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19 반도체발 ‘격차사회’ 대책 필요해
* 인텔, 애플 메모리 날갯짓이 한국엔 태풍으로… ‘K자 양극화’ 심화 우려
한겨레 박종오 기자 2026. 6. 19. 05:08
반도체발 ‘격차사회’① : 반도체 쏠림 장기화 대비해야
[*반도체 슈퍼사이클은 인텔, 애플 등 거대 테크 기업들의 공급망 전략수정과 인공지능(AI) 투자가 맞물린 외생변수로 촉발됐다. 업계에서는 이번 슈퍼사이클이 3~4년 주기로 반복되던 기존 수요곡선과 달리 기조적 흐름으로 상당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클 것으로 내다본다. 반도체발 이익 쏠림이 장기화되면 산업구조와 임금소득, 자본자산 등 영역에서 한국사회의 다중격차가 심화할 공산이 크다. 반도체발 양극화의 전개양상을 세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최근의 반도체 슈퍼사이클(초호황)은 서울에서 약 9천㎞ 떨어진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인텔 본사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3월 취임한 립부 탄 인텔 최고경영자 (CEO)는 그해 하반기가 되자 중앙처리장치(CPU) 칩 증산에 나서며 ‘승부수’를 띄웠다. 모바일이 급성장한 가운데 회사 핵심기반인 개인용 컴퓨터(PC)와 서버용CPU 시장의 주도권을 지키고 후발주자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한 전략이었다. 공식 조달망과 별개로, CPU와 메모리반도체 제조사는 물밑에서 사전 물량교감을 거치는 게 업계의 숨은 관행이다. 그러나 이를 건너뛰고 사람의 뇌 구실을 하는 시피유가 시장에 대거 쏟아져 나오자, 이와 짝을 이루는 메모리수요까지 빨아들였다. CPU가 연산을 담당한다면 메모리는 데이터를 저장 공급하는 역할을 맡는 만큼, CPU가 늘어날수록 이를 뒷받침할 메모리도 함께 필요하기 때문이다. 공급이 수요를 낳은 셈이다.
글로벌 빅테크(거대 기술기업)들의 인공지능(AI) 투자에 더해, 거대 테크 기업의 공격적 경영판단이 맞물려 빚어진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기세가 거세다. 최대수혜기업인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의 올해 합산 영업이익 전망치는 약 620조원(이하 에프앤가이드 집계 기준)에 이른다. 내년 영업이익 전망치는 약 830조원으로, 추경기준 올해 정부의 총지출 (753조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여기엔 미국 애플도 한몫했다. 애플 관리자들은 자체공장 없이 스마트폰, 태블릿 등을 위탁 생산하면서도 한 번도 납품차질을 빚은 적 없는 ‘공급망 관리의 왕’으로 불린다. 업계 관계자는 “인텔의 영향으로 당시 메모리 수급불안 조짐이 일자, 전 세계 정보기술(IT) 기업으로 이직한 애플 출신들이 즉각 재고확충에 나섰다”고 했다. 메모리 가격상승세가 더욱 가팔라진 배경이다.
반도체 호황은 저성장 늪에 빠진 한국경제에 ‘축복’이다. 하지만 그 성취의 이면에 드리운 그림자를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경제전반의 ‘반도체 쏠림’이 장기화하면 국내산업은 물론 기업, 노동자 간 격차가 확대되고, 불균형과 양극화도 심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권남훈 산업연구원 원장은 “반도체 초호황으로 국가경제에서 반도체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커지고, 소수기업에 이익이 집중돼 빈부격차 확대로까지 이어진다면, 산업생태계 다양성이 약화되고 경제전반의 불균형도 심화될 수밖에 없다”며 “이는 우리경제에 또 다른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러한 양극화를 심화시킬 ‘반도체 독주체제’가 더욱 고착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인공지능 경쟁에서 승기를 잡으려는 빅테크들의 투자경쟁이 본격화하고 있으나, 세계적으로 극소수에 불과한 반도체제조사들이 공급을 단기간에 늘리기는 현실에서 쉽지 않은 탓이다. 또한 향후 신규 반도체공장이 속속 들어서 메모리가격이 하향안정세를 보이게 되더라도, 인공지능 혁신을 떠받치는 인프라투자 붐 자체는 계속될 것이라는 점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싣는 요인이다. 과거 개인용 컴퓨터, 인터넷, 모바일 혁명의 투자확대 추세도 10년가량 지속된바 있다. 격차완화를 위한 대비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 메모리 시장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지표들도 이런 전망을 뒷받침한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삼성전자, 에스케이하이닉스와 미국 마이크론 등 메모리 3사의 올해 연간 디D램 웨이퍼(반도체원판) 생산량 전망치는 지난해보다 6.1% 증가한 1,842만장으로, 생산증가폭은 전년(7.4%)에 견줘 축소됐다. 앞선 업황급락으로 실적악화를 겪은 기업들이 그동안 신규투자에 보수적으로 접근한 결과다.
