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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가귀감- 27. 굽히지도 말고 높이지도 말라

작성자보문| 작성시간23.03.21| 조회수60| 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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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보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3.03.21 權敎(권교)

    임시방편으로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주는 가르침이다.
  • 작성자 보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3.03.21 因該果海(인해과해)

    인은 시작이고 과는 결말인데, 처음 시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니, 작은 인 속에는 드러날 많은 과가 이미 들어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복숭아씨를 심으면 나중에 씨앗이 커서 북숭아꽃이 피고 먹음직스러운 복숭아가 주렁주렁 달리는데, 시작은 작은 씨앗이었지만 이미 그 씨앗 속에는 해마다 많은 꽃을 피우고 풍성한 열매를 맺은 결과물이 들어있는 것과 같다. 이처럼 공부할 때도 자신의 참마음이 부처님인줄 알고 화두를 챙겨가다 보면, 이 공부 속에 어느 날 나도 모르게 부처님의 세상으로 들어갈 날이 있을 것이니, 굳이 자신을 중생이라고 낮추고 이 공부에서 물러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 작성자 보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3.03.21 果徹因源(과철인원)

    복숭아씨가 해마다 많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려면 오랜 시간에 걸쳐 적절한 양의 물과 태양의 빛이 필요하다. 꽃과 열매는 그 과를 가져오는 씨앗과 적절한 양의 물과 태양의 빛이란 인이 있어야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어떤 결과물이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알고 보면 그 결과물을 가져오게 하는 원인이 반드시 있었다는 것을 철저히 살펴보는 것, 이것이 과철인원이다.
  • 작성자 보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3.03.21 五十五位(오십오위)

    보살이 공부하여 성불한 결과를 가져온 그 과정에는 수없이 많은 단계가 있겠지만, 이것을 대략 정리하여 「능엄경」에서는 十信, 十住, 十行, 十回向, 四加行, 十地 55단계로 나누고 있다. 참선이 최고라고 하면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지 못하여 법답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기를 턱없이 높이지 말고 공부의 인과를 분명히 알고 공부해야 할 것이다.
  • 작성자 보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3.03.21 https://www.youtube.com/watch?v=G6Uw-HsNQUw&list=PLuwggJo1CUnfeeG1yAXh61fdEJ13odrsJ&index=21

    34분 부터 27장이 이어집니다.
    첨부된 유튜브 동영상 동영상
  • 작성자 普賢 작성시간23.03.22 교학수행자와 선 수행자의 병통을 아주 적나라하게 잘 지적하신 대사의 가르침입니다.
    너무도 잘 설명해 놓으셨어요.
  • 작성자 普賢 작성시간23.03.22 원래 선 수행을 할 때는 (대승에서는 ) 본래불, 내가 본래 부처(이걸 화엄교학에서는 부동지불이라 하지요)임을 아는 자리(大信)에서 시작합니다.
    부동지불임을 알기 위해 선을 닦는 것이요, 또 그건 이미 내가 부동지불임을 믿는 데서 시작한다, 이겁니다. 그래서 願諸道者(원제도자)深信自心(심신자심)하여不自屈不自高(불자굴불자고)하라, 는 것이지요.
    깨친 이나 못 깨친 이나 이미 똑같은 것이니 깨치신 스승님 앞이라 하여 내가 굽실거릴 필요가 없는 겁니다.

