리며 잉여 인간 취급을 받던 그의 내면에는 거절감과 열등감, 상처가 가득했으나 이를 깨뜨리고 일어섰습니다.

외면의 난관: 교회 공동체는 천사들의 모임이 아니기에 사귀다 보면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상류의 거친 돌들이 부딪치며 깎여 하류의 둥근 몽돌이 되듯, 하나님은 불완전한 공동체를 통해 우리의 모난 인격을 다듬으십니다. 쉽게 깨뜨릴 수 없는 '가정'과 '교회' 안에서 사람을 뛰어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바디메오는 잠잠하라는 사람들의 장벽을 뛰어넘어 주님을 만났습니다.

난관을 극복한 바디메오는 눈을 뜬 후, 치유를 자랑하는 데 머물지 않고 예수를 따라 십자가 길로 동행하는 '제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무리'에서 '신자'로, 다시 '제자'로 진화해야 합니다. 평생 교회를 다니고도 임종 직전에 구원의 확신이 없어 두려워하다가 뒤늦게 회개하고 평안을 찾는 부끄러운 신앙이 아니라, 평소 삶 속에서 믿음이 자라가야 합니다.

 

6. 예수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은 자에게는 두 가지 영적 메커니즘이 주어집니다.

엑수시아(권세):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모든 자에게 합법적으로 부여되는 신분적 권리입니다. 주민등록증 하나로 국민의 혜택을 누리듯, 특별한 은사가 부족해도 신자에게는 이미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께 청구할 수 있는 자녀의 권세가 있습니다.

두나미스(능력): 자녀의 권세를 기반으로 기도의 자리에 깊이 파고들 때 성령을 통해 부어지는 역동적인 영적 능력입니다.

경찰관이 과속 차량을 멈춰 세우는 법적 힘이 '권세(엑수시아)'라면, 도망치는 범죄자를 추격해 강제로 제압하는 물리적 힘은 '능력(두나미스)'입니다. 성령의 강력한 능력인 두나미스는 이미 주어진 자녀의 권세를 붙잡고 끈질기게 부르짖는 자에게 약속된 것입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낙심하지 말고, 자녀의 권세를 사용하여 하나님이 개입하실 때까지 기도의 자리를 지켜내야 합니다.

 

7. 결론

우리 모두는 종교적 열심에 도취한 '무리'에서 깨어나, 보혈을 통과한 '신자'가 되고, 십자가를 향해 동행하는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자녀의 권세를 100% 활용함으로써 내면의 상처를 치유받고 사람의 장벽을 뛰어넘어, 남은 생애 동안 하나님의 뜻과 의를 온전히 이루어 드리는 위대한 카이로스의 기회를 거머쥐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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