반면 빅테크들의 투자수요는 본격적인 증가세를 보이며 메모리기업들의 몸값을 키우고 있다. 미국 전미경제연구소가 이달 펴낸 보고서를 보면, 구글(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아마존, 오라클 등 주요 5개사의 연간 인공지능 인프라투자액은 지난해 3,810억 달러 (572조원)에서 내년에는 1조900억 달러(1,635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제이피JP 모건은 디램의 경우 2028년까지, 낸드플래시는 적어도 올해까지 공급부족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만, 공급부족이 해소되면서 찾아올 반도체 슈퍼사이클 둔화가 곧 메모리기업들의 불황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영국 옥스퍼드 마틴 인공지능 거버넌스 이니셔티브가 지난 2월 펴낸 보고서를 보면, 글로벌 인공지능시장은 2033년까지 독일 경제규모와 맞먹는 4조8천억 달러 (7,20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 역시 단기적인 이익둔화는 있을 수 있으나, 중장기적인 인공지능 인프라투자 붐에 따른 수혜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병호 고려대 휴먼 인스파이어드 인공지능연구원 연구교수는 “피지컬 인공지능과 로봇 등으로 인공지능산업의 무게중심이 옮겨가며 관련 투자가 계속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권남훈 원장은 “반도체 초호황 장기화에 따른 우리경제의 불균형이 심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반도체에서 나오는 이윤이 경제 구석구석에 잘 흘러들어 갈 수 있게 정부, 산업 차원의 실효성 있는 대응방법을 고민해야할 때”라고 말했다.
박종오 기자 배지현 기자
* 반도체 쏠림에 양극화 늪, 남 얘기 아니다…‘먼저 온 미래’ 대만의 경고음
한겨레 박종오 기자 2026. 6. 19. 05:07
반도체발 ‘격차사회’①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만의 경제양극화 현황을 조사한 한국은행 실무자는 최근 <한겨레>에 이렇게 말했다. ‘반도체 수출 호황’으로 이례적인 고성장을 이어가는 대만경제 내부의 격차확대, 양극화 문제가 한국경제의 미래를 보여주는 거울 같다는 얘기다.
한국경제도 대만처럼 반도체에 편중된 수출, 성장 호조를 보이고 있다. 제도를 통한 ‘재분배의 통로’를 서둘러 마련하지 않으면, 체감경기 악화를 넘어 경제양극화와 노동시장의 격차 고착화, 자산 쏠림 등 구조적 불균형이 심해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18일 대만의 경제지표를 집계하는 행정원 주계총처 통계를 보면, 올해 1분기(1~3월) 대만의 실질경제성장률(전년 동기대비 국내총생산증가율)은 무려 14.55%를 기록했다. 대만 경제의 연간성장률은 2022년 2.68%, 2023년 1.08%로 저성장의 초입에 놓여있었다. 그러나 2024년 5.27%를 찍은 뒤 지난해 4분기부터 ‘두 자릿수 분기성장률’이라는 초고속 성장세를 보이는 상황이다.
한국에 견줘 인구수 절반, 영토면적 3분의 1 남짓인 섬나라 대만이 이처럼 두드러진 경제적 성과를 낸 배경에는 단연 반도체수출 호조가 있다. 대만은 세계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 생산)인 티에스엠시TSMC를 중심으로 설계, 제조, 후공정 등 반도체 전 공정에 걸친 산업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다. 인공지능(AI) 투자열풍과 수요확대에 힘입어 반도체산업이 국가 성장을 이끄는 핵심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반도체호황의 온기가 대만경제 전반으로 번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외려 대만의 수출, 생산 등 주요지표들은 반도체와 비반도체 간 격차가 확대되고, 저임금과 민간소비 부진이 지속되는 등 경제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세계불평등연구소의 ‘2026 세계불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대만의 상위 10%가 전체소득의 48%를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하위 50%의 소득비중은 12%에 불과했다. 소득상위 10%가 전체 부의 37%를 차지하는 한국 (하위 50%는 전체 부의 18% 차지)보다 소득집중도가 높다.
최저임금수준도 한국에 크게 못 미친다. 지난해 기준, 1인당 국민총소득(GNI)에서 한국을 앞질렀지만 대만의 월 최저임금은 2만8,590대만달러(138만원)로 한국의 월 환산 최저임금 (215만원)의 65%수준에 그쳤다. 대만경제가 반도체호황에 힘입어 고성장을 기록하지만, 청년층과 중산층을 중심으로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산업 의존도가 높은 탓에 반도체호황이 둔화하면 대만 전체경제가 빠르게 경색될 수밖에 없다는 위험도 안고 있다. 올해 1분기 실질경제성장률(14.55%)에서 반도체수출을 제외할 경우, 성장률은 4%대 초반으로 대폭 하락한다. 대만정부가 공개한 ‘산업생산지수’를 봐도, 지난 4월 대만의 반도체(집적회로) 생산지수는 152.80으로 전체제조업 생산지수 (127.81)를 크게 웃돌았다. 반도체부문의 생산증대가 전체 제조업지수를 이끈다는 뜻이다.
