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9장9장38-45절 변화산 위와 아래 250905 원주희목사
구술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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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심 개 요
1.변화산 아래에서 마주한 현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내려오시자 큰 무리가 맞이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소리 질러 자신의 아들을 고쳐달라고 간청합니다.
아들은 귀신에 들려 갑자기 부르짖고 경련을 일으키며 거품을 흘리는 등 몹시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현대 의학으로 보면 간질과 유사한 증상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데려갔지만, 그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이 상황을 보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들을 치유하셨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위엄에 놀랐습니다.
2. 영적 세계와 인지 세계의 관계
영적 세계와 인지 세계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영적 세계에 변화가 일어나면 인지 세계에도 변화가 나타납니다.
영성 사역은 영적 문제를 해결하여 인지적 문제를 풀려는 시도입니다.
그러나 인지 세계를 먼저 바꾸면 영적 세계도 함께 풀립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하나님께 잘못한 것을 회개하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불편했던 것을 풀면, 땅에서 풀면 하늘의 것도 풀립니다.
영적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인지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재발하기 쉽습니다.
영의 문제를 풀면 인지의 문제를 풀기가 쉬워지지만, 인지의 문제를 풀면 영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풀립니다.
영성의 세계와 인지세계,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어야 온전한 회복이 일어납니다.
3. 능력을 잃어버린 제자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미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능력을 행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왜 이번에는 실패했을까요?
예수님과의 깊은 교제 시간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은 자석에 못을 문질러 못이 자화되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과 가까이 있을 때 주님의 성품과 능력이 우리에게 덧입혀집니다.
그들은 주님과 예배의 관계에서 메너리즘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은혜를 쏱아버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서로 누가 크냐고 다투고 시기 질투하며 내면의 죄성을 따라 살았습니다.
다른 이유는 지나친 사역으로 영적 탈진이 일어났을 수도 있습니다
영성을 잘 관리하지 못한 결과로 이전에 받았던 은혜와 능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4. 변화산 위의 영광과 변화산 아래의 사명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변화산 위에 올라가는 시간이 중요합니다.
이 시간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 영혼을 단장하고 주님의 은혜를 덧입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변화산 위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받은 은혜를 가지고 변화산 아래로 내려와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여기서 사명은 이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는 삶을 의미합니다.
5. 사단의 전략에 속지 맙시다
잘 믿으려하는 성도들이나 목회자 들들에게서 종종 일어나는 오류는
어떤이는 변화산 아래를 추구하여 즉 사회 참여에 집중하다 영성을 잃고,
일부는 변화산 위 지나치게 즉 영적인 면을 추구하다 세상과 단절되는 문제를 가지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은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변화산 위의 영광을 가지고 변화산 아래에서 사명을 감당하는 삶,
이것이 진정한 회복과 승리의 길입니다.
구술원고
이 말씀의 축복과 은혜가 우리 교회와 저와 여러분의 남은 인생 가운데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변화산 정상에 올라갔다가 내려오셨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올라갔다가 내려오셨어요. 내려왔더니 여기에 난리가 난 겁니다. 무리 중 한 사람이 소리 질러서 말하기를 "선생님, 청하건대 내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 외동아들인데, 아들을 돌봐 달라는 겁니다. 상황이 어떠했습니까? "귀신이 그를 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가나이다."
이것은 무슨 현상입니까? 현대 의학으로 말하면 간질과 비슷합니다. 부르짖는 것은 간질하는 사람에게 흔치 않지만, 갑자기 아! 하고 소리 지르거나 어떤 우울증 같은 증상이 일어나고, 그다음에 경련이 일어나 온몸이 뒤틀리는 증상은 뇌전증(뇌의 전기적 신호에 이상이 생겨 발생하는 병)이라고도 합니다. 경련이 일어나 발작하고 거품을 흘리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간다고 말합니다.
