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 속의 작은 우주

작성자소율|작성시간26.06.21|조회수17 목록 댓글 0

한강님의 (채식주의자) (2007) 에서도 식물의 이미지는 강렬합니다 영혜가 인간의 폭력에서 벗어나 식

물이 되려 한다고 믿는 장면은 존재의 방식 자체를 바꾸려는 절박한 몸짓처럼 다가옵니다 여기서 식물

은 도피가 아니라 다른 삶을 향한 위험한 선택입니다 화분은 그 선택이 붙이는 경계의 자리입니다

 

여기서 흙에 대한 사유는 더 깊어집니다 바슐라르가 (대지와 의지의 몽상)에서 말 하듯 흙은 순종적인 

물질이 아니라 저항하는 물질입니다 화분 속 흙은 길들여진 것처럼 보이지만 끊임없는 손길을 요구 합

니다 물이 많아도 적어도 생명은 쉽게 등을 돌립니다 이 미묘한 균형 앞에서 인간은 지배자가 아니라 

다만 귀 기울이는 조율자입니다 그래서 화분을 가꾸는 일은 자연을 통제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자연의

속도를 배우는 일 모자람 속에서도 이어지는 생의 방식을 따라가는 일 작은 흙의 그릇 하나가 우리에

게 가르쳐 주는 것은 거대한 자연의 힘이 아니라 그 힘과 함께 살아가는 가장 겸손한 태도입니다

 

흙을 살짝 눌러 보면  남아 있는 온기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알게 됩니다 봄은 계절이라기 보다

태도에 가깝다는 사실입니다 사막 같은 시간 속에서도 생을 밀어 올리려는 그 힘이야말로 우리가 지

켜야 할 최소한의 품위이자 희망임을 화분은 말없이 보여줍니다

 

화분이라는 그릇은 흙을 담는 용기가 아닙니다 가꾸는 사람의 "주의"가 머무르는 자리입니다 들판의

식물이 거대한 생태계의 질서에 자신을 맡긴다면 화분 속 식물은 오직 한 사람의 사랑의 기억과 성실

함에 생애를 의탁합니다 이 지독한 의존성은 역설적으로 인간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는 감각을 건

넵니다 보이지 않는 뿌리가 벽을 더듬으며 좁은 세계의 경계를 익히듯 우리 역시 그 앞에서 타자의 삶

을 온전히 책임지는 연습을 합니다 거창한 사랑이 아닙니다 마른 흙의 거친 숨결을 알아차리고 물을

건네는 작고 구체적인 다정함의 형태입니다

 

화분은 움직이지 않겠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머무르기를 선택 하겠다는 결단에 가깝습니다 겉으로는

정지해 있지만 그 안에서 쉼 없는 이동이 이어집니다 물은 위로 오르고 양분은 돌고 잎은 빛을 향해

아주 조금씩 몸의 각도를 바꿉니다 멈춤과 흐름이 한 자리에서 함께 이루어집니다 이 고요한 운동은

사랑이나 신앙 혹은 어떤 태도와 닮아 있습니다 멀리 나아가지 않음으로써 깊이 닿는 방식입니다

 

결국 화분은 인간과 자연이 맺는 가장 작은 계약서입니다 우리는 대지를 대신 할 흙과 물을 건네고 식물

은 우리에게 침묵 속에서 흐르는 시간을 들려줍니다 화분을 바라보는 일은 소비가 아니라 관조에 가깝고

소유가 아니라 동거에 가깝습니다 창가의 작은 화분 하나는 거대한 숲의 축소판이 아닙니다 그 자체로

이미 완결된 하나의 세계입니다 작기에 더 또렷하고 제한되어 있기에 더 절제된 세계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화분을 곁에 두는 이유는 식물을 소유하기 위해서가 아닐지 모릅니다 우리 안의 사막을

경작하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문밖의 세계가 효율과 속도의 이름으로 우리를 재촉 할 때 화분은 제 자

리에서 머문 채 기다림이라는 오래된 기술을 가르칩니다 잎 끝에 맺혀있는 물방울 하나가 천천히 사라

지는 시간 단단한 흙을 밀어 올리는 새싹의 미세한 떨림을 바라보는 동안 흩어졌던 시간들이 하나의

생애로 이어집니다

 

화분은 닫혀 있지만 그 안의 생명은 언제나 바깥보다 먼저 봄을 예감합니다 가장 좁은 자리에서도 가장

깊은 뿌리를 내리려는 것이 생명의 본능임을 그리고 그 본능을 지켜보는 손길이야말로 인간이 끝내 잃지

말아야 할 가장 고귀한 영토 일임을 조용히 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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