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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인의 詩와 산문

유리병과 일기장

작성자폴쎄|작성시간26.06.07|조회수26 목록 댓글 0

유리병과 일기장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이 읽은 책,
자주 하는 말,
입는 옷,
좋아하는 음식들을 모두 모아

 

유리병에 넣고 흔들어 쏟아 놓으면
그게 바로 그 사람이라고 한다.

 

사람은 하나의 얼굴이 아니다.
살아오며 좋아한 것,
미워한 것,
부끄러워한 것,
반복한 습관,
끝내 버리지 못한 고집들이 쌓여
지금의 자신이 된다.

 

옛 일기장을 차마 버리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서랍 깊숙이 넣어 두고 꺼내 읽지 않아도
그 안에는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지나간 내가 들어 있다.

 

젊은 날의 허세와 상처,
감당하기 어려웠던 외로움,
사소한 기쁨,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다짐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일기장은 작은 유리병과 같다.
하루하루의 생각과 감정,
희망과 절망을 담아 두었다가
뚜껑을 닫은 병.

 

세월이 흘러 다시 열어 보면
잊었던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살아온 모든 기록과 기억을
하나의 비밀스러운 유리병에 담아 두었다가
임종 직전에 다시 꺼내 볼 수 있다면,
그 속에는 업적보다, 성취보다,
망설임과 후회, 그리움과 사랑이
더 많이 남아 있을 것이다.

 

결국 사람을 이루는 것은
대단한 사건보다
마음에 오래 남아 있던 작은 것들인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아직 옛 일기장을 버리지 못한다.
그것은 지나간 종이가 아니라
언젠가 다시 열어 보게 될
나의 유리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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