귀신이 완전히 떠나간 것일까요? 아니면 그런 증상이 잠시 잦아든 것일까요? 이분은 귀신이 겨우 떠나갔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귀신에게 공격받을 때 귀신 들렸고, 괜찮아지는 때도 있고, 또 괜찮다가 다시 그러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괜찮을 때는 귀신의 영향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런 현상이 일어날 때 귀신이 들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계속해서 공격받고 있는 것입니다. 늘 공격받고 있는데 간헐적으로 발작이 일어나는 거예요. 영이 드러나는 것과 영이 내재해 있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어둠의 영이 내재해 있다가 그 영이 발작을 일으켜서 드러나는 현상과, 평상시에 내재해 있는 것은 다릅니다. 내재해 있다가 드러나는 겁니다. 어쨌든 분석은 그렇습니다.
그런데 드러날 때의 모습은 의학적으로는 뇌전증에 가까운 간질에 가까운 증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 아이를 고쳐 달라고 데리고 왔는데,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라고 지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쫓아 달라고 한 것을 보면, 이분은 귀신이 쫓겨나면 이 뇌전증도 고쳐질 수 있겠다고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적 세계에 변화가 일어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인지 세계에도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것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영의 세계를 변화시켜서 인지 세계를 변화시키려 하면, 이것은 영성 사역으로 가는 거예요. 그런데, 따라해 봅시다. 인지 세계를 바꾸면 영적 세계도 바뀝니다. 인지 세계를 바꾸면 영적 세계도 바뀌어요. 눈에 보이는 인지적 세계 안에서 내가 하나님께 잘못한 것을 회개하고, 사람과의 관계가 불편해졌던 것을 풀면, 땅에서 풀면 하늘의 것도 풀리기도 합니다. 또한, 하늘의 것을 풀면 땅의 것을 풀기가 쉬워집니다. 이 비밀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모르면 영성으로만 가려 하는데 정작 문제가 안 풀립니다.
영의 세계에서 푸는 것과 인지 세계에서 푸는 것은 함수 관계에 있습니다. 그래서 인지 세계에서 풀리면 영의 세계도 풀려요. 거꾸로 영의 세계를 풀면 인지 세계가 풀리냐고요? 아니요, 인지 세계를 풀기가 쉬워집니다. 영의 세계를 풀었는데 인지 세계가 나아지다가도 다시 나빠지곤 합니다. 축사 치유 사역을 하면 끝이 없고, 내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 때문에 때로는 좌절감이 들기도 하지만, 사역을 해 준 뒤에 재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분명히 사역해 줄 때는 괜찮아져서 돌려보냈는데 또 재발하는 겁니다.
영적 세계에서 풀리는 것과 인지 세계에서 풀어지는 것이 맞물려 있는데, 이것(인지 세계)을 풀리면 이것(영적 세계)은 풀려요. 풀립니다. 그런데 이것(영적 세계)을 풀면 이것(인지 세계)은 안 풀려요. 풀기가 쉬워집니다. 쉬워진 상태에서 이것(인지 세계)을 풀면 양쪽에 다 풀려 버립니다. 그래서 영육 간의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 축복과 은혜가 우리 교회 안에 이루어지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영성 사역자들은 주로 이것(영적 세계)을 풀어서 이것(인지 세계)을 풀어내려 하지만, 실패합니다. 예, 백에 두세 명 정도만 성공해요. 왜냐하면, 이것(영적 세계)을 풀면 이것(인지 세계)을 풀기가 쉬워지는데, 이것(인지 세계)은 안 풀고 계속 이것(영적 세계)만 풀려고 하다 보면 언밸런스가 되어 계속 실패하게 됩니다. 마귀는 참 영의 세계에서 교묘합니다. 사탄도 인격성이 있어요. 그래서 비신성이죠. 그들도 쫓겨나면 갈 데가 없어요. 그래서 쫓아내려고 하면 더 강하게 잡는 겁니다. 더 강하게. 그래서 쫓아냈다가도 일곱 귀신을 데리고 들어와서 더 강하게 잡아 버립니다. 그래서 영의 세계를 풀고 인지 세계를 차근하게 풀어가도록 영적 지도가 필요한 겁니다. 함께 가면 인생은 예수님 안에서 회복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할렐루야.
