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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각사를 찾아가던 날

작성자파란하늘|작성시간19.07.26|조회수924 목록 댓글 0

정각사를 찾아가던 날

불교 신문 여기자로 부터 우리나라 최초의 비구니 승이라는 광우스님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그분이 주재하던 절이 있는데 그곳이 정각사란 것이고,그분은 최근 열반하셨지만 그의 상좌로 있던 정목스님이 그곳에 있다는 것...

정목스님은 여고 시절부터 머리를 깎고 학교를 다녔기에 학생시절에도 선생님들까지 스님이라고 깎듯이 존대했다고 한다.

두 여승에 관해 한번 알아보고 싶은 구미가 발동했고,유명 사찰은 어디든 발품팔아 직접 찾아보는 나의 습관이 언젠가는 꼭 한번 찾아보리라 마음 해 두었는데,뜻밖에도 그날이 너무도 쉽게 찾아왔다.

다음날 일찍 청평을 가려면 서울에서 잠을 자야만 하겠기에, 7월 24일 정릉 딸내미집을 가는 길에 이곳을 탐방할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사찰을 소개해준 기자는 자기도 한번 가보고 싶은데,어떻게 가야 하는지 길을 잘몰라 여직 못가봤다며 한성대입구역에서 찾아간다고 만 일러 주어, 지도를 살펴보니 의외로 내가 자주 찾던 낙산 공원으로 이어지는 한성도성길 주변에 위치해 있었다. 

한성대역에서 하차하여 3번 출구로 나가, 낯익은 한성도성 길을 찾아 발길을 옮겨 가는데,왠 할머니 한분이 갑자기 나를 향해 오빠라고 불러댄다.

생면부지 노파가 나를 오빠라고 부르다니 이상해서 가까히 갔더니, 경로당에서 술을 한잔 하였다며, 나를 껴안으며 사랑한다고 외쳐대지 않는가!

여행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벼라별 괴이한 일이나,예기치 않았던  재미있는 사연들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가까스로 수습해서 그 노파를 돌려보내놓고, 잠시 아름다운 한성도성 길을  산책한후 목적지 정각사를 찾았다.

정각사는 계단길과 꼬부라진 골목길 안쪽에 자리하고 있었는데,사찰 입구는 퍽  어수선한 분위기가 느껴왔다.

낙산 공원과 정각사로 가는 이정표

이 길목에서 오빠라고 부르는 노파를 만났고.....



정각사 입구의 입간판


망월산 정각사란 현판이 걸려있다.

이곳은 망월산이 아닌데 왜 망월산이란 이름을 앞에다 붙였을까??


하얀 수국이 고개 숙이고  나를 반긴다.



눈향나무가 늘어진 바위위에 앉아있는 부처상

정각사 대웅전

보물같은 석탑과 두그루 귀한 백송이 눈길을 끌었고.....


대웅전 뜰에 올라 바라본 한성대

사찰 입구는 매우 허술하였지만, 정작 대웅전에 올라서면 사방이 한눈에 들어와 좋은 명소라 느껴졌다.


모셔진 광우스님

한국 비구니계의 선구자인 태허당 광우 스님(정각사 회주)은 지난 7월 18일 입적했다. 법랍 80세, 세수 95세.

광우 스님은 1925년 경북 군위에서 태어나 15세 때인 1939년 직지사에서 성문(性文) 화상을 은사로 득도했다고 한다.

같은 해 남장사에서 혜봉(慧峰) 대화상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받았고, 1960년 서울 청룡사에서 자운(慈雲) 스님을 계사로 보살계와 비구니계를 받게된다. 

광우 스님은 한국 비구니계를 대표하는 원로이자, 비구니계의 선구자적 삶을 살아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스님에게 늘 따라다니는 ‘교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스님은 1944년 최초의 비구니 강원인 남장사 관음강원을 1기로 나왔고, 1956년에는 비구니 최초로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했다.

