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구惡口
『수타니파타』 451에,
“자신을 괴롭히지 않고 또 남도 상처 입히지 않는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진실로 이것이야말로 잘 말하는 법이다.”
또 같은 원시불교 『우다나바루가』에
비슷한 문장이 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입안에 도끼를 가지고 있다.
사람은 악구惡口를 말하면 그 도끼로 자신을 찍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악구惡口’란, 없는 것을 조작하거나,
있는 사실이라도 나쁘게 이야기하는 것을 말한다.
또 도끼라는 것은 바로 다름 아닌 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들은 악구를 말하면 상대방을 상처 입히는 동시에,
그것은 자신을 상처 입히는 것이다.”라고 석가모니불은 그렇게 가르치고 계셨던 것이다.
우리들은 상대방의 소문이나 악구惡口를 말하면,
마음이 후련해서 기분이 맑아진다고 하는 아주 안 좋은 버릇이 있다.
때문에 ‘우물가의 회의’는 끊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회사원이 동료와 상사의 惡口를 말하는 것도 스트레스 해소로 변함이 없다.
또 술안주로도 남을 씹는 게 제일 맛있다고들 한다.
심지어 절이나 교회의 동신자끼리도 삼삼오오 끼리끼리 모여 제삼자의 악구를 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그러나, 남의 惡口를 말하는 것은, 결코 뒷맛이 좋은 것은 아니다.
일종의 뒤가 켕기는 맛이 있고, 무엇보다도 건설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자신도 세우고 남도 세운다. 남을 세울 수 있는 것에 의하여 자신도 세워지는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이 불교에 있어 자타自他의 관계일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그리고 말은 인간의 행위의 중요한 하나이다.
‘身·口·意의 三業’이라고 말하는데, 불교에서는 신체의 행위 뿐 아니라, 말이나 마음도 행위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모든 것이 남에게나 나에게 영향력을 미치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도 세우고 남도 세울 수 있게 되었을 때 진짜 행복이 있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