한국역시 반도체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점에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올해 1~5월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수출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37%로, 지난해 연간(약 24%)에 견줘 그 비중이 대폭 확대되고 있다. 올해 1분기 실질성장률(전기대비 1.8%) 역시 ‘반도체 제조업’을 빼면 0%대로 내려간다. 한국은 반도체 등 정보기술제조업부문 종사자 수 비중이 지난해 1~10월 기준 전체의 1.9%로 대만(10.5%)보다 훨씬 작은 터라, 반도체경기 호조로 인한 과실이 특정대기업 정규직 등 소수에게 집중되는 구조이기도 하다.
국제금융센터는 지난달 보고서를 통해 “대만은 반도체 등 인공지능관련 업종을 제외한 전통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투자소외, 구인난에 시달리는 등 반도체 쏠림이 심화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반도체 쏠림 심화 등으로 대만과 같이 소득계층별, 산업별 양극화가 심화될 가능성에 유의해야한다”고 지적했다.
박종오 배지현 기자
* 미국 규제에도 몸 커진 ‘중국판 삼전닉스’…반도체 시장 판 흔드나
한겨레 박종오 기자 2026. 6. 19. 05:07
반도체발 ‘격차사회’①
국내 반도체기업들이 맞은 슈퍼사이클(초호황)의 전망을 좌우할 주요변수의 하나로 ‘중국 반도체의 부상’이 거론된다. 거대한 내수시장을 발판삼아 체력과 실력을 키워온 ‘중국판 삼전닉스’가 대대적인 투자와 증설에 나서며 시장의 판도를 흔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반도체기업들의 메모리생산규모는 이미 무시할 수 없는 수준까지 올라와있다. 시장조사기관 ‘옴디아’ 통계를 보면, 중국최대 디(D)램 업체인 창신메모리 테크놀로지(CXMT)의 연간 디램 웨이퍼(반도체원판) 생산량추정치는 354만장이다. 이는 삼성전자 생산량의 43.1%, 에스케이(SK)하이닉스 생산물량의 53.5% 규모다. 공격적인 투자로 5년 전인 2021년(연 46만5천장)에 견줘 디램 생산능력을 8배 가까이 키운 것이다.
낸드플래시 메모리 전문기업인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역시 올해 연간 낸드 웨이퍼 생산량 추정치가 201만장으로, 에스케이하이닉스(279만장)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낸드의 경우 중국과 한국 기업 간 기술격차가 고작 1~2년에 불과한 터라, 시장경쟁도 더 치열해질 가능성이 크다.
중국판 삼성전자·하이닉스로 불리는 창신메모리와 양쯔메모리 등 중국 반도체기업들은 중국 정부가 2014년부터 최근까지 6,869억 위안(약 155조원) 규모로 쏟아 부은 ‘국가반도체산업 투자기금’(1∼3기 포함) 등 정책지원을 받으며 자체기술력을 쌓아왔다. 그러나 미국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인 2019년 말 미국정부가 첨단반도체의 미세회로를 그리는데 필수 장비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의 대중 수출을 금지하며 직격탄을 맞았다. 이 장비가 없으면 연산을 담당하는 로직 칩은 물론 메모리도 최첨단 칩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중국기업들이 주목받는 건, 미국의 수출규제를 우회할 수 있는 자체적인 기술적 돌파구를 마련하며 ‘반도체자립’에 부쩍 속도를 내고 있어서다. 창신메모리는 글로벌 메모리 공급부족과 가격상승 덕분에 흑자전환에 성공한데 이어, 이달 말 증시상장을 앞두고 있다. 영업이익과 상장을 통해 조달하는 투자액을 더해 대규모 ‘투자실탄’을 장전하게 된 셈이다.
다만 중국 반도체기업들이 지금 당장 국내기업에 위협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게 업계의 중론 이다. 첨단장비의 부재 등 해결해야하는 과제가 여전하고, 인공지능메모리(HBM), 파운드리 (반도체 수탁생산) 등은 우리기업과의 기술력 격차가 여전히 3년 이상이다. 인공지능투자의 발원지인 미국의 주요 테크 기업들이 기술안보정책 등 보안강화 탓에 중국산 반도체를 꺼린다는 점도 한국 업계에 유리한 사정이다.
이우근 성균관대 교수(반도체융합공학과)는 “중국의 강점은 내수시장이 크고 기초과학이 강하다는 점”이라며 “중국기업들도 최근 슈퍼사이클 호재로 돈을 벌어들이고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오 기자 배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