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전체가 “우주적 순환”(고미숙)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우주적 순환이란,
가장 먼저 20세기 문명이 만든
몸의 소외를 극복하는 일이다.
쉽게 말해, 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몸을 움직여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우리는 정신없이 바쁘게 살지만,
몸을 쓰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우리는, 직접
목소리로 통화하지 않고,
카톡으로 소통하고, 걷지 않고
여기 저기 차로 움직인다.
그러다 보니 몸의 정기가
순환되지 않는다.
밤에는 잠을 못 자고, 술판을
벌려야 겨우 잘 수 있다.
“낮의 활동에선 웅덩이처럼 고이고,
밤의 유흥에선 불나방처럼 타오른다.”(고미숙)
어지간하면 걷는다.
몸을 순환시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체와 과열로 불통(不通)이 일어난다.
"통즉불통(通則不通)"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통하면 아프지 않다,
또는 아프면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낮에 몸을 움직이지 않는 데서 오는 정체와
밤에 ‘주색잡기’로 일으킨 과열이
작금의 우리들의 불통 모습이다.
이런 상태로 건강은 물론 자존감을 유지할 수 없다,
“자존감이란 발산과 수렴의
매끄러운 리듬 속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고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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