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십자가&부활 설교

행9장1-11절 부활의 복음 260612 원주희 목사

작성자원주희|작성시간26.06.12|조회수23 목록 댓글 0
행9장1-11절 부활의 복음 260612 원주희 목사
https://youtu.be/QR-s9zJ0DC0
구술원고링크
https://cafe.daum.net/bless-ch/Dhaz/42?svc=cafeapi


1. 빛으로 찾아오신 주님
오늘 본문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극적인 사건인 사울의 회심을 다룹니다. 사울은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죽이려 서슬 퍼런 살기를 등등하게 뿜으며 다메섹으로 향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길 위에서 사울은 홀연히 하늘로부터 임한 강력한 영광의 빛을 맞닥뜨렸습니다. 땅에 거꾸러진 그에게 부활하신 주님의 준엄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이 강렬한 빛 앞에 사울은 눈이 멀었고, 사흘 동안 식음을 전패하며 오직 기도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영적 고독 속으로 가두어졌습니다.


2. 십자가와 부활복음의 두 축
성도 여러분, 기독교의 핵심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라는 두 축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우리의 믿음은 헛된 것입니다. 특별히 춘천 한마음교회의 김성로 목사님은 성도들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유독 이 ‘부활’에 깊은 강조점을 두고 복음의 능력을 선포하십니다.


3. 운전대를 주님께 맡기는 인생
김성로 목사님은 원래 CCC 출신입니다. CCC의 전도 책자인 『사영리』를 보면 신앙 성장의 핵심 비유가 나옵니다. 예수님을 내 인생에 초청해 놓고도 여전히 내가 주인 노릇을 하며 주님을 종 부리듯 부려 먹는 성도가 있는가 하면, 내 인생의 주권을 주님께 온전히 내어드리는 성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주권을 주님께 양도할 때, 비로소 주님은 우리 인생의 진정한 ‘운전수’가 되셔서 우리의 삶을 친히 이끌고 가십니다.


4. 삶이 변하지 않는 신앙을 향한 고민
그런데 김 목사님이 목회를 하면서 깊은 회의감에 빠졌습니다. 구원의 도를 전하면 성도들이 눈물도 흘리고 은혜를 받으며 회개도 하는데, 정작 정서적인 감동이 지나간 후 성도들의 실제 삶은 통 바뀌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죄는 고백하지만, “주님이 내 인생의 진짜 주인입니다”라는 명제 앞에서는 “목사님, 이 험한 세상에서 누가 그렇게 삽니까? 그저 예수 믿고 구원받아 천국만 가면 됐지” 하며 뒤로 물러서는 성도들의 태도를 보며 깊이 고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5. 체육 수업에서 배운 모델링의 비밀
그때 과거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체육 교사였던 목사님은 수업 방식에서 중요한 목회적 힌트를 얻었습니다. 축구를 가르칠 때 복잡한 전술이나 요란한 이론을 설명하는 대신, 학급에서 가장 똘똘하게 공을 잘 차는 아이 한 명을 본보기로 세워 나머지 학생들이 그 자세를 그대로 보고 따라 하게 만드는 ‘모델링(Modeling)’ 수업이었습니다. 훌륭한 본보기 하나를 세워두고 이를 공동체에 복제해 나가는 방식이었습니다.


6. 삶을 움직이는 강력한 신앙 고백
목사님은 이 교육 철학을 목회 현장에 도입해 학사관을 세우고 대학생들과 함께 먹고 자며 매일 삶 속에서 일하시는 예수님을 간증하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부활절 날, 한 자매가 눈물겨운 강력한 간증을 쏟아냈습니다. “부활의 주님이 지금 나와 함께하시는데 내가 이 어려움은 참아야지요. 부활의 주님이 나와 함께하시는데 이 고난은 내가 견뎌야지요. 부활의 주님이 나와 함께하시는데 내 돈은 주님 뜻대로 가치 있게 써야지요.” 이 간증을 들으며 목사님은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렇다! 부활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데 무슨 걱정이랴!’ 그때부터 이것이 교회의 핵심 타이틀이 되었습니다.


