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을 잃을까봐 사랑을 감췄다면
두 사람은 1년 만에 만났다.
며칠 전은 여자의 생일이었다.
남자와 여자는 대학동창 이었다.
학창시절에는 늘 붙어 다녔지만
요즘에 와서는 1년에 한두 번 만나는 사이였다.
서로 전화통화도 별로 없었지만
여전히 좋은 친구라고
여자는 남자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해마다 생일이면 남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맛있는 밥을 사주고 꽃을 선물하기도 했다.
올해는 작고 아담한 가게에서 함께 와인을
나눠 마셨다.
"둘이 무슨 사이에요?"
나이가 들었지만 소녀 같은 얼굴을 한
와인 가게 여주인이 다가와 물었다.
둘은 그저 웃을 뿐이었고,
와인 가게 여주인은
"둘이 잘 어울린다"고 했다.
둘 사이에 어색함이 감돌았다.
잠시 침묵 속에 있다가 남자가 불쑥
사실은, 대학교 입학식 날부터 좋아했었다고
말했다.
말을 하지 그랬나며 여자는 농담인 듯 웃었으나
남자는 제법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와인을 마신 탓인 것 같았다.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뭐든 했어.
너를 좋아하는 남자로서 할 수 있는 일 말이야.
네가 부르면 어디든 갔고,
네가 '이런 남자가 좋아'라고 말하면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어.
하지만 너에게는 오래된 남자친구가 있었고
그래서......."
그 시절의 남자친구와는 지난해 헤어졌다.
여자는 웃으며 말했다.
"실은 스물한 살 여름방학 때,
이상하게 네 생각이 많이 났었어.
매일 붙어 다니다가 자주 못 봐서 그런가 싶었지.
용기를 내서 전화를 했는데, 네가 시큰둥한 목소리로
'왜?' 하고 퉁명스럽게 말하는 거야.
나는 며칠을 고민하다가 전화를 한 것이었는데 말이야.
그래서 그날 마음을 접었지."
여자는 남자가 다른 말을 하기 전에
서둘러 건배를 청하며 말했다.
"이제 와서는 다 소용없는 이야기지만."
그 하나의 문장으로 여자는
두 사람의 관계를 부지런히 평행선으로 돌려놓았으나
남자는 또 말했다.
"그날 아직도 기억해.
반가워서 오히려 어색했어.
마음을 들킬까봐 괜히 뻣뻣했지.
네가 한 번만 손을 내밀어주었다면
난 너에게 고백했을 거야."
여자는 다시 얼른 화제를 돌렸다.
복잡해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어지러워졌다.
마음을 꺼내 말해버렸다.
있었던 일은 없었던 것이 되지 않는다.
농담처럼 스친 진심은
이제 두 사람을 어디로 데려갈까.
침대 옆 스탠드의 불을 끄며 여자는 생각했다.
'그렇게 될 일은 기어이 그렇게 되고
그렇게 되지 않을 일은 기어이 그렇게 되지 않으니
복잡해하지 말자.'
그러나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오늘따라 창밖의 가로등이 너무 밝아서라고
스스로에게 변명했지만
마음은
쉽게
속지 않았다.
- 정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