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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화선 이전 선수행자들은 무엇을 참구했나
기고 입력 2023.06.06 14:47 수정 2023.06.07 13:38 호수 1684 댓글 14
특별기고-윤창화 민족사 대표
한국의 선수행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해온 윤창화 민족사 대표가 간화선을 정착시킨 대혜종고 선사 이전에 선수행자들은 어떻게 정진했는지를 밝힌 기고를 보내왔다. 윤 대표는 ‘당송사원의 생활과 철학’을 저술해 불교평론 학술상을 받았으며, ‘무자화두 10종병에 대한 고찰’ 등 많은 논문이 있다. 편집자
간화선은 무자화두 등 화두 참구를 통하여 깨닫는 방법으로, 12세기 초 남송의 선승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 선사에 의하여 성립되었다. 그러나 최초로 조주 구자공안(狗子공안. 狗子無佛性) 공안에서 조주의 답어이자 핵심구인 ‘무(無)’자를 뽑아서 참구하도록 지도한 선승은 11세기(북송)의 선승 대혜보다 약간 앞선 오조법연(五祖法演, 1024~1104) 선사이다. 그는 ‘벽암록’의 저자 원오극근의 스승이다.(오조법연→원오극근→대혜종고).
“오조법연 선사가 상당 법문했다. 대중 여러분들은 평소 어떻게 알고 있는가? 노승(나)은 평소 다만 이 조주의 무자만 들어 모든 마음(번뇌)을 쉬네. 그대들이 만약 이 한 자(無)를 투득(透得)한다면, 천하에 그 누구도 그대들을 어찌할 수가 없게 될 것이네. 그대들은 어떻게 투득할 것인가? 투득한 사람이 있다면 나와 말해 보시오.”(師云. 大衆爾諸人, 尋常作麼生會. 老僧尋常, 只舉無字便休。爾若透得這一箇字, 天下人不柰爾何. 爾諸人作麼生透. 還有透得徹底麼. 有則出來道看. ‘法演선사어록’ 하권, 대정장, 47권, 665c. CBETA,T47, no. 1995).
오조법연의 무자화두를 본격적으로 개발하여 임제종의 수선 오도법(修禪悟道法)으로 대성, 정착시킨 것은 대혜선사다. 그는 기존의 공안선(公案禪, 文字禪)에 대하여 ‘알음알이의 문자 놀음’, 입으로만 선을 하는 ‘구두선‘이라고 비판했다. 에둘러 선을 풀이하는 요로설선(繞老說禪, 공안선)은 말장난으로 선이 아니며, 수심(修心)과는 무관하다고 비판했다. 그래서 스승 원오극근의 유명한 공안집 ‘벽암록’ 판본(원판)을 ‘언어유희(遊戲)의 산물’로 규정하여 불살라 버렸다. 성격이 과격했는데, ‘벽암록’이 다시 판각되어 간행된 것은 약 200년 후인 1304년(원대)이다.
또 대혜선사는 조사선의 무사(無事)는 한량들의 무사안일에 불과하며, 당시 쌍벽을 이루었던 묵조선을 가리켜 강한 어조로 ‘묵조사선(默照邪禪, 묵조선은 삿된 선)’, ‘흑산하(黑山下) 귀굴리(鬼窟裏)’, 즉 무명(無明) 속을 헤매는 바보 천치라고 비판하면서, 그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화두선, 간화선이다.
그는 당시 남송 정치에서 주전파로 몰려 15년 동안(53~57) 귀양살이를 했는데, 유배지를 전전하면서도 많은 사대부, 지식인들에게 무자화두를 들라고 역설했고, 간화선 정착에 일생을 바쳤다.
간화선은 번뇌 망상 극복에 초점
화두의 기능과 목적은 무엇이었나? 대혜선사는 간화선 텍스트인 ‘서장(書狀, 大慧書)’에서 무자(無字) 화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확고부동한 언어로 정의했다.
“무(無)라고 하는 이 한 글자는 곧 생사 의심을 깨부수는 칼이다(僧問趙州. 狗子還有佛性也無. 州云 無, 遮一字者, 便是箇破生死疑心底刀子也)”. 또 “이 한 글자(無)는 곧 허다한 악지 악각(惡知惡覺, 깨달음을 방해하는 잘못된 지식, 분별심)을 박살 내버리는 도구이다(趙州云. 無, 此一字(無)者, 乃是摧許多 惡知惡覺底器仗也)”
대혜선사가 “무자 화두란 사량 분별심(알음알이) 등 번뇌 망상을 단절시키고 깨달음을 이루게 하는 칼”, 또는 악지악각(惡知惡覺)을 끊어버리는 도구”라고 정의하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무자 화두의 기능은 생사 의심, 악지악각, 사량 분별심, 등 번뇌 망상을 퇴치, 차단시키는 데에, 그 1차적인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악지악각(惡知惡覺)은 공안선에 대한 비판이다. 설두중현의 ‘송고 100칙’ 등 시어(詩語)로 공안을 표현, 풀이하는 풍토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오조법연, 대혜종고, 무문혜개 등 간화선 선사들이 말하는 무자 화두 참구법은 ‘무’자에 대하여 의문사(?)를 붙여서 ‘무란 무엇인가?’하고 사유, 참구(參句)만 할 뿐, 일체 사량 분별심을 내거나, ‘있다(有) 없다(無)’, 또는 ‘무자(無字)’에 무슨 심오한 뜻이 있다는 식(이치적)으로 참구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구(句)란 ‘무’라는 글자를 가리킨다.
