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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연_ 고전반과제_ 소크라테스의 변명

작성자손수연|작성시간26.06.18|조회수18 목록 댓글 0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고
손수연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아테네는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시민들은 패배의 원인을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찾으려 했고, 이때 눈엣가시 중 하나가 바로 소크라테스였다. 결국 그는 국가가 믿는 신을 믿지 않고 새로운 신을 도입했다는 점과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명목으로 법정에서게 된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이 책은 법정에 서게 된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변호하며 당시 사회의 문제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본문은 100페이지 내외의 짧은 분량이었으나 그 울림은 굉장히 강렬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부분을 중심으로 내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

우선 글을 읽으며 많이 당황했다. 그는 마치 죽임을 당하려 작정한 사람처럼, 자신을 변호하기보다 배심원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발언을 계속해나간다. 심지어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형벌을 받는 것이 아닌, 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웅들이 대접받는 시청사에서 식사를 대접받아야 한다며 말이다.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죽음 앞에서도 당당하던 그의 모습은 경이로웠으나, 한편으론 충분히 살 수 있었음에도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법정에 서게 된 과정은 부당했을지라도, 왜 당시 법정관들과 시민들이 분노했는지는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었다.

“아니, 벌써 떠날 시간이 되었군요. 나는 죽으러, 여러분은 살러 갈 시간이.. 우리 중 어느 쪽이 더 좋은 일을 향해 가고 있는지는 신 말고는 그 누구에게도 분명치 않습니다.”

이것은 소크라테스 변명의 마지막 문장이다. 이 책에서 나를 가장 놀라게 한 점 중 하나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향한 태도였다. 그는 자신의 생사가 달린 재판에서도 겁을 먹거나 위축되어 온갖 감언이설을 늘어놓는 것이 아닌, 의연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과 논리를 펼쳐나갔다. 자신의 생사가 달렸을 때 이렇게 당당하고 담담할 수 있는 이가 누가 있을까. 과연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두려운 존재라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야말로 지혜롭지 못한 태도라고 말한다. 죽음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것을 두렵다고 단정짓는 것은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고 착각하는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죽음을 알지 못하고, 죽음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도 우리는 모른다. 그럼에도 죽음을 가장 나쁜 것으로 여기며 공포를 느끼는 우리의 태도는 비난받을 만한 무지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소크라테스는 법정에 서서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피하지도 않을 것이라 말한다.

솔직히 나는 여전히 죽음이 두렵다. 죽음은 결국 인생의 종착점과 같은 것이고 누구나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죽음이 있기에 인간의 유한한 삶이 더 빛날 수 있는 것이지만, 난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기에 두렵다. 소크라테스는 이 태도를 비판하지만, 난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죽음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죽음이 아닌 다른 일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판단하고 감정을 쏟는 것은 비판받을 만한 행동이다. 그것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판단한 것이니 말이다. 그 부분에 대해선 동의를 한다. 그러나 죽음에 대해 우리는 어떠한 정보도 가지고 있지를 않다. 다른 일들은 내가 무지하더라도 정보를 줄 이가 있거나 간접 경험이 가능하지만, ‘죽음’이라는 것은 그 어떠한 정보도, 아는 이도 없다. 왜냐하면 죽음은 죽는 이만이 경험할 수 있고,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그 무엇도 모르고, 죽어서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르기에, 그 ‘모르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난 인간의 죽음에 대한 공포가 지극히 자연스러운 본능이라고 생각한다.

이 지점에서 소크라테스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자신이 무지한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이 주장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나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은 안다’ 는 그의 말은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중 하나도 바로 이것이다. 인간은 모두 무지한 존재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가 이 사실을 망각하고 살아간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지혜롭다 여겼던 이유는 자신은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하는 일이 아테네 시민들을 위한 사명이라고 믿었다. 그는 아테네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라는 신탁을 들었을 때도 이를 맹신하지 않고 스스로 검증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무지함을 아는 반면, 다른 이들은 무지하면서도 스스로 지혜롭다고 믿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신탁의 의미를 깨달은 순간이었다.

공자의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곧 아는 것이다.’ 라는 말도 있듯이, 자신의 무지를 인식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지혜는 내가 무엇을 아는지에서 과시하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내가 모르는 것을 알아야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안다고 하는 것은 모순이고, 그것은 성장을 막는 방해물이 될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과연 나 자신을 얼마나 돌아보고 성찰해 왔는지, 내가 안다고 믿었던 것들이 정말로 아는 것이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진리를 알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며 자신이 철학을 지키기 위해 죽음까지도 받아들였다. 그는 단순히 생각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삶을 통해 증명하려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더라도 현실과 맞닥뜨렸을 때 그 현실과 타협하거나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킨다는 것, 강한 신념을 지닌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나 또한 나의 현실과 타협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렇기에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진리를 행동을 옮긴 소크라테스의 모습이 정말 인상 깊게 다가왔고, 그의 태도에 존경심이 들게 되었다. 과연 나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을까. 책을 덮은 뒤에도 이 질문은 묵직한 여운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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