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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홍의 나쁜 생각 1462 - 섬

작성자----린|작성시간26.06.22|조회수35 목록 댓글 0

 

김민홍의 나쁜 생각 1462 - 

 

  섬엔 거의 가본 적이 없다. 뱃멀미 때문이다. 강화도, 완도, 거제도처럼 육로로 연결된 섬을 제외하고는 비행기로 제주도에 두어 번 가본 것밖에 없는 필자가 십수 년 전 인도네시아 발리 여행 중 뱃멀미가 거의 없다는 거대한 몸집의 배를 타고 두 시간가량 항해하면서 멀미로 거의 사경을 헤맸던 기억은 강력한 트라우마로 남았다. 꼭 가고 싶었던 홍도, 울릉도는 그냥 영상으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고, 포루투칼까지 가서 배로 두 시간 정도면 닿을 수 있다는 꼭 가 보고 싶었던 모로코, 카사블랑카 방문도 포기했다. 앞으로도 배는 못 탈 듯싶다. 그래도 필자의 마음속엔 늘 그리운 섬이 있다. 섬으로 상징되는 고독한 개체에 불과한 인간이 그리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럴까? 필자의 초기 시 중엔 한 번도 건너가 본 적이 없는 섬에 대한 시편이 적지 않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스산한 내면의 기록일 뿐이지만.

  불현듯 누구나 섬을 하나씩 지니고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섬과 섬 사이에 막막한 바다가 있고, 필자는 섬이 되고 싶지 않아서 바둥거리며 살아온 것 같아 민망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인생이란 바다가 있어서 개체인 섬이 또 다른 개체인 섬을 그리워하는 걸까.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인간人間이라 부르고 '사람 사이', 혹은 ‘섬 사이’라고 인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런 생각도 필자의 현실도피적 성향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사람이란 누구든 개체로 세상에 흩뿌려진 섬이라는 생각이 절실하게 드는 것이다.

 

 

피어라 돼지 / 김혜순 시집 (17)

 

수박은 파동의 기억에 잠겨

 

나는 조용히 편지를 씁니다

검은 스웨터를 뚫고 수박 냄새가 만개한다고 씁니다

사실 이 나이의 여자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선 죄를 짓는 일과 같습니다

수박에게나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이라고 하는 세상의 저속을 생각해봅니다

눈을 감으면 눈 속의 눈을 감으면 눈 속의 눈 속의 눈을 감으면

하늘보다 더 어두운 바다가 거기 있습니다

그러면 나는 그 깊은 바다를 두 주먹으로 텅텅 두드리며 불러봅니다

밤바다여 태풍을 모신 밤의 파도여

그렇게 이름을 부르자 그 파도가 나에게 와서 하나의 수박이 되었습니다

밤에는 수박이 더욱 커집니다

숨어서 혼자 익는 수박의 당도는 매우 높습니다

나는 수박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습니다만

수박에게 나의 파도여 그렇게 이름을 붙이지는 않습니다

다만 입을 꾹 다물고 러닝머신 위를 달릴 때는

마치 파도 위를 뛰는 여자처럼

수박이 헬스클럽까지 따라오게 해서는 안 되었다고 되뇝니다

나는 수박을 품고

수박 향기 자욱한 저녁에

깊은 파도 소리를 듣습니다

그 검고 큰 밤바다가 실내를 가득 채우는 걸 바라보며

가슴에 박힌 수박을 조용히 끌어안습니다

그리고 나는 편지를 보내지 않기로 합니다

 

찢어진 편지의 찢어진 영혼에게 조용히 두 손을 합장해봅니다

 

 

날아가는 새의 가녀린 겨드랑이

 

날아가면서 눈감아도 되나요?

날아가면서 심장에 손을 얹어봐도 되나요?

 

차디찬 공중에서 귀를 기울이다가

분홍색 맨발로 얼음에 내려앉는 새

 

척추의 매듭이 풀어지고 한 방울 한 방울

그곳에서 척수가 떨어지는 새

 

공연 시작 5분 전입니다. 무대 막 오릅니다.

죽은 후 떨면서 첫 무대에 오르는 새

 

날아가면서 그만날기로 해도 되나요?

날아가다가 그만 툭 떨어져도 되나요?

 

여기는 누구의 마지막 숨이 펼친 풍경인가요?

새는 누구의 마지막 숨에서 튕겨져 나왔나요?

 

침묵이 가득 든 얼음 속에 웅크리고 숨었는데

누가 망치를 들고 오네요, 이름, 이름 하면서 이름을 대라 하네요

 

이 삶이 나한테서 나갔어요 원피스는 벗겨지고 새장*만 남았어요

그 방에 들어가 뺨을 맞고 엎드리기 직전 새의 얼굴 코앞에서 보았습니다

 

새 한 마리 떨면서 쇠침대에 사지가 묶입니다

꿈속에서 꿈밖으로 수북하게 쏟아지는 깃털들

 

발목에 이름표를 감고 고개를 옆으로 놓은 저것!

침대로 끌어올려놓고 보니 젖은 날개가 구만리인 저것!

 

* 크리놀린crinoline: 19세기 유럽 여성들이 치마를 풍성하게 부풀리기 위해 속에 입던 치마들 또는 그 같은 형태의 스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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