간화선(화두) 이전에는 공안의 의미(메시지)를 참구했다
그렇다면 간화선 이전, 송대(宋代, 북송) 공안선에는 무엇을 참구했나? 간시궐로 유명한 운문선사, 마삼근으로 유명한 동산수초, 공안선의 문을 연 분양선소, 설두중현, 조사선의 임제의현, 황벽희운, 백장회해, 위산영우, 조주종심, 남전보원, 마조도일 등 중국 선종사에서 유명한 선승들은 대부분 공안선(북송), 조사선시대(당대)의 선승들이다. 이들은 과연 무엇을 매개체로 하여 깨달았을까? 원오극근의 ‘벽암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칙, 공안의 의미, 메시지 파악을 통하여 반야지혜를 이루는 것, 반야바라밀로 무집착, 공(空), 중도를 이루는 것이 곧 깨달음이었다.
‘벽암록’ 100칙은 곧 100가지 다양한 사례, 지혜를 통해서 정법안장을 갖추기 위한 것이었다. 반야지혜를 바탕으로 통속적인 가치관, 세계관, 고정 관념 등에 속박되지 않고(無位眞人), 일체는 공(空), 중도임을 깨닫는 것이 목적이었다. 한 가지 공안에서 한 가지 지혜를 터득(一事一智)하여, 이사(理事)에 대응함과 동시에, 언제 어디서든지 부처로 살아갈 수 있는 안목과 능력(테크닉)을 갖추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고 할 수 있다.
공안과 화두는 같지 않으며 참구 방법도 다르다
여기서 정리하고 넘어갈 것은 공안과 화두는 다르다는 것이다. 같은 것이 아닌데도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같은 것으로 여겼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조주의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을 예로 든다면, 문답 전체(참고; 狗子有佛性也無. 州云. 無. 僧云. 一切衆生 皆有佛性. 狗子為什麼卻無. 州云. 為伊有業識在)는 공안이라고 할 수 있고, 그 가운데 핵이 되는 문구, 혹은 선사의 답어인 ‘무(無)’는 화두이다. 따라서 공안과 화두는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참구방법도 다르다, 화두 참구법은 집중(삼매)을 통해 번뇌를 잊는 것이 주목적이고, 공안 참구법은 의미, 메시지 파악을 통해 반야지혜를 이루는 것이 주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선학자들은 이와 같이 공안과 화두를 구분하고, 근래 우리나라 선학자들도 구분하는 편이다. 다만 일본에서는 ‘화두’라는 말은 그다지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공안’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이는 곧 공안 참구 중심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간화선에서는 분별심을 갖지 말라고 한다. 지식적인 탐색, 언어적 분별은 곧 망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설프게 분별할 때 더 헷갈리게 하지만, 분명하고 확실, 명확하게 구분한다면 그것은 반야지(般若智, 無漏智, 無分別智)라고 할 수 있다. 정견, 정안을 확립지 못한 상태에서 수행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그것은 100년을 해도 관록만 쌓일 뿐, 깨달음과는 아무 소용이 없다. 삼거리에서 헤매다가 끝나게 된다.
또 북송시대에는 분양선소(947~1024)의 ‘송고100칙’과 ‘송고대별’, 그리고 곧이어 나타나 천재적인 선승 설두중현(980~1052)의 ‘송고100칙’ 등의 영향으로, 많은 선승이 공안에 대하여 게송으로 송고(頌古), 착어(着語, 코멘트) 등 붙이면서 공안 참구를 촉발시켰다. 중도, 공, 무집착의 입장에서 불립문자의 세계를 절묘한 언어도단의 시어(詩語)로 착어를 붙여서 선(공안선, 문자선)을 알리고 표현했다.
조사선에서는 방장의 법문을 참구했다
당대(唐代) 선종사원에는 상당법어, 조참, 만참 등 법문이 많았다. 상당 법어는 오참상당(五參上堂)이라고 하여 5일에 한 번씩 있었고, 조참(朝參, 아침 법문)과 만참(晩參, 저녁 법문)은 매일 있었다(단 행사가 있는 날은 제외).
당대 선불교의 모습을 전하고 있는 양억(楊億, 974~1020. 송초의 한림학사)의 ‘선문규식(禪門規式)’에는 “선원(=合院)의 대중들은 아침에 법문을 듣고 저녁에도 모였다(合院大眾,朝參夕聚)”라고 하여, 조석으로 법문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듯이, 방장의 법문은 곧 언하(言下) 돈오(頓悟)를 이루게 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곧 조사선의 오도(悟道)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조사선 시대에 방장(주지)은 곧 현신불(現身佛)이었다. ‘살아 있는 부처’였다. 현신불이 무언(無言)의 법신불을 대신하여 법을 설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그 법은 곧 진리였고 그 권위는 경전보다 앞섰다. 그리고 그 법문의 기능과 목적은 반야지혜의 완성(깨달음)에 있었다. 방장의 법문은 공(空)의 인격, 무집착의 인격을 이루는 반야지혜의 커리큘럼이었다.
[1684호 / 2023년 6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