예수 안에서 우리 교회와 우리 삶의 자리 안에 이 두 가지가 같이 풀어지는 아름다운 은혜가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축원합니다.
자, 지금 어쨌든 이 제자들에게 와서 예수님은 12제자, 그 당시에 12제자들이 둘씩 짝지어 각지로 파송되어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고 이적을 행하던 사람들이었으니, 그 당시 전문 사역자들이었습니다. 축사 치유의 전문 사역자들이에요. 그들에게 와서 내쫓아 달라고 구했는데, 둘씩 파송되어 갔을 때는 역사가 일어났는데, 지금은 제자 무더기입니다. 세 명을 데리고 왔으니 아홉 명의 제자가 남아 있어요. 그 아홉 명의 제자뿐만 아니라 그 주변 제자들까지 해서 제자 무더기입니다. 그 제자 무더기에 왔으면 성령의 임재가 얼마나 강했겠어요?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강했겠어요? 그런데 그런 성령의 역사 안에 있는데도 고쳐 주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능히 못하더이다.
주님은 41절에 이렇게 책망하십니다. "믿음이 없고 폐역한 세대여." 이 책망은 지금 누구에게 하는 겁니까? 그 아버지에게 하는 겁니까? 제자들에게 하는 겁니까? 안타깝고 마음 아파도 제자들에게 한 얘기입니다. 엉뚱한 사람을 책망하지 않았어요. 그 아버지를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없고 폐역한 세대여." 다른 성경에 보면 그 아버지가 "할 수만 있거든 무슨 일이든 해 달라."고 말합니다. 제자들 보니까 시원찮은데, 당신도 보니까 어떨지 모르겠는데, 할 수만 있거든 제발 좀 해 달라고 하니 그 아버지를 책망하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그 부모를 그렇게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주여, 믿나이다. 내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옵소서."라고 말합니다. 같은 장면에 좀 더 자세한 부연 설명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믿음이 없다고 책망하시고, 그다음 제자들에게는 "믿음이 없고 폐역한 세대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다 같이 읽어봅시다.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지금 공생애가 이제 끝나가거든요. 3년 가까운 세월 동안 주님은 제자들을 참아 주시고, 기다려 주시고, 함께해 주시고 그러셨는데도 너희에게 이 능력이 나타나지 않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석에 못을 가지고 이렇게 자꾸 문지르면, 이 못이 자화됩니다. 자화돼서 이것을 철가루에 대면 붙어 나옵니다. 시간이 지나면 자화된 성분이 점점 더 빠져나가서 자석의 기능을 잃어버려요. 순간적으로 자화된다고요. 예수님과 가까이 있으면, 예수님의 인격이 흘러옵니다. 예수님을 용납할 때 은혜 아래서 우리 영혼의 회복이 일어납니다. 할렐루야! 이게 주님과 자화되는 거예요. 주님의 성품에 덧입혀지고, 주님의 능력에도 덧입혀지고, 주님의 말씀과 주님의 달란트와 주님의 모든 재능이 우리에게 카피되듯이 입혀집니다.
그런데 함께 있었는데 지금 다 까먹었다고 하는 겁니다. 안타깝게도 이 모습이 오늘 이 세대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나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주님과 함께 있는 그 순간에 얼마나 농밀한 시간을 가졌느냐, 얼마나 그 함께 있는 시간을 깊이 제대로 가졌느냐가 주의 능력이, 주의 은혜가 우리에게 입혀질 수 있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것은 능력만이 아닙니다. 주님의 성품도, 할렐루야, 주님의 마음도, 할렐루야, 주님의 언어 습관도, 주님의 기도 생활의 습관도 입혀질 수 있는 놀라운 은혜의 시간입니다. 그래서 이 자화되는, 주님의 성품과 인격으로 덧입혀지는 영역은 사람마다 좀 다를 수 있지요.
