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력이라는 것 전에 시집을 한 권 낸 적이 있다. 내 딴에는 괜찮다는 글을 썼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부끄러운 부분도 적지 않다. 그 시집을 내던 때, 가장 오래 망설였던 것은 따로 있었다. 약력을 어떻게 써야 할지 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실제로 그럴듯하게 내세울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적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출생지와 출생일뿐이었다. 그 몇 줄이 부끄러웠던 것이 아니라, 그 몇 줄밖에 없다는 사실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다시 어떤 책을 낸다 해도 아마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또 비슷한 앞에서 멈추게 될 것이다. 단 한 줄이라도 쓸 만한 건덕지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먼저 서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생각도 든다. 약력이라는 것이 꼭 무엇을 이루었다는 목록이어야만 하는 것일까. 그것은 어쩌면 살아온 시간을 정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형식일 뿐인데, 우리는 그 형식 안에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넣고 있는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은 성취라기보다 지나온 날들의 결이다. 무엇을 했는가보다 어떻게 지나왔는가가 더 오래 남아 있다. 출생지와 출생일만 적었던 그 시절의 약력은, 그래서 어쩌면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단순한 상태였는지도 모른다. 설명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설명을 덜어낸 상태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글과 실제 생활 사이의 거리감도 그 안에 섞여 있었던 것 같다. 글로는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손에 쥔 것은 그것을 뒷받침할 만큼 또렷한 형태로 남아 있지 않았던 시간들. 지금도 여전히 확실한 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 가지는 남는다. 다시 책을 내게 되더라도, 아마 나는 또 같은 자리에서 잠시 멈출 것이다. 그리고 같은 질문 앞에 서 있을 것이다. 약력이라는 것은 무엇을 남기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남겨진 시간을 정리하기 위한 최소한의 표시인가. 아니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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