이어 조계종 최초로 원로 비구니에게 내리는 ‘명사(明師)’ 법계를 받았다.

명사는 승납 40년 이상 된 비구니에게 주는 법계로 비구의 ‘대종사’격에 해당하는 것이다.

스님은 전국 비구니회 회장 시절에는 전국 비구니 회관 건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광우 스님은 1958년 서울 성북구 삼선동에 정각사를 창건하고 반세기가 넘게 도심 포교에 진력했다.

법화경을 번역·출판하기도 했으며, 특히 법화산림법회를 10년 넘게 연 것으로도 유명하다.

스님은 10년전인 2009년 정각사 주지 자리를 상좌인 정목 스님에게 맡기고 전법에 힘써왔다.

광우 스님은 입적을 앞두고 상좌와 손상좌 등을 한 자리에 불러 “떠나는 바람은 집착하지 않는다. 그저 왔다가 갈 뿐이다”라는 임종게를 남기고 이 세상을 하직했다고 한다. (경향신문기사에서 발췌)

정목스님을 만나보고 싶었지만 자리에 없어 만나볼수는 없었다.

워낙 유명한 분이라서 쉽게 만나기 어렵다고 귀뜸해준다.

유명스님들을 들자면 조계종 종정인 진제 종정스님을 비롯해서, 힐링의 맨토로 불리는 혜민스님,108초의 즉문즉답으로 널리 알려진 법륜스님,자비명상의 마가 스님 같은 분들의 반열에 정목스님도 그만큼 유명세를 타고있는 스님중 한분이다.

인터넷으로 정목스님을 찾아보니, 별로 구체적인 내용은 찾아볼수 없었지만,아래와 같은 재미있는 기사가 실려있었다.

정묵스님이 1976년 중학교 2학년때(16세),헤르만 헷세의 "싯다르타"란 책을 읽게 되었단다.

책 말미에 나오는 글귀에 힐이 꽂히게 되었는데,"네가 궁금한 것이 있다면 흘러가는 강에게 물어보라,그러면 강물은 웃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인생의 궁금함은 내가 직접 찾아야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그래서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단다.


그후 어느날 헌책방에서 불교 관련 책을 보고 있는데,책방주인이 용화사에 머무는 묵언스님을 찾아보라는 권고를 받게 되었고...

그길로 무작정 인천으로 스님을 찾아가게 되었는데,스님의 말이 정확히는 무슨 뜻인지는 몰랐지만,처음부터 끝까지 재미가 있어 그때부터 승려의 길을 가기로 다짐했단다.

출가를 결심하고 삭발을 하려는데 가족과 친구들은 울며 반대하였지만, 자신은 오히려 깔깔대고 계속 웃어댔단다.

고교시절엔 승복을 입고 학교를 다녔는데,덕분에 선생님들이 모두가 존댓말을 해주더라고.....

혼이 나는 경우도 존대를 해줬는데,그게 죄송스러워서 더욱 열심히 공부하였고 그런 덕분에 장학금을 받고 학교를 다니기도 했단다.

무소유의 저자 법정스님과의 일화도 재미있다.

법정스님과도 가까히 지내며 특별한 인연들이 있는데,언젠가는 정묵스님이 진행하는 라디오를 청취하고선 음악이 참 좋다고 칭찬해 주셨는가 하면,한번은 바쁜일로 절을 자주 비우게 되었는데,"중이 어디를 그렇게 쏘다니냐"며 꾸지람을 듣기도 하였다고....


천수각

방금전 여신도들이 이곳에서 대화를 나누다 갔고,사찰 업무를 보는 한 책임자가 대웅전에서 예불 드리고 가라 일러주던곳.

하산길에 멀리 하늘 어음교회라는 이색적인 간판이 시선을 끌었다 

이곳에 출석하면 하늘 가는 어음을 역속해 준다는 뜻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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