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초롱역사방

무명이 뭐예요?

작성자智月常現|작성시간18.07.23|조회수105 목록 댓글 0
#헤르메스 해석학
#무명이 뭐예요?

지금은 이미 스무 살이 넘은 딸애가 초등학교에 갓들어 갔을 땐가 뜬금없이, "아빠, 무명이 뭐예요?"하고 물었다. 무명이라. 하기야 "목화밭 목화밭 " 하는 노래도 시골서 자라 지금 40대 후반이 넘은 분들 정도가 되어야 "아 그 밭!"하고 목화 따먹던 생각이 나지, 고추밭이나 고구마밭도 제대로 구경해본 적 없는 요즘 도시 아이들의 기억 속에 이미 우리 땅에서 없어진 목화밭이 있을 리 없다.

침침한 안채 골방의 베틀에 앉아있던 할머니가 엣다 하고 던져주던 엿조각의 단맛이 생각나는 '무명'이란 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너 입고 있는 옷이 뭘로 만들어졌니?"

"순면 백프로래요."

"그걸 순 우리말로 하면 ‘몽땅 무명’이란다."

수입면으로 만든 옷을 무명옷이라고 말했으니 틀린 건 아니지만, 글쎄, 그래도 엿냄새나는 무명옷이랑 요새 미국 목화 농장에 나온 면으로 짠 순면옷이 과연 같은 체온의 옷일까.

목화를 문익점이 가져온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그 이야기야 따로 할 것도 없다. 그런데 목화를 가져온 후에 어떻게 무명을 만들었나는 좀 전문적인 이야긴 만큼 필자가 한 마디쯤 거들어도 될 것 같다.

경상남도 산청군에는 문익점이 '면화를 처음으로 재배한 사적비'가 서 있다. 비문에는 문익점이 목화 종자를 가져와 재배의 묘를 얻어 3년만에 번성시켜 전국에 퍼뜨렸다고 한다. 또 손자 문래(文萊)는 물레를 만들어 '문래'로 이름짓고, 문영(文英)은 베짜는 요령을 얻어 이를 '문영'이라 했는데 지금은 와음이 되어 물레와 무명이라 부른다고 한다. 전래와 재배는 문익점이, 물레 제작은 문래가, 무명 만드는 법은 문영이 했다는 이 설은 문씨 집안 전래의 이야기로 내려왔고, 비문은 이를 따른 듯하다.

그런데 <고려사> 열전의 문익점에 대한 항목은 문씨 집안의 설과는 좀 다르다. 문익점이 장인인 정천익에게 가져온 종자를 주었고, 정천익이 재배방법을 몰라 거의 다 말라 죽이고 한 줄기만 자라나 3년만에 크게 번성했다고 한다. 정천익은 재배만 한 것이 아니라 씨아와 물레도 발명했다고 한다.
<목화씨 를 빼던 씨아라는 기구입니다>

조선시대의 <태조실록>에는 이보다 좀더 자세히 적혀 있다. 문익점이 심은 종자는 다 제대로 자라지 못했고 오직 정천익의 것이 한개가 살아 그 해 가을에 백여 개의 열매를 얻었고, 그 뒤 해마다 종자를 얻고 그것을 퍼뜨려 심도록 했다고 한다. 또 기구를 만드는 과정도 적혀 있다.

정천익이 지나가는 호승(胡僧) 홍원(弘願)을 붙잡아 두고 며칠을 공들여 대접한 뒤 기구를 만드는 법과 목화의 씨를 빼는 씨아질, 베짜는 기술을 습득하고 집안의 여종에게 가르쳐 1필의 베를 짜내게 되었는데 이것이 널리 전해져 10년이 채 못되어 전국에 보급되었다고 한다.

한 집안에 내려오는 이야기 보다는 아무래도 사서(史書)에 전해지는 이야기가 보다 신빙성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로 여러가지 정황을 살펴 보아도 태조실록의 기사가 제일 믿을 만하다고 본다.

그런데 <태조실록>의 기사 중에 호승이 베짜는 기술까지 전래해 주었다는 이야기는 다소 의문스럽다. 무명으로 옷을 해 입기 전에도 이미 다른 직물로 옷을 해 입고 있어서 베짜는 법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씨를 빼고 실을 뽑는 기술이다.

조선중기의 대유학자이던 조식의 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처음에는 손으로 씨를 빼고 실을 뽑았는데 중국의 승려가 씨아, 물레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옷감짜는 기술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조식의 설은 승려가 가르친 것이 베짜는 직조기술이 아니라 실뽑는 방적술이었다는 것이다.

조식이 살던 지역이 문익점이나 정천익이 살던 곳과 가까워 조식의 설에는 이 지방에 구전되어 오던 이야기가 남아 있을 가능성도 있고 역사적으로 보아도 믿을 만하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던 씨아나 물레는 인도나 중국에서 쓰던 것과 똑같았다. 따라서 실만드는 물레를 문래나 정천익이 만들었다는 앞의 비문이나, <고려사>의 기록은 믿기 어렵고, 조식의 기록처럼 중국 승려가 전수해 준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같다.
<목화실을 뽑는 물레>

마찬가지로 무명이 문영의 와음이라는 설도 믿기 어렵다. <태조실록>의 기록에 의해도 무명을 처음 짠 것도 문영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무명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나왔을까.

조선중기의 어느 기록에 의하면 목화에서 얻은 실로 짠 이 옷감에 이름이 없어 이름 없다는 뜻의 '무명(無名)'을 붙였다고도 한다.

원래 말의 어원이라는 게 언어학적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견강부회해서 온갖 설을 갖다 붙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설도 논리는 그럴 듯하지만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무명의 한자말은 목면(木棉)이고, 목면의 중국식 발음은 '무미엔(mu mian)'이다.

언어학적으로 보아 무명의 어원은 '무미엔'에서 나온 것이 확실하다. 문익점이 중국에서 목화를 가져오면서 그것으로 짠 옷감의 이름이 '무미엔'인 줄 몰랐을 리 없고 정천익이 '무미엔'을 만드려는 생각없이 중국승려를 집안에 끌어들였을 리도 없다. 따라서 '문영'설이나 '무명(無名)'설보다는 '무미엔'설이 가장 믿을만 하다.

- 하원호의 역사이야기에서 -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