주의 능력이 임하면 말씀의 재능이 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그것을 교사라고 불렀습니다. 주의 능력이 깊이 임하고 주님과 교제하다 보면 영권이 강해져서 능력 사역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사역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주의 능력이 이렇게 입혀지고 입혀지면 예언적인 음성을 듣게 됩니다. 어쨌든 그런 주의 능력이 입혀지는 시간을 얼마나 농밀하게 가졌느냐, 그게 예수의 능력이 우리에게 덧입혀지는 복된 시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귀한 시간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1년에 봄 절기와 가을 절기를 따로 정했습니다. 봄 절기는 유월절로부터 시작해서 초실절까지의 긴 시간을, 무교절을 포함해서 유월절을 정점으로 지나 초실절까지의 시간을 일주일 정도 되는 그 긴 시간을 하나님 앞에 머물러 있는 시간으로 두었습니다. 가을 절기는 7월 1일부터 7월 10일까지입니다. 열흘 동안의 긴 시간을 하나님 앞에 머물러 있는 시간을 두었습니다. 그렇게 주님 안에 머물러 있을 때 예수의 능력이 덧입혀지는 거예요.
절에 가면 스님들이 하안거, 동안거 같은 것을 합니다. 하안거는 너무 더울 때 시주하러 나가지 않고 절 안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때 그들이 무엇을 하냐고요? 경전을 읽습니다. 불교 경전도 읽고 다른 종교의 경전도 읽는데, 성경책도 그렇게 많이 본대요. 그렇게 자기 공부하고 자기를 정진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동안거는 너무 추울 때 시주하러 나가지 않고 절에 있으면서 자신을 단장하는 시간을 쭉 가집니다. 더 나아가 소승불교의 사람들처럼 암자에 들어가서 면벽 수도하면서 자신과 내면에 있는 깊은 자기를 성찰하는 시간을 가진다는 겁니다. 이것은 불교만 그런 게 아니에요.
유교의 유생들도 관직에 나갔다가 세속 일을 접하고 관리로 일하다가 자신이 관리로 일하는 것들이 공자님의 가르침과 어긋났다 싶을 때 하안거하면서 사직서를 하나 탁 올리고는 낙향합니다. 낙향해서 서당을 열어 아이들에게 공자왈 맹자왈 가르치면서, '하늘 천, 따 지'를 가르치면서 자신의 마음을 단장하는 시간,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공자님의 가르침에 일치하는 그런 시간을 가진다는 거예요. 그리고는 그다음 또 임금이 부르면 이제 때가 됐습니다. 가서 나라의 중요한 일을 보는 겁니다.
자, 제자들은 왜 이렇게 능력을 잃어버렸습니까? 그들이 변화산에 올라가는 여정들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변화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서 자신을 단장하고, 마치 스님들이 하안거, 동안거 하듯이 자기 영혼을 단장하는 그런 시간을 놓쳐 버렸기 때문에 한때 능력이 있었던 사람이 지금 그 능력을 잃어버린 겁니다.
