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이사야 43장 19~21절
제목: 찬송하게 하시는 주님
오늘 아침에 주시는 말씀을
마음에 잘 담아서 가을의 계절에
풍성한 은혜가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이사야는 1장부터 66장까지 있는데
크게 두 가지의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심판,
또 하나는,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이 두 가지가 이사야의 전제 주제입니다.
구약성경은 총 39권이 있는데
그 가운데 특별히 이사야서를
구약에 있는 복음서라고 말을 합니다.
먼저 본문의 말씀을 드리기 전에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이야기가 무엇이냐면?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그리고 세상 사람들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나 자신들이 지은 죄로 인한
심판을 반드시 받는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택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까지도 자신들이 지은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웃시야왕부터
다섯 임금을 거쳐 대략
60년 가까이 선지자 역할을
감당했던 사람이 이사야입니다.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켰던 앗수르의 손에서
남쪽 유다를 건져내셨습니다.
하지만 바벨론에 의해
남쪽 유다 역시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포로로 끌려가고
가정을 빼앗기고, 나라를 빼앗기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다 빼앗겨 버리게 됩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렇게 된 이유는
잘못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제 이야기를 신중히 잘 들어보세요.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상당 부분의 고난은
지난 시절 잘못 살았던 삶의 대한
결과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놓치면 안되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고난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상당 부분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우리가 정검해 보고
성경의 내용을 읽다보면,
그들이 겪고 있는 고난의 상당 부분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았고,
우상을 섬겼고, 자기 멋대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일지라도
그 부분에 있어서는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이
이사야 1장부터 39장까지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40장을 넘어오면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말합니다.
무엇이라고 말을 하느냐면?
“그러나 내가 지었고, 내가 선택했고
내가 언약했던 백성들을 회복시키고
다시 살려야겠다”하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표현이 이 땅에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21절을 보면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 말을 이런 식으로 해석하면 안됩니다.
“아~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은
우리에게 찬송을 받으려고 창조했나?”
이런 뜻이 아닙니다.
왜냐면, 성경이라는 것은
전체의 문맥을 보아야 하고,
왜 하나님이 이 말씀을 하시게 되었는지
그 전후를 살피지 않으면 성경의 오류를 범합니다.
이단들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 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구절을 여기저기
가져다 되면서 짜깁기를 합니다.
그래서 이런 방법으로
성경을 읽어 나가다 보면
반드시 커다란 문제가 생겨 버립니다.
제가 여러번 말씀을 드리잖아요.
사람의 말도 앞뒤 전후를 잘 살펴야지
어떤 한 단어만 뚝 편집해 버리면
그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21절의 말씀은 이런 뜻이예요.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이 지으셨고,
하나님이 선택을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찬송하게 해주겠다.”
아까와 의미가 다르죠?
“지금의 삶은 힘들고 어렵지만
내가 너를 지었어, 내가 너를 선택했어,
그렇기 때문에 나를 찬송하게 만들어 줄게”
바로 이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쁨은
찬송, 기쁨, 회복, 응답, 축복 등을 말합니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아 내가 너희를
바벨론 땅에 버리지 않아. 내가 너희들을
고난 가운데 두지 않을 것이야
반드시 내가 너희들의 입에서
찬송이 흘러 나오도록 해줄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를 찬송하게 하시는
주님의 목적이 무엇인가“ 이것에 대해서
여러분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언약 때문에
고난 가운데 하나님을 찬송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앞의 내용을 보면,
이사야 선지자가 오래 전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노예 생활하고 있는
그들을 건져 내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홍해에 길을 내시고
척박한 광야의 땅에 물을 내시고
이렇게 하신 이유가 무엇이냐면?
그들이 불쌍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지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선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의 언약을 믿고
하나님의 선택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얼마나 웃긴지 아십니까?
왜? 그들이 바벨론에 끌려가야 하는 것입니까?
왜? 그들이 포로생활을 해야 하는 것인데요?
왜? 힘겨운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데요?
엉망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안살고
자기 멋대로 살았던 것에 대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왜요? 그들이 이유를 모르는거예요.
우리에게 잘못된 죄성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이 나를 돕지 않는다고
원망을 하시면 안됩니다.
그리고 불평을 하시면 안됩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을 돕지 않는다고
원망하거나 불평을 하시면
절대로 안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일은,
적어도 오늘 본문에 의하면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아니하고
잘못 살아온 일에 대한 결과가
아주 높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안도와준다고 탓할까요?
주변사람이 나를 안도와준다고 탓할까요?
만약에 내가 이렇게 힘이 든데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은 핵심을 잘못 짚은 것입니다.
이런 어리석은 백성들이 이스라엘 백성이예요.
자신이 왜 이런 일을 겪게 되었는지
자신이 왜 이런 삶을 살게 되었는지
주님 앞에 돌아보아야 하는데
자신의 삶을 돌아보지 않았다는 것이죠.
