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말] 어떤 말하기가 제일 어려울까?-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쓰기가 어렵다는 사람도 많지만, 사실 쓸 일은 많지 않습니다. 쓸 일이 있을 때 도움을 받는 것도 쉬운 일입니다. 그러니 쓰기보다는 말하기가 어려운 일일 겁니다. 말하기는 즉각적이어서 준비가 아니라 그 순간에 말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연히 실수가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실수는 회복하기도 어렵습니다. 외국인도 그렇습니다만, 내국인은 더 심각합니다. 외국인이라면 실력 부족이지만, 내국인이라면 단순히 실수로 보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태도의 문제로 보기도 합니다.
말하는 행위에 대하여 연구하는 것을 언어학에서는 화행(話行)이라고 합니다. 화행은 화용론(話用論)의 중요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화용론은 영어로는 ‘pragmatics’라고 합니다. 실용적이라는 말입니다. 문법적으로는 틀리지만, 상황으로 보면 맞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화용론에서는 상황이 중요합니다.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사용해야 하는 표현이 달라집니다. 같은 말이라고 해도 상황에 따라서는 오류가 됩니다. 말하기가 어렵다는 말은 바로 이 화행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주로 연구되는 화행의 종류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감사, 사과, 요청, 거절, 수락, 불평, 칭찬, 축하, 인사 화행 등이 대표적입니다. 살아가면서 수없이 맞닥뜨리는 상황의 화행입니다. 저는 화행을 공부하면서 문화에 따라 화행이 달라지는 것이 무척이나 재미있습니다. 문화에 따라 사과의 방식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문화는 구체적으로 자기 잘못을 설명해야 하고, 어떤 문화에서는 단순히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구구절절 이야기하면 변명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종종 ‘차가 막혀서 늦었다.’는 사과에 더 화가 나는 경우도 있죠.
저는 화행을 공부하면서 어떤 화행이 인간으로서 가장 하기 어려울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일단 인사화행은 쉬워 보입니다. 그러나 인사가 지나치게 형식적으로 바뀌면 진정한 인사는 아닌 겁니다. 상대의 건강이나 행운을 빌어주는 인사를 할 때, 자신의 마음 자세를 돌아볼 일입니다. 그렇게 보면 인사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의 인사에도 수많은 거짓이 있습니다. 그의 행운이나 행복에는 관심이 없지만 그저 마무리 인사말로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감사화행은 비교적 쉽지 않을까요? 고마운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니 그다지 거짓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은 늘 고민해야 합니다. 사과는 어떤가요? 잘못했으니 사과를 하는 것은 당연할 겁니다. 하지만 사과의 순간에도 이게 정말 내 잘못인가에 대한 불만이 많습니다. 형식적인 사과는 상대의 마음에도 닿지 않습니다. 그런 사과의 말을 우리는 방송에서도 엄청나게 봅니다. 어쩌면 제일 솔직한 화행은 불평일 수 있겠습니다. 화가 나서 하는 화행이니 거짓이 숨을 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화가 난다고 다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불평을 잘못하면 인생이 꼬이기도 합니다. 인간관계에서 제일 조심해야 하는 말하기이기도 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 제일 어려운 화행은 바로 칭찬과 축하입니다. 칭찬화행에는 상대의 장점을 살피는 정성이 있어야 합니다. 형식적인 칭찬은 상대를 기쁘게 하지 못합니다. 즉, 고래를 춤추게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고래를 춤추게 하려면 관심과 표현력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칭찬받을 부분이 있다는 생각은 불교 보현행원품의 ‘칭찬여래원’에도 나옵니다. 부처님을 칭찬할 수 있기 바란다는 말인데, 뭇 중생이 부처이니 모든 중생을 칭찬해야 하는 겁니다. 쉬운 일이 아니죠. 그래서 칭찬여래원은 수행의 언어입니다.
칭찬보다 더 어려운 것은 축하입니다. 다른 사람의 성공을 축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축하할 수 있는 사람은 부모뿐이라는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형제간의 축하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축하는커녕 질투가 생기기도 합니다. 오죽하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을까요? 물론 저는 이러한 속담은 반성을 전제로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형제간의 질투가 정상은 아닐 겁니다.
저는 말하기를 공부하면서 모든 말하기는 수행이라고 느낍니다. 감사도 쉽지 않습니다. 사과도 어렵습니다. 사람 사이의 요청이나 거절, 불평이나 칭찬은 모두 수행의 과정입니다. 내가 입 밖으로 낸 말들이 진심이었는지, 상대에게 상처가 된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합니다. 진정으로 칭찬하지 못하고, 사과하지 못하고, 고마워하지 못하고, 진심으로 축하하지 못하는 자신을 날마다 반성해야 하는 겁니다. 화행 공부는 언어학 공부이지만, 화행 공부는 결국 수행이기도 합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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