왜 이 제자들이 이 능력을 잃어버리고 책망받을 수밖에 없었느냐?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었을 때 영적인 감각을 가지고 이 땅의 삶을 진리로 살아내고 세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것을 놓쳐 버린 겁니다. 누가 크냐고 논쟁하고 자신의 죄성을 따라 비교, 질투하고 시기 질투하는 별일이 제자들 속에 다 일어나 버린 겁니다. 그랬더니 받은 은혜는 다 놓쳐 버리고 예수님께 책망받았습니다. "믿음이 없고 폐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아 주리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시대에 저희 같은 목사들이 70년대, 80년대 나름 은혜받은 사람들은 신학교를 갔습니다. 은혜 안 받고 교육전도사 생활, 한 달에 25만 원, 30만 원 받는 교육전도사 생활을 어떻게 견뎌 나갑니까? 지하방 같은 방에 신혼 살림을 열어서 그렇게 그 가난한 삶을 견뎌 나가는 일정한 시간을 가지는데요.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뎌 나갑니까? 세속적 직업을 가졌으면 돈도 더 잘 벌고 더 잘 살았을 텐데, 인생을 그렇게 헌신하며 하나님께 갈 때는 나름 은혜받은 기억과 축복이 있어요. 할렐루야! 그런데 그것을 목회해 나가는 과정 안에서 이런 일 저런 일, 자신의 죄성, 상황의 여러 가지 것들 속에서 잃어버리는 겁니다. 잃어버렸더니 그들의 변화산의 영광이 사라져 버린 속에서 지금 대책 없이 귀신 들린 아이 앞에서 아무 힘을 쓰지 못하며 주님의 책망을 받게 되는 그러한 상황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변화산 위에 올라가야 합니다. 할렐루야! 정기적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받은 은혜 아래에서 변화산 아래로 내려오는 믿음의 결단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럴 때 받은 은혜 아래에서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는 아름다운 축복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이 은혜와 축복이 저와 여러분들 속에 함께하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나라 장로교단의 기장(대한예수교장로회(기장))이라는 교단이 있지요. 기장, 그리고 합동측, 통합측 이 세 가지가 장로교단의 큰 줄기입니다. 요즘은 백석 등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 기장이라는 장로교단은 참여 신앙이 강합니다. 도시 근로자를 위해서 또는 다른 무엇을 위해서 참여 의식이 강해요. 참여 의식이 강해서 현실적인 정치 문제, 경제 문제, 여러 가지 문제들 속에 가면 항상 기장 소속 목사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변화산 위의 영광 안에서 참여하면 주님의 영광이 흘러갑니다. 그런데 변화산 위의 영광이 없이 참여만 하면 세속적인 NGO와 똑같아집니다. 그게 기장 교단의 문제입니다.
감리교는 영국 성공회에서 출발했습니다. 성공회 안에서 '로우 처치'(low church), 즉 가장 낮은 사람들을 위한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분들이 미국에 갔다가 미국 성공회가 되었다가 미국 독립전쟁할 때 감리교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감리교는 낮은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있어요. 그런데 감리교회에서 성령 운동하는 그룹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이 성결교로 나오고, 그다음 오순절 교단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어 있어요. 감리교는 '로우 처치'를 해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는 그런 그룹들은 감리교 안에서 기장처럼 NGO처럼 활동합니다. 감리교 안에서 성령 운동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김선도 목사님 같은 분들이나, 지금 유기성 목사님, 또 저기 마가 다락방에 있는 박보영 목사님 같은 분들은 감리교 안에서 이 영성 운동을 하는 사람들인데, 이 두그룹이 따로 놉니다.
주님은 이것이 하나 되기를 원하십니다. 변화산 위에도 있고, 할렐루야, 변화산 아래에도 있고, 할렐루야, 이 두 가지를 그 영성 가지고 변화산 위의 영광을 가지고 변화산 아래의 삶을 사명으로 감당해 나가는 것, 그게 주님이 원하시는 모습인데, 이게 이상하게 지금 양쪽으로 극단적으로 분리되어 이쪽은 세속화되어 버리고 이쪽은 너무 영성만 강조하면서 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 이것을 함께 이루어내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변화산 위에도 있고 때로는 변화산 아래에도 내려오는, 주님이 정말 원하시는 신앙의 모습, 그것으로 주님의 사명을 제대로 이루어내는 아름다운 은혜, 영혼을 건져내며 현실적인 문제들 속에 빛과 소금 되는 아름다운 역사가 우리 교회에, 우리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주의 평강이 우리를 주장하여 주시고, 주님의 자비가 우리를 주관하여 주셔서, 예수 안에서 온전한 승리와 이김의 삶이 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고, 아버지, 복잡한 세상 가운데서 변화산 위의 영광과 변화산 아래의 사명을 잘 조화시켜 나가며 남은 인생을 온전히 살아내는 귀한 은혜가 우리에게 속한 모든 성도들 가운데, 삶의 자리들 가운데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함께해 주셔서 우리 가정에 큰 변화가 있게 하시고, 우리가 속한 공동체들 속에 빛과 소금 되는 아름다운 역사를 이루도록 은총 더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