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에 안 맞으면
옛날 중국 형산 땅에 가난한 선비가 살았다.
그는 끼니 때마다 걸식을 했다.
어쩌다 돈이 생기면 술을 마셨고,
술이 깨면 다시 저잣거리에 나타났다.
어느 날 그의 허름한 행색이 마음에 걸렸던 부자 친구가
도포 한 벌을 선물했다.
며칠 후 부자 친구는 길에서 우연히 그를 마주쳤다.
그런데 자신이 선물한 도포가 아니라
여전히 더러운 베옷을 입고 있는 게 아닌가.
의아하게 여긴 부자 친구가 물었다.
“내가 준 도포는 어쩌고 행색이 여전히 이 모양인가?”
가난한 선비가 대답했다.
“도포가 없을 때는 아무데서나 빌어먹고,
잠을 잘 때도 문을 잠그지 않았네.
그런데, 도포가 생긴 뒤로는 밖에 나갈 때마다 문을 잠그고,
잠을 잘 때에도 자물쇠까지 채웠다네.
오늘 도포를 입고 거리에 나왔다가
문득 내가 그 옷에 매여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네.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도포를 벗어주었더니
이렇게 편하고 좋을 수가 없군.”
허균의『한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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