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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의 잡놈'이 부처로 보일 때까지…45년간 무식하게 찾아간 곳 [백성호의 한줄명상]
중앙일보
입력 2022.07.06 05:00
백성호 기자 구독
“부처님 만나는 심정으로 교도소 찾아갑니다.”
#풍경1
경북 울진의 불영사(佛影寺)는
천년 고찰입니다.
신라 진덕여왕 5년(651)에
의상 대사가 창건한 절입니다.
지금은 비구니 사찰입니다.
1984년 겨울, 불영사 선방에는
동안거(冬安居)에 들어간 비구니 수좌들이
수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겨울 석 달간 산문 출입을 금한 채
선방에서 좌선만 하며
수행하는 걸 동안거라고 부릅니다.
정현 스님은 45년 넘는 세월 동안 교도소 법회를 이어오고 있다. [중앙포토]
그해에 선방 스님들이 단체로
간염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정현’이라는
비구니 스님에게 ‘사형선고’를 내렸습니다.
“두 달밖에 못 산다.
선방에서 나와 병원에서
격리 치료를 받아라.”
절집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동안거를 중간에 접고,
병원에 입원을 해야 할 것인가.
선방의 모든 스님이 모여서
대중공사(大衆公事)를 했습니다.
산중의 모든 스님이 참석해
승가(僧家)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민주적 제도를 ‘대중공사’라고 부릅니다.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대중공사의 결론은 이랬습니다.
“죽어도 같이 죽자.”
물론 정현 스님 본인부터
그렇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동안거가 끝나기 전에
죽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죽기로 작정을 했다.
정말 백척간두에서 한 발짝
내딛는 심정으로 수행을 했다.
‘나는 이 생에서 이미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했다.”
불영사 선방의 석 달 동안거는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동안거를 마치고 해제하는 날,
정현 스님은 여전히
살아 있었습니다.
정현 스님은 지금도 말합니다.
“그때 한철 공부가 제게는
평생 양식이 됐다.”
정말 죽기로 작정하고
자신을 내려놓은 채
마음공부를 했으니,
그 오롯함과 치열함이
얼마나 대단했을까요.
#풍경2
정현 스님이 대구 동화사 내원암에
있을 때였습니다.
절에 있던 오래된 병풍을
도둑맞았습니다.
세간속에서해탈이루리[왜 '불쌍한(?) 사람'을 돕지 말아야(?) 하는가?]
普賢추천 0조회 11509.10.24 10:18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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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불쌍한(?) 사람'을 돕지 말아야(?) 하는가?] 우리는 흔히 '불쌍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불우 이웃 돕기 운동'을 곧잘 칭송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세속적으로야 좋은 일이 될지 모르나, 진리적 측면에서는 참된 일은 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이러합니다. 우선 불우 이웃, 또는 '불쌍한 사람'을 돕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세상은 불쌍한 이, 불쌍하지 않은 이, 그리고 돕는 이, 도움을 받는 이의 둘(二分法)로 나눠지게 됩니다. 그런 나눠진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는 어디까지나 유위의 행위, 한계가 있는 행위일뿐, 완전한 행위, 원만한 행위는 되지 못합니다. 급할 때 당장 불은 끄지만, 불이 꺼지고 나면 또 다른 갈등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나눠진 상태에서의 도움은 단순한 '퍼주기'에 불과하기 쉽습니다. 본인의 존엄성, 인간의 무한 가능성을 일깨워 스스로 타오르게 하지 못하고 그저 도와주는 이, 불쌍하지 않은 이의 자기 만족에 끝나기가 쉬운 것입니다. 또 단순한 퍼주기로는 이 세상의 모순을 없앨 수가 없습니다. '가난은 나랏님도 못 구한다'는 말과 같이, 구멍 난 독 물 채우기 식으로, 줘도 줘도 끝없는 소모만 있기 쉽습니다. 그리고 도움 받는 이들에게 스스로 일어서는 자립보다는 남에게 의지하기만 하는 '거지 근성'을 키워줄 수도 있습니다. 일전에 온 몸에 화상을 입고 수십 번의 수술을 받은 분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을 바라보며 동정하는 눈초리가 가장 싫다고. 그리고 나는 이만 하기 다행이다, 라며 당신을 보며 위안을 삼는 행위도 가능하면 삼가 해 주시라고... 남의 불행을 보고 동정하는 것을 나쁘다고야 할 수 없겠지만, 동정을 받는 입장에서는 그리 유쾌하지 않은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또 저 사람에 비하면 나는...하며 남의 불행을 위안 삼는 것도 감사하며 겸손한 삶을 가져다 주는 면에서는 그리 탓할 일은 아닐지 모르나, 그런 비교가 되는 대상은 참으로 감당하기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급할 때야 물 한 모금 밥 한 덩이 먹기 위해 그런 시선을 감내할지 모르나, 우리는 물이나 얻고 밥이나 얻어 먹어야 하는 그런 비루한 존재가 아닙니다. 얼마든지 스스로 물을 마시고 밥을 지어 먹을 수 있는 위대한 존재인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관점은 결코 상대방을 존중해 주는 관점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상대방을 가여운 사람, 남의 도움이나 받아야 하는 불쌍한 이로 고정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어찌 보면 내가 좀 나은 입장에 있다 하여 상대를 모욕하는, 상대방의 존엄성을 해치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 불쌍한 사람은 없습니다. 단지 불쌍하다고 스스로를 한계 지우거나, 나보다 좀 못한 이를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만 있을 뿐입니다. 돈이 부족하고 몸이 불편하면 우리는 불쌍하다, 가엾다 하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실 돈이 좀 부족하고 몸이 조금 불편하다 하여 불쌍한 것은 아닙니다. 몸이 불편하지 않고 돈이 크게 모자라지 않다고 생각하는 우리들이 우리보다 못한 분들을 보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돈이 부족하고 몸이 불편하면 살아가기가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우리의 무한 가능성, 존엄성을 훼손시키는 일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돈이 좀 모자랄 뿐이며, 우리는 단지 다른 사람보다 몸이 조금 불편할 뿐이지, 그것이 동정을 받고 불쌍한 사람 취급을 당해야 할 이유는 되지 못합니다. 또 그런 분들도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밝은 우리의 무한 가능성이 타 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도와야 하는가? 일체의 불쌍한 사람, 도와준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행위는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모시는 일'이 됩니다. 내가 '불쌍한 사람'을 '도와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잠시 불편하고 부족한 분'들을 '섬기고 모시는 일'인 것입니다. 임금이 행차할 때 시종은 앞에서 등불을 밝힙니다. 그것은 시종이 '임금보다 잘나고 여유로와서'가 아니라, 높고 귀한 임금님을 시종이 '모시는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이웃을 도와드리는 것은 불쌍하지 않은 내가 불쌍한 이웃을 돕는 게 아니라, 나와 똑같이 존엄한 이웃을, 단지 몸이 좀 불편하고 금전적으로 잠시 부족한 분을 내가 '모시는 일'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자리에서는 불쌍한 이 불쌍하지 않은 이, 돕는 이 도움을 받는 이가 없습니다. 불쌍하면 모두가 불쌍하고, 도움을 받는다고 하면 도움을 주는 나도 사실은 그 분들에게서 도움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평등한 자리, 일체의 나눔(二分法)도 없는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섬기고 모시는 일이 참으로 이웃을 도와드리는 일이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