여러분 하나님의 심판은
말 그대로 심판이 목적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우치게 해서
구원을 하시고자 하는 것이
고난이 주는 진정한 목적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하나님의 선택을 믿고,
찬송해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찬송할 때는 두가지입니다.
이쪽과 저쪽이 있습니다.
이쪽은 내가 원하는 대로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돈도 잘 벌고, 건강 하고,
뭔가 일이 잘 풀리고
아름답게 잘 형성되어지는 쪽입니다.
그런데 저쪽은 그냥 힘든 삶이예요.
고난이 있고, 어려움이 있고,
슬픔이 있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쪽에 있는 삶도
하나님 앞에 찬송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면요?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드렸잖아요.
티비를 보다가 아주 감동을 했어요.
한 살 때인가, 두 살 때인가
부모님의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벨기에로 아들을 입양 한거예요.
그래서 30년 만에 이 아들이
한국에 있는 부모를 만났어요.
한국 말을 전혀 하지 못해요.
그런데도 부모를 찾게 된거예요.
그래서 프로그램 담당 피디가
그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고의적인 이유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벨기에라는 나라로
입양을 보냈는데 부모가 원망스럽지 않냐?”
그런데 아들이 어떻게 대답하냐면요?
“원망은요. 내가 이 땅에 살 수 있는
생명을 주신 분들인데, 그럴만한 이유가
부모님들에게 있지 않았을까요?”
또 하나 우리가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때론 아이들이 원하는 만큼
부모로서 해주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어느 가정은 돈달라 하면 돈을 주고,
무엇을 사달라고 하면 사달라는 대로 사주고,
결혼할 때는 으리으리한 집도 사주는
그런 가정도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처럼 환경이 따라주지 않아서
아이들이 원하는만큼 뒷바라지를 못해주는
그런 때가 있다는 것이죠.
부모의 심정은 일반적으로,
도둑질을 해서라도
먹이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일상적인 부모의 마음이 그래요.
그럼 보세요. 이쪽은 자식이
원하는대로 다 해주었어요.
그런데 이쪽은 자식에게
해주지 못하고 살았다는 것이죠.
그러면 자식이 철이 안들어서
“엄마, 아빠 나에게 해준게 뭐예요?”
이런 말을 들으면 가슴이 아플거예요.
마치 이것과 똑같아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것과 같다는 것이죠.
하나님이 선택하셨고, 하나님이 약속을 하셨는데
불평하고 원망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송해야 하는 이유가
진정 무엇이냐면?
그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하나님이 선택하셨고,
하나님이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들을 버리지 않게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떠나지 않으신다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고난 속에서도
저와 여러분들은 찬송케 하시는
주님을 봐라보고 찬송을 마땅히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찬송을 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셨어요.
그리고 우리를 선택하셨어요.
그래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겠다는 거예요.
20절을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심지어는 짐승들까지 마실 물을 주신대요.
그러니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는 은혜를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해야
하는 이유가 너무나 충분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셨다는 것은
우리를 책임지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고난이 있고
어려움이 있다고 할지라도
불평하지 말고, 원망하지 말라는 거예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잘못 살아온 결과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래서 잠시 잠깐 그 일로 인해서
고난을 겪을 수 있다는 거예요.
이게 부모의 마음이라는 거예요.
부모가 야단도 치잖아요.
그리고 회초리도 들잖아요.
히브리서 10장을 보면
잘못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징계를 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참된 자녀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매맞을 때 아파도,
고난을 겪을 때 마음이 아프고
힘이 들어도 불평하거나
그리고 원망하지 말고요.
나를 책임지시겠다는 하나님
어떻게서라도 내 자녀다운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주님을 찬송해야 한다는 것이죠.
예레미야서를 보면 바벨론에 끌려갈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왜? 이렇게 우리를 바벨론 먼나라로
끌려가게 하셔서 삶을 곤고하게 하시고
힘든 삶을 살게 하냐고 말입니다.
그러다가 그발 강가에서 하나님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입술에서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게 아니었구나.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기 때문에 더는 두고 볼 수 없어서
바벨론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답게 만들려 하시는 구나”
이렇게 그들의 입술에 변화가 온거예요.
그리고 7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가요.
다시 회복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이런 은혜를 바라보며
우리의 입술은 하나님을 찬송한
입술로 바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서있을지라도 하나님을
우리는 찬양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요? 심판이 목적이 아니니까요.
또다른 축복으로 가는 통로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는 것이죠.
삶의 고난이 닥쳐왔을 때,
섭섭하게만 생각하지 말고,
힘들다고 불평만 하지 말고,
아프다고만 그러지 말고,
오늘 이 말씀을 분명히 기억하셔서
나를 회복 시키시려는 하나님
또다른 축복을 예비하신 하나님
그 주님을 찬송하는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