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홍의 나쁜 생각1456 - 화두話頭
불교의 가르침 중 '무상, 무아, 연기, 지금'은 필자가 깊은 상처를 받았거나 소외감에 시달릴 때 혹은 건강이 극도로 안 좋을 때 도피처럼 묵상하는 화두이다. 끈질기게 파고들어 본 적은 없으니 화두라고까지 할 수야 없겠지. 그리고 절에 가서 절을 하거나 기도하거나 설법을 듣는 일에도 익숙하지도, 별로 몸에 맞지도 않으니 수행이나 수련이 없이 교만한 도피처럼 생각하는 일이니, 화두를 깨우치진 못할 것 같다. 다만 사는 동안 포기할 수 없는 공부임에 틀림없다. 라고 쓰니 이 또한 집착이 되는구나!
피어라 돼지 / 김혜순 시집 (14)
달 그릇 세트
강가의 진흙을 퍼다가 물레에 올리고 유약에 담갔다가 토끼 부부를 그려 불가마에 구웠더니,
왕비는 외국에서 온 깡패들에게 살해당하고, 가마는 박물관에 가고, 가마꾼은 고향 가고, 그나
마 깨지지 않은 동그란 달 12형제가 남아 경매에 붙여졌어요
전생의 남자가 달 세트를 사다가 수갑을 채웠어요.
수갑 찬 달이 부엌에서 식탁으로, 식탁에서 침대로, 바람 좋은 날은 피크닉 바구니 속으로 옮겨
다녔지요.
벌거벗은 달 하나가 식탁 위에 엎어져 있는 날도 있었지요. 달랑 하나 남은 빵 한 조각을 얹은 알
몸 하나, 세상에서 이것보다 외로운 건 없을 거에요.
세월이 지나 아기들이 태어나 집을 나가고, 그 아기가 늙어 죽도록 오래 살았지요.
달 세트가 식탁에 올려졌다 내려졌다 할 때마다 명줄에서 우수수 떨어지던 이 집 식구들, 달 세트
는 이가 몇 개 빠졌지만 아주 오래 살았아요.
잘린 손목 같은 새끼를 품고, 피를 가득 내뿜어 월식할 때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지만 집이 세워졌다
허물어지고, 다시 개량되는 동안에도 달 세트는 선반 위에 살아 있었어요.
남자는 말했지요. 이 접시는 엄마가 쓰던 거야. 죽은 어머니가 날마다 접시로 출토되는 부엌, 우리는
태어나 꿈을 꾸다가 잠이 된다고 어린 딸이 말했지요.
유적지에선 가끔 새까맣게 타버린 사람들과 반상기가 출토되었어요. 부엌에서 울다가 눈길을 돌리면
늘 선반 위에서 눈빛 마주쳐주는 달 세트, 이상하지요? 내 눈물과 가장 많이 눈 맞춘 건 저 이 빠진 달
세트라니까요.
- 나는 내가 이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와 살 줄 몰랐어요. 이렇게 검은 하늘, 높고 외딴 곳에 나 혼자 불
켜고 있는 줄 정말 몰랐어요.
강가의 흙을 퍼다가 물레에 올리고, 유약에 담갔다가 토끼를 그려 가마에 구운 다음 이렇게 세월이 오
래 갈 줄 몰랐어요.
보름달 깨어지고, 떨어진 검은 운석들이 부엌 바닥에서 천장까지 가득 차오르는 밤, 그러나 아직 달은
몇 개 더 남았어요. 양손으로 흙을 퍼내고 또 달을 몇 개 씻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