    그러나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많은 분들이 다생의 습기가 수시로 튀어나와 헛발질이 많은데 도무지 부동지불만 믿고 참회를 안합니다. 그 또한 병통이지요. 착각도인 파계승들이 숱하게 나오는 이유가 그런 겁니다. 참회만 제대로 해도 그런 엉터리 무애행이 나올 수가 없어요! 지금 조계종의 상당수 승려들도 마찬가지.
  • 작성자 普賢 작성시간23.03.22 견성이라 하는 건 육조스님의 말씀에 의하면, 내가 부처님과 똑같다, 그리고 그것은 반야심경의 불생불멸 부증불감 불구부정의 자리임을 처절히 알게 되는 걸 말합니다. 그리고 그걸 돈오, 라고 하지요.
    그러나 다생의 습기는 달리는 기차가 관성으로 바로 멈추지 못하는 것처럼 끝없이 삶 중에 솟아나옵니다. 구습기 번뇌라 하지요. 이걸 依悟而修하는 걸 점수라 말합니다.
    즉, 돈오점수의 수는 깨치려고 닦는 수가 아니라 이미 깨친 자리에서 깨침에 의거해서 다생 훈습 습기를 제거해 나가는 겁니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돈오돈수나 돈오점수가 같아요.
    점수에서 점차적 닦는 개념이 나오니 이게 돈수하고 다른 것 같지만, 점수의 수는 우리같은 범부의 무명행이 아니라 깨친 이의 이오이수, 즉 무념수행, 무염오수행인 修인 겁니다.
    그러니 돈오돈수의 돈수와 다르지 않지요.
  • 작성자 普賢 작성시간23.03.22 그래서 깨쳤다고 으실댈 필요도, 못 깨쳤다고 비굴한 필요도 없다, 는 게 오늘 선가귀감의 가르침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게 바로 中道요 중도행입니다.
    비굴하지도 교만하지도 않은, 늘 그 자리에 있는 거지요.
    그 자리에서 때로는 비굴한 행도 보이고, 또 교만한 자가 나타날 땐 나도 부천데? 하면서 교만도 떨고 그런 모습이 나오는 겁니다.

    그리고 끝으로 하나 더.
    우리 큰스님의 '내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이 바로 우리가 부동지불!임을 만 천하에 선언하는 반야활구입니다.
    이 말씀 하나만 보더라도 우리 큰스님이 깨치신 분임을 알 수 있어요.
    그리고 그 많은 불광의 불사들이 바로 각행, 큰스님 사숙이신 소천선사께서 그토록 이 땅에 울리도록 원하셨던,
    그리고 또 큰스님의 노사이신 용성조사께서 조선 땅에 굴리려고 하셨던 각륜의 또다른 모습이었음을 알수 있지요.

    큰스님의 불광운동은 바로 개안조사의 눈에서 전개된 깨달음의 행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게 보.현.행.원이었어요!
  • 작성자 연무심 작성시간23.03.22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 작성자 普賢 작성시간23.03.22 견성한 후에 닦는 무념수행, 또는 의오수행을 기신론의 유전연기 환멸연기로 말해보면, 우리 범부들의 중생행은 유전연기, 즉 끊임없는 윤회 속으로 흘러가는 유전행이라면, 깨친 분의 행은 윤회의 싹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가는 환멸행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오염, 더러움이 없어요. 늘 깨끗해요. 그래서 무염오수행이라 부르는 겁니다.
  • 작성자 普賢 작성시간23.03.22 하나 부탁드릴 것은, 수행자들 앞에 주눅들지는 마라!는 것입니다.
    화엄경에 수없이 강조되는 것 중 하나가 세간과 출세간이 다르지 않다는 것인데,
    심지어 세간과 여래경계가 같다!는 말도 나옵니다(여래출현품).

    그러니 우리 불자님들은 절에 가거나 일상에서 스님들을 만날 때,
    공경하는 건 좋지만 과공하거나 쩔쩔 매거나 심지어 주눅들거나...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는 것이지요.
    선가귀감의 오늘 구절도 당당한 자부심(그렇다고 교만하지는 않은)을 가지는게 불자로서는 필요합니다.


  • 작성자 청정수1 작성시간23.03.22 감사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 작성자 누리달 작성시간23.03.22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 작성자 보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3.03.22 어렵게 느껴지는 오늘 공부를 쉽게 말씀해 주셔서 중요한 부분들을 공부합니다.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 작성자 법혜 작성시간23.03.23 고맙습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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