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2장 임제종의 종지를 밝히다 2
評曰
四料簡에서
奪人不奪境은
待下根하고
奪境不奪人은
待中根하며
人境俱奪은
待上根하고
人境俱不奪은
待出格人하니라.
상대방 근기를 네 부류로 헤아려 후학을 맞이하는 ‘4료간’에서
사람은 죽이나 경계를 죽이지 않는 ‘탈인불탈경(奪人不奪境)’은
낮은 근기를 상대하고
경계를 죽이나 사람을 죽이지 않는 ‘탈경불탈인(奪境不奪人)’은
중간 근기를 상대하며
사람과 경계를 다 죽이는 ‘인경구탈(人境俱奪)’은
높은 근기를 상대하고
사람과 경계를 다 살리는 ‘인경구불탈(人境俱不奪)’은
뛰어난 대장부를 상대한다.
四賓主에서
賓中賓은 學人無鼻孔일세
有問有答이니라.
賓中主는 學人有鼻孔일새
有主有法이니라.
主中賓은 師家無鼻孔일새
唯問在니라.
主中主는 師家有鼻孔일새
不妨奇特이니라.
선지식을 주인에, 학인을 손님에 비유해 나타내는 ‘4빈주’에서
손님 중의 손님 ‘빈중빈(賓中賓)’은 학인이 숨 쉴 구멍이 없으므로
학인의 물음이 있고 선지식의 대답이 있다.
손님 중의 주인 ‘빈중주(賓中主)’는 학인에게 숨 쉴 구멍이 있으므로
학인이 주인 노릇도 하고 선지식과 오고가는 법도 있게 된다.
주인 중의 손님 ‘주중빈(主中賓)’은 선지식에게 숨 쉴 구멍이 없으므로
학인의 물음만 있고 선지식의 적절한 답변이 없다.
주인 중의 주인 ‘주중주(主中主)’는 선지식에게 숨 쉴 구멍이 있으므로
아무 걸림 없이 뛰어난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四照用에서
先照後用은
有人在요
先用後照은
有法在이니라.
照用同時는
驅耕奪食이라.
照用不同時
有問有答이니라.
종사가 학인을 다루는 방편 ‘4조용’에서
먼저 학인의 역량을 알고 법을 쓰는 ‘선조후용(先照後用)’은
어떤 사람만 있을 뿐이요
먼저 법을 쓴 뒤 학인의 역량을 아는 ‘선용후조(先用後照)’는 어떤 법만 있을 뿐이다.
학인의 역량을 아는 동시 법을 쓰는 ‘조용동시(照用同時)’는
밭을 가는 농부의 소를 빼앗고 굶주린 사람의 밥을 빼앗는다.
학인의 역량을 아나 법을 동시에 쓰지 않는 ‘조용부동시(照用不同時)'는
학인의 질문에 따라 종사의 대답이 있게 된다.
四大式에서
正利는
少林面壁類이고
平常은
禾山打鼓類이며
本分은
山僧不會類이고
貢假는
達摩不識類이니라.
깨달음을 얻게 하는 네 가지 방식 ‘4대식’에서
올바른 이익에서 깨달음을 주는 방식인 ‘정리’는
소림굴에서 달마가 벽을 마주하고 앉아 있는 것과 같은 것들이고
평상시 도리에서 깨달음을 주는 방식인 ‘평상’은
화산 스님이 북을 칠 줄 안다는 것과 같은 것들이며
본분에서 깨달음을 주는 방식인 ‘본분’은
산승은 알지 못한다는 것과 같은 것들이고
방편에서 깨달음을 주는 방식인 ‘공가(貢假)’는
달마가 알지 못한다는 것과 같은 것들이다.
四喝에서
金剛王寶劒은
一刀揮斷 一切精解이고
踞地獅子는
發言吐氣에
衆魔腦裂이며
探竿影草는
探其有無 師承鼻孔하고
一喝不作一喝用은
具上三玄四賓主等이니라.
‘할’을 네 가지 쓰임새로 구분한 ‘4할’에서
금강왕 보검 ‘할’은
한칼에 온갖 알음알이를 끓는 ‘할’이고
웅크린 사자가 포효하는 ‘할’은
‘할’ 한 번에 모든 마귀의 머리가 터지는 ‘할’이며
장대로 더듬고 풀 더미 그림자로 기척을 살피는 ‘할’은
스승의 공부를 이을 수 있는지 없는지 살피는 ‘할’이고
한번 ‘할’에 모든 공부가 해결되는 ‘할’은
위에서 말한 ‘3현’과 ‘4빈주’와 같은 것을 다 갖춘 ‘할’이다.
八棒에
觸令返玄
接掃從正
靠玄傷正
苦責罰棒이라.
종사들의 방망이질은 여덟 가지로 나눈 ‘8방’에
조사의 영을 내려 깊은 이치로 되돌아가게 하는 방망이질
헛된 생각을 닥치는 대로 없애 올바른 이치를 따르게 하는 방망이질
깊은 이치라도 내치고 올바른 이치라도 깎아내리는 방망이질
모질게 질책하여 벌로 내리는 방망이질
順宗旨賞棒이요
有虛實辨棒이고
盲枷瞎棒이며
掃除凡聖正棒이니라.
此等法
非特臨濟宗風이라.
上自諸佛
下至衆生
皆分上事니라.
若離此說法이면
皆是妄言이니라.
종지에 어긋남이 없어 상으로 주는 방망이질은 ‘상방(賞棒)’이요
헛된 것과 참된 것을 가려주는 방망이질은 ‘변방(辨棒)’이고
눈 먼 도리깨처럼 함부로 휘두르는 방망이질은 ‘할방(瞎棒)’이며
범부이든 성인이든 지견을 몽땅 없애는 방망이질은 ‘정방(正棒)’이다.
이와 같은 법들은
특별히 임제종의 가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위로는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아래로는 모든 중생에 이르기까지
다 본분에 맞아떨어지는 일들이다.
따라서 여기서 말해 놓은 법을 벗어나게 되면
모두 거짓말이 된다.
출처: 선가귀감, 서산대사 지음, 원순 역해, 도서출판 법공양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普賢. 작성시간 24.05.01 임제의 사료간은 아주 유명 합니다 화엄경의 사법계에 비유 되기도 하고요 주객 이분법 소멸을 다룬 가르침이라 하지요
임제는 제 느낌에 대단히 화엄적입니다 이기영박사님은 임제가 화엄을 깊이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하시는데
제가 보기엔 임제가 화엄 소식을 화엄을 공부해서 알았다기보다는
임제 공부가 그만큼 깊었기에 화엄적이었다고 봅니다
공부가 깊으면 화엄경을 안봐도 점점 화엄적이 돼 가거든요? -
답댓글 작성자보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4.05.02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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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법혜 작성시간 24.05.03 나무마하반야바라밀...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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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청정수1 작성시간 24.05.04 어렵습니다. 한 번 읽어내기만 합니다요.
이럴 수 있음에 감사.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
답댓글 작성자普賢. 작성시간 24.05.06 요런건 모르셔도 됩니다
전문가용으로 서산대사님이 책에 넣으신 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