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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普賢.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3.09.11 한번 깨치는 건 별무 소용.
공부하는 분들이면 누구가 그런 경계 옵니다.
거기 속으면 안 돼요.
깨침은 초발심처럼 끊임없이 일어나는 겁니다.
마치 화엄종사들이 초발심을 한번 일으키면 끝내는 거 아니라 념념마다 일어나는게 초발심이라 하듯,
깨달음도 수없이 념념마다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렇게 엉터리(?) 깨달음이 념념마다 일어나다보면,
일어난다는 생각(想)이 없어져요.
그냥 온 세상이 눈부신 빛, 눈부신 깨달음 전체로 오게 됩니다.
그런 경지가 해인삼매지요.
그래서 개미 한 마리 풀 하나 사람 돼지 강아지 하늘 구름이 모두 진리로 빛나게 돼요.
개미를 봐도 강아지를 봐도 도무지 개미 강아지로 보여지지를 않습니다.
모두 축생 미물의 굴레를 덮어쓴 부처님으로 보이지요.
그리고 세상은 한없이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바로 화.엄! 이지요
이문세 노래 중에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을 보면
가사 중에 '이렇게도 아름다운 세상'이란 구절이 나와요.
거기에 이영훈작곡가도 곡도 딱 맞게 붙였고요.
저는 그 구절을 좋아합니다.
이렇게도 아름다운 세상
잊지 않으리, 내가 사랑한 것을
우~ 멀어져가는 가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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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普賢.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3.09.11 참으로 깨닫게 되면 중생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게 됩니다. 화엄경엔 等觀이란 말이 자주 나오는데, 평등하게 관조, 관찰한다는 말이지요. 그렇게 등관하며 한없는 연민심이 중생을 향해 일어나게 됩니다. 이미 그 분의 마음엔 우리 마음 속에 흔히 보는 미움 질투 시기 원망... 이런 게 없어요. 즉, 우리 범부와 다르다, 이 말씀입니다. 똑같은 걸 봐도 보는 게 다르고, 똑같은 일을 당해도 당하는 마음이 다르고, 똑같은 일을 해도 우리가 갖는 마음과 다른 마음으로 일을 한다, 이거지요.
그래서 지금 가령 종북 좌파 윤미향 이죄면 문죄인 같은 무리를 보더라도 사실 마음엔 미움이 없어요.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볼 때 악인이라 생각하고 분노가 치밀지만, 정녕 깨친 분들에겐 그런 마음이 없어요. 그저 무엇이 참으로 바른 일인지 모르고 자기 욕심 자기 무명에 이끌려 자신도 망치고 이웃도 망치고 나라도 망치는 그런 업보가 한없이 가여운 것이지요. 그런데 그런 것도 모르고 많은 강남 좌파들은 그런 무리를 박수치고 애국지사들을 비웃습니다.
그런 걸 보고 깨친 이는 한없는 자비를 일으키고, 내가 저들을 깨우쳐 주지 않으면 누가 깨우쳐주리! 그 마음으로 뛰어듭니다 -
작성자 普賢.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3.09.11 법화경에도 나오지만 화엄경은 수없이 나오는 글자 중 하나가 부처님은 중생들을 '자기 자식으로' 생각한다(아들 子자를 씀)입니다. 그런데 실지로 깨친 분들의 마음은 정말 그래요! 자식으로 생각한다 해서 내가 아버지다, 가 아니라, 부모가 자식을 아끼듯 그런 마음이 온통 그 분들 마음을 지배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한없는 자비심이 일게 돼요.
제가 드리는 말씀은 제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화엄경에 나오는 깨친 분들의 모습입니다.
화엄경에는 부처가 아니라 보살의 모습으로 깨친 세계가 그려지지만,
부처가 부처 자리에 그냥 가만 있으면 부처요,
부처가 중생 제도의 행을 하면 보살이다 라는 십정품의 말도 있듯,
보살이라 부르며 보살행을 한다, 고 하니까 우리같은 범부는 아, 그니까 보살은 아직 못 깨친 상태로 저런 행 저런 마음을 내면서 깨달음 계위를 닦아 올라가 십행 십회향 십지를 거쳐 등각 묘각으로 가는구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화엄경에 나오는 깨달음의 세계를 깨달음으로 알지 못하고 그저 수행으로만 알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