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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홍의 나쁜 생각 1445- 관계

작성자----린|작성시간26.06.05|조회수49 목록 댓글 0

 

김민홍의 나쁜 생각 1445 -  관계

 

 어느 모임에서든 묵묵히 타인의 말을 경청해 주는 사람을 필자는 운 나쁘게도 별로 보질 못했다물론내 이야기만 경청해 달라는 것은 아니다누군가가 한 마디 꺼내면 열 마디 스무 마디로 자신의 이야기만 떠들어 대는 사람은 정말 징그럽다그래서 가능한 그런 모임에는 가지 않으려 애쓴다돌아오는 길이 너무 피로하기 때문이다이는 필자의 개인적 성향이 말에서 받는 느낌에 지나치게 예민한 탓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돌아가신 김춘수 선생님을 생전에 한 번도 뵌 적이 없었지만그분은 토옹 모임엔 나가지 않으셨고사람들을 잘 만나지 않으셨다고 한다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다만 필자의 젊은 시절그분의 시에서 받은 이미지는 폐쇄적이고 냉소적이신 분은 아니실까혹은지나친 서구적 귀족 취향은 아니실까상상해 본 적이 있다어쨌든한국 현대 모더니즘의 큰 스승 중의 한 분임에는 틀림없는 시인이라는 것만으로도 그분은 필자에겐 넘사벽이시다하지만 오늘 내가 김춘수 시인이 생각난 것은 그분의 시 세계나 그분이 한국 현대 시에 일구어 놓은 업적보다는 풍문처럼 들려오던 그분의 대인관계가 적잖이 닫혀있었을 거라는 선입견 때문이다그리고 정말 그분이 그런 분이셨다면 오늘 난 그분의 그런 삶이 깊이 이해되고 공감이 간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시를 쓴다는 것이 사업이 아닌 이상 그렇게 폭넓고 원만한 대인관계가 필요한 것은 분명 아닐 것이고 대인관계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시인들은 대체로 시 보다는 이름이 더 크게 읽혀졌기 때문이다필자는 오늘제목만 아름다운 모임에 다녀왔다덜 외롭고 싶은 욕망을 등에 지고 그곳에 갔었음도 고백한다쓸쓸하다.

 

  2026년 6월 3일 대구시장 선거운동 중 <미워도 다시 한번>이란 처량맞은 노래를 부르던 인물이 당선되었다필자와 특별히 연고가 없는 대구지만 쓸쓸하다당분간 추어탕도 못 먹을 것만 같다.

 

김춘수(1922~2004)

 

경남 통영(충무) 출생

경기중학교를 거쳐 일본 니혼대학  예술과에 입학했으나 중퇴

1946년 광복 1주년 기념 시화집 <날개>에 <애가>를 발표하면서 문단활동 시작

통영중학교, 마산고등학교 교사

마산대학, 경북대학교, 영남대학교 교수

한국시인협회 회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제11대 국회의원(전국구)

대표 작품: <꽃>, <꽃의 소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처용단장> 등

 

초기에는 존재와  언어의 관계를 탐구하는 시를 썼고 이후에는 의미를 최소화한 이른바 무의미시를 개척하여 한국 시단에 큰 영향을 주었다.

 

피어라 돼지 / 김혜순 시집 (9)

 

피어라 돼지

 

훔치지도 않았는데 죽어야 한다

죽이지도 않았는데 죽어야 한다

재판도 없이

매질도 없이

구덩이로 파묻혀 들어가야 한다

 

검은 포클레인이 들이닥치고

죽여! 죽여! 할 새도 없이

알전구에 똥칠한 벽에 피 튀길 새도 없이

배 속에서 나오자마자 가죽이 벗겨져 알록달록 싸구려 구두가 될 새도 없이

새파란 얼굴에 검은 안경을 쓴 취조관이 불어! 불어! 할 새도 없이

이 고문에 버틸 수 없을 거라는 절박의 공포의 줄넘기를 할 새도 없이

옆방에서 들려오는 친구의 뺨에 내리치는 손바닥을 깨무는 듯

내 입 안의 살을 물어뜯을 새도 없이

손발을 묶고 고개를 젖혀 물을 먹일 새도 없이

엄마 용서하세요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할 새도 없이

얼굴에 수건을 놓고 주전자 물을 부울 새도 없이

포승줄도 수갑도 없이

 

나는 밤마다 우리나라 고문의 역사을 읽다가

아침이면 창문을 열고 저 산 아래 지붕들에 대고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이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나에겐 노래로 씻고 가야 할 돼지가 있다

노래여 오늘 하루 12시간만 이 몸에 붙어 있어다오

 

시퍼런 장정처럼 튼튼한 돼지 떼가 구덩이 속으로 던져진다

 

무덤 속에서 운다

네 발도 아니고 두 발로 서서 운다

머리에 흙을 쓰고 운다

내가 못 견디는 건 아픈 게 아니에요!

부끄러운 거예요!

무덤 속에서 복부에 육수 찬다 가스도 찬다

무덤 속에서 배가 터진다

무덤 속에서 추한 찌개처럼 끓는다

핏물이 무덤 밖으로 흐른다

비오는 밤 비린 돼지 도깨비불이 번쩍번쩍한다

터진 창자가 무덤을 뚫고 봉분 위로 솟구친다

부활이다! 창자는 살아 있다! 뱀처럼 살아 있다!

 

피어라 돼지!

날아라 돼지!

 

멧돼지가 와서 뜯어 먹는다

독수리 떼가 와서 뜯어 먹는다

 

파란 하늘에서 내장들이 흘러내리는 밤!

머리 잘린 돼지들이 번개치는 밤!

죽어도 죽어도 돼지가 버려지지 않는 무서운 밤

천지에 돼지 울음소리 가득한 밤!

 

내가 돼지! 돼지! 울부짖는 밤!

 

돼지나무에 돼지들이 주렁주렁 열리는 밤

 

 

무천무곡

 

살과 함께한 시절

살이 나라고

살 속에 들어가본 적도 없지만

뜨거운 불꽃이 닿으면 깜짝 놀랐다고

무방비는 부끄러운 것이라

침대에선 시트로 유방을 가렸다고

살갗 속 방 한 칸

진정제 각성제 항우울제 항경련제

분사해 벌레를 잡았다고

 

떠나면서 돌아본다

구름 같은 나를 담은 자루를

변덕 많은 그림자를 기수를 태우고

검은 땀 흘리다가 이제야 다를 꺾는 돼지 한 마리를

나에게 어울리는 맞춤복은 아니었지만

벗어놓은 열 가락 살 장갑과 열 가락 살 양말

그 위에 작은 창문처럼 손톱과 발톱

그 창문 뒤에서 내다보는 한 사람

깨우는 약

재우는 약

나가는 약

토하는 약

약 먹고 약 토하는 약

 

죽은 느낌표처럼 쓰러진 몸을 흰 천에 싸서 남겨두고 이제 떠난다

 

저것을 벗고 떠도는 것이 또 나라라고 굳게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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