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홍의 나쁜 생각 1457 - 시달린다
출근길에서 나는 시달린다. K의 詩처럼 만원 버스에 흔들리는 재미로 살진 않는다. K는 나의 대학 후배, 늦둥이 딸 아이의 대학 입학식에서 마주친 그는 그 대학교의 부총장이 되어 있었고, 대학 졸업 후 처음 마주친 우린 서로 알아보지 못했다. 교통체증에 시달린다고 말할 정도로 먼 거리에 학교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시달린다. 꼭 시간에 맞추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시달리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시달린다. 뻔뻔하게 차선을 바꾸는 사람들, 방향지시등을 켜면 더 빨리 차를 붙여대는 사람들에게 시달린다. 서로 얼굴을 마주쳐도 무표정하고 냉소적인 눈빛에 나는 시달린다. 뻔뻔한 표정, 전혀 미안해하지 않는 얼굴 속에 내가 보이기 때문일까. 출근길에서 때론, 폭탄 맞은 것처럼 시달린다고 말한다면 좀 엄살도 섞여 있는 것이지만, 분명 시달린다.
봄에는 황사에 시달리고 여름엔 습도 높은 무더위에 시달리고, 가을엔 우울증에 시달리고, 겨울엔 추위와 입술 갈라지는 건조한 기후에 시달린다고 말하면 '이 불만투성이 인간아! 이 땅을 떠나라!'고 당신들은 날 질타하겠지. 그래도 난 시달린다.
수업 시간에 하염없이 떠드는 아이들이 목소리에 시달리고, 널려있는 책임 회피주의자들에게 시달리고, 시선 닿는 모든 곳에 장사꾼만 득시글거리는 것 같은 피해의식에 시달린다. 이민을 갈까 하다가도 모국어로 글을 쓴다는 놈이 모국어를 떠나 어디로 간단 말인가? 하는 건방진 생각에 시달리고 상황에 따라 안면 바꾸는 동료들에게 시달린다. 그래도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달리는 재미로 산다. 그러니까 '시달리는 일조차 생의 수행으로 삼는다.'고 말하고 나니 '절망적으로 나는 시달리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또 시달린다. 혹시 시달리지 않는 날마저 오지 않으면 어쩌지? 라는 불안감에도 시달린다.
콘스탄티노스 페트루 카바피스 시선집 / 김정한 옮김 (3)
첫 계단
테오 크리스토스에게 푸념했다
어느 날 젊은 시인 에우메네스가;
"이제 만 2년을 썼건만
전원연에서 한 편을 지었을 뿐이네요.
그거 하납니다 제 완성작은.
아아, 높아요, 제 눈에.
아주 높아요 시의 계단이;
그리고 내가 와 있는 첫 계단에서
더는 오르지 못하겠죠 비참한 저는"
말했다 테오크리토스; "시를
모독하는 부적절한 언사로다.
첫 계간에 있으면, 의당
그것만으로도 자랑스럽고 행복해야 할 것이거늘.
여기 달했다는 것은 작지 않은 일;
그 정도 해냈다는 게 커다란 영광이다.
그리고 더 나아간 것이다 이 첫 단계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더.
그 층계에 발을 딛으려면
되어야 하지 마땅히
개념 도시 시민이
그리고 그 도시 일원 되는 것 힘들고
드물다 시민권 받는 일.
그 도시 광장에서 마주치는 입법자들
속아넘어가지 않아, 어떤 얼렁뚱땅에도.
그 정도 왔다는 것은 작지않은 일;
그만큼 했다는 것은 커다란 영광."
훼방
신들의 일을 훼방놓는다 우리,
성급한 미숙한 덧없는 짐승들이.
엘레우스와 프티아 궁정에서
시작한다 옳게
거대한 화면과 짙은 연기 와중에, 그러나
언제나 뛰쳐나오지 메타네이라 침실,
왕의 그것에서 머리 헝클어지고 공포에 사로잡혀,
그리고 언제나 펠레우스 겁먹고 끼어든다.
테르모필레
그들에게 명예를, 살아서
나아가 테르모필레를 지킨 그들에게.
결코 의무로부터 흔들리지 않았지;
정의롭고 올곧았다 모든 행위가,
벌써 애석과 동정을 느끼며;
후했다 그들 풍요로울 때, 그리고 그들
가난할 때도, 조금 후했다,
가능한 만큼 도왔지;
언제나 진실을 말했지만,
거짓말한다고 증오하지 않았다.
그리고 보다높은 명예를 그들에게 주어야 한다
그들이 예견했으니까(많은 이들이 예견했지)
에피알테스가 결국 나타나고
메데인들이 마침내 읽어내리라는 것을.
*테르모필레: 그리스어로 '뜨거운 물들' '열의 관문'.
기원전 480년, 레오디나스 1세가 이끈 스파르타 병사들과 그리스 연합군이
크레르크세스 1세의 대군을 상대로 싸운 테르모필레 전투로 유명하다.
특히 300 스파르타인 이야기는 이 전투에서 유래되었다. 물론 실제로는 스파르타 병사
300명 외에도 여러 그리스 도시국가의 병사들이 함께 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