7. 부활 생명과 부활 승리
성도 여러분, 부활의 신앙에는 ‘부활 생명’과 ‘부활 승리’가 있습니다. 부활 생명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 영혼 내면에 하나님의 생명이 유입되는 것이라면, 부활 승리는 주님이 고난의 십자가를 통과해 최종 승리하셨듯 우리도 매일의 삶의 자리에서 부활하신 주님과 연합하여 현실의 문제를 이겨내는 실제적인 삶의 방식입니다. 이 부활의 주권을 강하게 선포하자, “현실적으로 말씀대로 못 산다”던 성도들의 삶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아버지에게 끔찍한 성폭행 상처를 입었던 딸이 아버지를 진심으로 용서하고, 극단적인 절망 속에서도 승리하는 기적 같은 간증들이 속출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면전 앞에 서는 ‘코람데오(Coram Deo)’의 삶인 줄 믿습니다.


8. 십자가의 회개와 부활의 회개
우리가 드리는 회개 역시 무엇을 기준에 두느냐에 따라 그 성격이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십자가 앞에서의 회개가 주로 개인이 지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죄, 즉 음란이나 거짓말을 양심에 따라 뉘우치는 것이라면, ‘부활’ 앞에서의 회개는 차원이 다릅니다. 부활은 예수님이 온 우주와 내 인생의 진짜 주인이라는 명백한 증거이기에, 부활 앞에서의 회개는 단순히 착하게 살지 못한 것을 넘어 ‘내가 내 인생의 주인 되어 살아간 죄’ 자체를 뿌리째 찍어내는 회개입니다.


9. 착한 사람을 넘어 삶의 주인을 바꾸는 신앙
성경이 말하는 본질적인 죄는 주권(Lordship)을 거부하고 자기 길로 가는 행위입니다. 잔치 초청을 거절하고 소를 시험하러 가고, 장가를 들러 간 이들의 행위는 세상적인 기준으로 결코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르심이라는 절대적 우선순위를 거부한 채 자신의 유익을 따라 행했기에 하나님 앞에서는 무서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본질은 그저 교양 있고 착하게 사는 수준을 넘어, 내 삶의 주인을 나에게서 예수 그리스도로 바꾸는 일에 있습니다.


관계의 돌파종의 의무에서 아들의 사랑으로
10. "내가 주인 된 죄"를 향한 통곡의 기도
저 역시 예전에 이 복음의 도전을 받고, 동료 목회자와 함께 오직 “내가 인생의 주인 된 죄를 회개합니다”라는 단 하나의 제목만 붙들고 기도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똑같은 말을 반복하려니 처음에는 10분만 지나도 기도가 맴돌고 힘들었지만, 시간과 물질과 목회의 영역에서 주님이 주인이신데 내가 주인 노릇 하며 불평했던 조각들을 낱낱이 고백하며 깊은 기도로 들어갔습니다.


11. 영혼을 깨운 주님의 음성, "너는 내 아들이다"
그렇게 40분쯤 절박하게 기도했을 때, 영혼 깊은 곳을 때리는 벼락같은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 종 아니다!” 깜짝 놀라 눈을 떴을 때 연이어 강력한 음성이 심장을 때렸습니다. 너는 종이 아니고 내 아들이다!” 나 같은 죄인을 종이 아닌 아들로 인정해주시고 품어주시는 그 압도적인 사랑 앞에, 저는 남은 한 시간 내내 하염없는 눈물만 쏟아냈습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의 가장 깊은 도달점은 법적인 ‘주인과 종’의 의무 관계가 아닙니다. 끊을 수 없는 사랑의 혈연관계인 ‘아버지와 아들’이며, 나아가 ‘신랑과 신부’의 연합인 줄 믿습니다. 신앙이 깊어질수록 하나님과의 관계는 의무에서 사랑으로 심화됩니다.


성막 기도로 보는 영적 성장성소그리고 지성소
12. 성전 뜰의 신앙 — 도덕과 양심의 단계
구약의 성막 구조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이 신앙의 단계를 시각적으로 명확히 보여줍니다. 솔로몬은 성전의 가장 바깥 구역인 ‘성전 뜰’에 윤리적 가르침이 담긴 ‘잠언’의 말씀을 배치했습니다. 도덕과 양심을 기준으로 삼는 어린아이의 신앙 단계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양심에 화인을 맞아 세상 속에서 비윤리적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뜰의 신앙조차 제대로 서지 못한 자들입니다.


