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홍의 나쁜 생각 1448 - 혜화동 로터리
혜화동 로터리에 가면, 주유소도 있고, 우체국도 있고, 필자가 근무하던 옛 혜화여고도 지금은 초등학교가 되어 근처에 있다. 파출소도 있고,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 중국인이 대를 물려 하는 중국집도 있고, 그 집의 짬뽕이 맛있다. 오래된 서점 이 층엔 옛 이름이 보헤미안이었던 찻집 엘빈도 있고, 보헤미안 전 주인은 전원으로 들어가 아름다운 카페를 열어 성공했다.
그곳에는 조병화 선생님도 계셨고, 김영태 선생님, 몇 년 전 백 세로 돌아가신 황금찬 시인도 계셨고, 혜화동 백작 윤강로 시인은 오랜 단골이셨다. 한국동란 중에 이 근처에서 납북된 유명 무명 예술인들도 많았다. 틈새 가게였던 왕대포집의 할머니도 벌써 돌아가셨겠지. 가끔 술 취해 할머니에게 패악을 부리던 손자도 잘 있는지.
혜화동 칼국수 집은 아직 건재하고 그 옆 부산오뎅집도 건재하다. 필자는 혜화동 로터리로 직장(혜화여고) 때문에 출근을 하며 암 투병을 했었다. 그러니까 그곳이 내 투병 장소인 셈이다. 요즘은 혜화동 로터리에 자주 가진 않지만, 혜화동의 '혜'자만 떠올라도 떠오르는 이름이 있고, 학교 운동장에 외롭게 서 있던 살구나무꽃도 떠 오르고, 혜화동의 옛 지명일 '살구골'도 떠오른다. 혜화동 비둘기는 요즘 눈에 잘 안 띈다. 아마 로터리 건너 대학로에 몰려다니는 젊은이들은 이곳을 잘 모를 것이다. 그들이 교과서에 배운 글들을 쓴 문인이나 미술책에 실린 화가들이 가난했던 주머니를 털어 칼국수를 먹고 막걸리를 마시고 커피를 마시던 곳이었음을. 하기야 알아서 무엇에 쓰겠는가!
피어라 돼지 / 김혜순 시집 (10)
산문을 나서며
몸 버리고 가라는데 몸 데리고 간다
돼지 버리고 가라는데 돼지 데리고 간다
꿈속에서 나가
이제 그만 새나 되라는데
몸속에서 새가 운다
이제 그만 안녕 너 없이도 살 수 있어
돼지가 따라온다
내가 바로 저 여자야
못생기고 더러운 저 여자
배 속에 가득 망각이 들어찬 저 여자
머릿속에 토사물만 가득 든 여자
지나가던 소녀가 침을 탁 뱉는 바로 저 여자
길거리 모퉁이에 서 있으면 모두 달아나버리는 저 여자
무서운 아저씨들의 장화 밑에서 우굴거리는
글의 집은 너무 좁은데 피할 줄도 모르는
때 묻은 얼굴이야 더러운 엉덩이야 피 묻은 발톱이야
날 데리러 오는 장의차 소리는 귀신같이 아는 바로 저 여자야
무서워서 먹고 무서워서 소리치고 무서워서 또 먹는 바로 저 여자야
나는 입술에 붙은 밭통이야 뱉은 걸 먹고 싼 걸 먹는 바로 저 여자야
역겨운 여자 냄새나는 여자 미친년 맞는 년
내가 접시에 누우면 맛있는 소스라도 발라서 구워 줄래?
못생긴 여자야 하루에 한 움큼씩 항우울약 먹는 여자야
네가 나를 사랑해주겠다고 동정해주겠다고 그러지만
나 돼지야
그런데 한마디 덧붙이자면 나 재미있는 돼지야
나는 이렇게 생긴 비밀이야 유머가 터질 듯해서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차고 놀 수 있는 오줌보야
돼지 한 마리가 산문을 나서는 나를 멀찍이 따라 온다
36도 5부 방에서 나왔으니 춥겠지? 냄새나는 코트 들고 따라온다
기쁜다 돼지 오셨네
만백성 맞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