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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연_ 고전반 과제_ 크리톤

작성자손수연|작성시간26.06.14|조회수22 목록 댓글 0

크리톤을 읽고

줄거리
크리톤은 판결의 옳고 그름에 관계없이 죽음 앞에서도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소크라테스의 원칙과 소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은 사형을 앞두고 감옥에 갇혀 있던 소크라테스에게 그의 절친한 친구 크리톤이 찾아오며 시작된다.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에게 간수들을 모두 매수했고, 탈옥 후에 삶에 대한 준비도 해놓았으니 함께 감옥에서 나가자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크리톤의 제안을 거절한다. 그 이유는 탈옥은 그의 평생의 신념과 어긋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크리톤은 계속해서 소크라테스를 설득한다. 다른 이의 시선을 신경 쓰지 말고 타국에서 생활하는 것을 두려워 말라며, 아버지로서의 도리와 역할을 강조하며, 친구들이 소극적으로 대처하여 소크라테스를 결국 구하지 못하고 사형을 당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하며 계속해서 설득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확고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탈옥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소크라테스는 어떤 행동이 옳은 것인지를 하나씩 이야기한다. 먼저 눈앞에 닥친 죽음이 두려워 평생 지니고 살았던 자신의 삶의 원칙을 내팽개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다. 또한 많은 사람의 의견에 따라 사는 것이 옳은지의 여부에 대해 이야기하며 다수의 견해보다 전문가 한 사람의 의견이 더욱 중요하고 그의 견해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중요시한 것은 그저 사는 것이 아닌 도덕적으로 훌륭하게 사는 것이다. 그렇기에 국가가 그에게 부당한 판결을 내렸더라도 자신이 평생 살아온 국가에 해를 끼치는 방법으로 되갚는 것은 올바르지 못한 일이다. 아테네를 떠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테네의 법에 따르기로 암묵적인 합의를 한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은 사형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소크라테스가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주장했듯이 그는 자신이 받은 사형 선고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을 태어나게 하고, 자신이 살아온 아테네의 법을 따라야 한다. 그렇기에 재판의 결과에 불복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다른 지역으로 도망쳐 사는 삶은 결국 모두에게 해악이다. 자식, 목숨, 삶보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올바르게 사는 것이다. 결국 크리톤은 완고하고 논리적인 그의 주장에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소감
이 책을 여러 번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책을 보는 시점이 달라졌다. 처음 읽었을 때는 크리톤의 시점에 이입해서 읽었다. 크리톤의 시선에서 본 ‘크리톤’은 씁쓸했다. 입에서 쓴맛이 사라지지 않고 맴도는 기분이었다. 아주 사랑하고 존경하는 친구를 구하고 싶은 마음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 그를 설득하러 감옥으로 찾아간다. 그를 살리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그가 살기를 누구보다 바라지만 그는 제안을 단호히 거절한다.

부당한 이 판결로 인해 그가 죽는 것을 원치 않는다. 설득하려 하지만 그는 확고하다. 소크라테스의 말을 듣고 있으면 그것이 옳은 말이라는 것을 알 것 같으면서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의 논리를 반박할 수조차 없다. 그의 말이 올바른 일이지만 알게 모르게 입안에서 씁쓸함이 맴돈다. 결국 그는 친구를 설득하지 못한다. 친구가 사형을 당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두 번째로 읽을 때는 소크라테스의 시점에 이입이 되었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던 그의 선택이 다시 읽으니 다르게 다가왔다. 그는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 이성적으로 접근해서 생각한다. 감정적으로만 본다면 살아남는 것이 당연한 선택처럼 보인다. 사랑하는 친구들과 가족이 있고, 부당한 판결이었으며, 탈옥할 기회까지 주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순간의 감정보다 ‘무엇이 더 옳은가’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그가 곰곰이 생각해낸 결론은 하나였을 것이다. 나의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올바른 삶이라는 것. 그는 죽음보다도 죽음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신념을 무너뜨리는 삶을 더 두려워했던 것 같다. 평생 법과 정의, 올바름에 대해 고민하고 이야기해 온 이인데 자신의 죽음 앞에서 그것들을 저버린다면 결국 자신의 삶 전체를 부정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이 두려워 평생을 지켜온 신념과 나의 조국의 법을 거스르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다. 그래서 그는 살 수 있는 길이 있었음에도 스스로 그 길을 거부한다. 그는 단순히 감옥에서 나가는 것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평생동안 지켜온 삶의 태도를 끝까지 지키려 한 것이었다.

그다음으로 읽을 때는 누군가의 시점에서 이입해서 읽기보다는 나의 생각을 가지고 읽었다. 그때 든 생각 중 하나는 소크라테스의 결연한 의지에 대한 감탄이었다. 만약 내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친구가 찾아와 탈옥을 도와준다면, 나는 당연히 따라나설 것 같다. 그리고 탈옥을 고민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탈옥의 대가가 두려워서일 뿐, 정의에 대해 고찰하며 고민하지는 않을 것 같다. 생사가 걸린 상황에서도 그러한 결정을 내린 소크라테스의 모습이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을 앞두고도 감정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닌 끊임없이 검토하여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는 소크라테스가 정말 대단했다. 자신의 신념을 죽음이 코앞에 다가온 순간에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것. 조건과 상황을 따지지 않고 말로만 행하는 것이 아닌 어느 상황에서나 한결같이 실천하는 자세는 배워야 할 자세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다수의 의견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 아니라, 정의로운 것과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해 정통한 단 한 사람의 의견, 그리고 진리 그 자체에 귀를 기울여야 하네.”

위 구절은 크리톤이 사람들이 너를 비웃을 것이라며 평판을 걱정할 때 소크라테스가 던진 반박이다. 이 책을 읽으며 기억에 남는 부분 중 하나이다. 소크라테스는 다수의 의견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며, 많은 사람들이 지지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진리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그는 정의와 진리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소수의 의견, 혹은 진리 그 자체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군중의 심리에 휩쓸려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다.

요즘 들어 이러한 군중심리의 무서움과 심각성을 자주 느낀다. 특히 현대 사회의 SNS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핸드폰을 꺼내 인터넷에 접속하면, 아무 생각 없이 남을 비판하는 댓글들이 넘쳐난다. 사실이 아닌 일조차 사실인 것처럼 퍼지며 누군가를 상처 입히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 일이 정말 옳은지 깊이 생각하기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비판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그 흐름에 동참한다. 다수가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쉽게 다수의 편에 서며, 스스로 판단하는 것을 멈추곤 한다.

이러한 모습을 보며 나는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현대 사회의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 자신만의 뚜렷한 신념을 잃어가고 있는 듯 보인다. 단순히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방향을 따르는 것이 아닌, 그것이 정말 옳은 것인지 스스로 고민하고 판단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소크라테스처럼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키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다수에 휩쓸려 아무 생각 없이 판단하는 삶은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끊임없이 스스로 질문하고 판단하려는 태도, 어쩌면 그것이 소크라테스가 말한 깨어 있는 삶에 가까운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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