13. 성소의 신앙 — 청지기와 사명의 단계
그다음 단계인 ‘성소’는 제사장, 곧 ‘청지기’의 영역입니다. 내 시간과 물질과 인간관계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청지기로 살 때 삶의 고질적인 묶임이 풀리고 문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성소는 말씀(떡상)을 먹고 기도(분양단)로 무장하여 세상의 빛(촛대)으로 살아가는 청년의 신앙이며, 세상의 부귀영화가 전도서의 고백처럼 다 헛됨을 알고 오직 하늘 가치에 올인하는 단계입니다. 요셉이 애굽 총리라는 화려한 자리에 있으면서도 늘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바라보며 사명을 감당했던 것처럼, 성소의 청지기들은 주인을 하늘에 두고 살아갑니다.


14. 지성소의 신앙 — 인격의 변화와 온전한 연합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심고 거두는 뜰의 축복과 사명에 충성하는 성소의 축복을 넘어, 우리를 가장 은밀한 사랑의 자리인 ‘지성소’로 인도하길 원하십니다. 지성소에는 아가서의 말씀처럼 주님과 내가 완전히 하나 되는 ‘신랑과 신부’의 완전한 연합이 있습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주님은 우리의 외적인 사역이나 행위를 넘어 우리 내면의 ‘성품과 인격’을 만지십니다. 내 거친 혈기와 옛 자아가 깨어지고, 삶 속에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곧 예수님의 성품이 배어 나오게 하십니다. 이 지성소의 은혜를 경험한 자가 다시 성전 뜰로 내려와 찢기고 상한 영혼들을 섬길 때, 인간의 수단이 아닌 성령의 거룩한 불과 생수의 역사가 나타나며, 도저히 용서할 수 없던 자까지 예수의 사랑으로 용서하는 복음의 능력이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영광의 주님께 인생의 운전대를 맡기라
15. 영광의 광채와 실명의 은혜
우리가 만난 부활의 주님은 바로 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눈부신 영광을 온전히 회복하신 ‘영광의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마주한 그 빛은 죄인이 날것 그대로 보면 죽을 수도 있는 거룩하고 강력한 광채였습니다. 과학자가 태양을 관측할 때 눈을 보호하기 위해 까만 안경을 쓰듯, 주님은 사울의 눈을 멀게 하심으로써 오히려 그의 영혼과 생명을 보호하시고 영광 중에 만나주신 것입니다. 사울은 이 영광의 주님 앞에 완전히 거꾸러져 전 생애를 굴복시키고 위대한 사도로 거듭났습니다.


16 주님이 운전하시는 인생의 승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거듭난 여러분의 내면에는 지금 부활하신 예수가 살아 계십니다. 그러나 혹시 여전히 내 인생의 운전대를 내가 꼭 쥔 채, 주님은 변두리에 몰아넣고 “내 인생에 간섭하지 마시고 그저 내가 필요할 때 도우시고 영혼의 구원만 책임져 주십시오”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부활의 복음은 내 인생의 보좌와 운전대를 주님께 완전히 넘겨드리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 인생의 운전수가 되시면, 때로 험한 골짜기를 지나고 감당치 못할 거친 터널을 만날지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의 완벽한 드라이빙 실력으로 모든 위기와 절망의 고비를 기필코 넘어서게 하시고, 마침내 우리를 최종적인 부활의 영광과 승리의 종착지에 안전하게 안착시키실 것입니다. 이 위대한 부활 복음의 축복이 모든 성도들의 삶과 가정 위에 영원히 함께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 선포된 부활의 복음을 마음 판에 새깁니다. 우리가 종교적인 마당만 밟는 뜰의 신앙에 머물지 않게 하시고, 매일 삶의 현장에서 주님의 주인 되심을 고백하며 지성소의 깊은 연합으로 나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내 생각과 내 뜻대로 꼭 잡고 있던 인생의 운전대를 오늘 이 시간 주님 앞에 온전히 내어놓습니다. 주님이 친히 내 인생의 운전수가 되어 주셔서, 우리 힘으로 넘지 못하는 현실의 벽을 부활의 능력으로 돌파하게 하시고, 마침내 부활의 영광과 승리를 맛보는 복된 삶이 되도록 성령으로 역사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종이 아닌 아들이라 불러주신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