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교수님, 영화 '건국전쟁' 감독 김덕영입니다안녕하세요? 작년에 한 TV 프로에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로 초대되었을 때 뵌 적
작성자普賢.작성시간24.02.14조회수11 목록 댓글 0진중권 교수님, 영화 '건국전쟁' 감독 김덕영입니다
안녕하세요? 작년에 한 TV 프로에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로 초대되었을 때 뵌 적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진교수님의 날카로운 비판력과 사물과 현상에 대한 통찰력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제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교수님이 '건국전쟁'을 언급하시면서 화난 표정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우연히 봤습니다. 전체 맥락을 보지 못했지만 무척 강도높은 비난에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우선 말씀하신 '건국전쟁'이 4.19의 헌법정신에 위배된다는 부분에 대해서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건국전쟁'은 4.19의 헌법정신을 조금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 개인적으로 4.19로 인해서 희생된 숭고한 영혼들에 대해서 마음 깊이 안타까운 심정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번에 '건국전쟁'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이 실제로 4.19를 촉발시킨 3.15 부정선거와 직접적 관련성이 없다는 것을 여러 가지 객관적 자료를 통해서 증명했습니다.
3.15 부정선거와 이승만의 무연관성을 입증하는 것이 어떻게 4.19 헌법정신에 위배되는 것인지요? 4.19의 정신은 불의에 항거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3.15 부정선거를 이승만이 기획하고 획책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 '불의'를 바로 잡는 것이 진정한 4.19 정신이 아닐까요?
지금 영화를 본 많은 관객들은 '처음으로 3.15부정선거가 이승만과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민주화 운동에 전념했던 민경우 대표 같은 분도 얼마 전 유튜브 방송에 나와서 비슷한 말씀을 하는 걸 들었습니다. 그는 덧붙여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4.19가 일어나고 4일 후, 이승만 대통령이 부상당한 학생들을 위로하러 서울대 병원을 방문한 사건을 나는 왜 그동안 4.19를 그렇게 많이 공부했으면서도 몰랐을까... 과연 어느 독재자가 자신의 쏜 총에 맞은 학생들에게 찾아가 사과하고 위로의 마음을 전달하겠는가. 그 자체만으로 이승만에 평가는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말은 의미심장합니다. 해석은 다를 수 있지만, 저는 그것이 우리 사회를 70년 동안 짓눌렀던 거짓의 이데올로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거짓의 장막을 걷어내는 것이 정의로운 일이 아닐까요? 그것이야말로 진정 불의에 항거하는 4.19 정신의 회복이 아닐까요?
두 번째로 '역사 수정주의'를 언급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 역사 수정주의는 잘못된 가설과 근거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요? 가장 대표적으로 6.25 한국전쟁을 수정주의적 관점에서 해석해서 '내전'이라 규정한 브루스 커밍스 같은 학자들이 지금 새롭게 등장한 역사적 자료와 근거들로 인해서 거의 학계에서 왕따 수준으로 전락한 것이 사실이 아닌가요.
'건국전쟁'의 어디에 잘못된 증거가 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역사학자는 아니지만 3년 반의 시간 동안 나름 열심히 이승만과 그를 둘러싼 시대를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얻어진 소중한 기록필름과 자료들로 영화 '건국전쟁'을 구성했습니다.
틀린 자료가 있다면 지적을 받아야겠지요. 하지만 '건국전쟁'이 역사 수정주의에 빠진 영화라고 단정짓는 것은 우리가 늘 경계해 왔던 프레임의 논리에 빠지는 것과 무엇이 다른 것인지요?
마지막으로 '영화감독은 이런 거 안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묻겠습니다. 2020년 제가 만들었던 '김일성의 아이들'은 만들어도 되는 것인가요? 그건 되고 왜 '이승만'은 안 되는지요? 솔직히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저는 극영화를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때문에 다큐멘터리 영화의 가치를 잃지 않기 위해 늘 자료와의 싸움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일성의 아이들' 제작을 위해 16년이란 적지 않은 시간을 소비한 것은 제가 만족스러울 정도로 증거와 자료들을 찾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건국전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충분한 자료와 기록필름들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영화를 세상에 공개하지 않겠다는 나름 각오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세상 곳곳에 있는 아직 우리가 모르는 자료들을 찾아 헤맸던 것 같습니다.
존경하는 교수님, 제 글이 교수님의 명성에 흠집을 내거나, 이 글을 통해서 다른 뭔가를 얻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제가 보기에 진교수님은 아직 영화 '건국전쟁'을 보지 않으신 것 같아 보입니다. 제가 잘못 알 수도 있겠지요. 만약 안 보셨다면 바쁘시겠지만 영화를 봐주시면 어떨까요? 저는 교수님이 영화를 보시고 나면, 조금은 화난 심정을 풀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영화를 만든 제 심정을 조금은 이해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늘 우리 사회 소금이 되는 말씀 경청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나중에 또 뵙기를 바랍니다.
'건국전쟁' 김덕영
2024년 2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