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2)◆ 소승불교와 대승불교▲ 석가모니는 윤회를 고통으로 여겼다약 2천 5백 년 전 고대
작성자普賢.작성시간24.05.15조회수18 목록 댓글 0《금강반야바라밀경》
(金剛般若波羅蜜經)(2)
◆ 소승불교와 대승불교
▲ 석가모니는 윤회를 고통으로 여겼다
약 2천 5백 년 전 고대 인도에서 불교가 처음 탄생했을 무렵, 인도인의 세계관에는 윤회와 업이 기본 원리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세계는 무한한 과거에서 무한한 미래로 영원히 이어져간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 속에서 태어나고 죽기를 끝없이 반복한다.
이것이 바로 윤회사상이다.
석가모니가 발견한 세계의 기본 원리는 바로 ‘일체개고(一切皆苦)’다.
의지할 곳 하나 없는 몸으로 영원히 윤회(輪回)를 반복해야만 하는 우리의 존재는 본질적으로 고통이라는 의미다.
▲ 소승(小乘)과 대승(大乘)
석가모니는 35세에 깨달음을 얻고 80세에 열반하실 때까지 45년의 긴 시간을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설법하셨다.
그리고 이는 『팔만대장경』이라는 방대한 내용으로 지금껏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석가 부처님이 확립한 이러한 교리는 그 제자들이 이어받으면서 불교는 ‘마음을 분석’하는 작업에 몰두하게 되었다.
석가모니가 열반에 드신 뒤 부처님의 말씀을 정리하는 경전을 수제자 마하가섭이 중심이 되어 500명의 장로가 소집되어 경전 결집을 한다.
이것을 제1차 결집이라고 한다.
그리고 부처님이 입멸 100년 뒤 계율에 대한 해석을 원칙주의자와 현실주의자 사이에 견해가 갈리기 시작해 제2차 결집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뒤로도 승가(僧家, 절)는 상좌부(上座部)와 대중부(大衆部)로 갈라져 부처님 입멸 200년 후 제3차 결집이 있었지만 승가는 계속 분열해 20여 개의 부파(部波)를 형성하게 된다.
이와 같이 부파 불교가 확대되면서 승가는 불교를 문자와 학문을 해석하는데 집중하게 되었고, 결국 대중성을 잃게 되었다.
이에 제가 불자들이 중심이 되어 불교 본래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불교 운동이 일어났다.
이들은 많은 사람을 구제하여 태우는 큰 수레라는 말로 자신들을 대승(大乘)이라 칭하였고, 개인 중심적인 수행을 중시하는 기존의 불교를 소승(小乘)이라 비판했다.
대승불교는 이렇게 자신뿐 아니라 남을 위해 불도를 닦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행을 중시했고, 보살이라는 새로운 수행자 상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대승불교와 더불어 반야부 경전이 등장하게 되며, 《금강경》, 《반야심경》 등이 이 반야부 경전에 속한다.
즉, 《금강반야바라밀경》은 대승불교의 가장 중요한 경전인 것이다.
석가가 타계한지 5백 년 후 마침내 그 정점에 달했다.
그 시점은 예수가 탄생한 시기와도 일치한다.
▲ 소승불교(남방불교)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 부처님은 신앙의 대상이 아니었다.
석가모니는 인간이며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며, 결코 환생하지 않는다.
석가는 부처이며, 부처는 죽으면 열반에 들어간다.
더 이상 어떠한 모습으로도 환생하는 일 없이 영원히 적멸(寂滅)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 두 번 다시 환생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켜 ‘깨달은 자’라 한다.
그러므로 석가모니는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석가의 불교가 추구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수행을 통한 자기 수양’이지 초월적 신과 맺은 계약의 준수가 아니다.
그러므로 석가 불교에서는 순교라는 행위가 성립할 수 없다.
▲ 대승불교 (북방불교)
대승불교는 기독교나 이슬람교와 마찬가지로 외부 세계의 절대적인 존재를 상정한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 절대적 존재와 모종의 계약 관계가 놓이게 되고, 절대자와의 계약을 바탕으로 하는 규율이 탄생된다.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 절대 선으로 간주되기에 순교라는 행위 또한 정당화된다.
대승불교는 아미타불이나 관음보살, 대일여래, 약사여래 등의 초월적 존재를 신앙의 대상으로 설정하고 이를 믿음으로써 구제를 받고자 한다.
대승불교의 탄생으로 인해 불교는 자기 수양의 종교에서 신앙의 종교, 기원의 종교로 변신한 셈이다.
이렇게 ‘절대자를 갖지 않는 종교’로 출발한 불교에 일신교와 동일한 형태를 지닌 절대자의 불교가 된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불교는 대승불교 일색이라고 할 수 있다.
절에 가면 많은 여래와 보살이라는 이름의 불상이 늘어서 있다.
소원성취를 빌고, 학업성취발원기도를 하며 돌아가신 분의 성불을 염원한다.
석가 생전의 불교와 그 후 새롭게 생겨난 대승불교는 이름은 같은 불교일지언정 그 알맹이는 완전히 딴판이다.
차라리 별개 종교라고 생각하는 편이 나을 정도다.
▲ 윤회사상에 대하여
불교의 참된 목적은 윤회에서 벗어나 열반에 드는 것이다.
그러한 논리는 영혼이 불멸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으로 연결되는 논리이기도 하다.
불교를 현대에 되살리기 위해서는 버려야 할 부분도 많다.
버릴 것은 버리고 남길 것만 남긴다는 생각만 한다면 더욱 명쾌한 논리가 이루어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전생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전생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곧 다음 생에서는 현생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결국 체험자인 우리의 입장에서는 결국 윤회란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 된다.
기독교나 이슬람교에서는 인생은 단 한 번뿐이므로 과거의 생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다음 생, 즉 최후의 심판에서 소생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금은 기독교나 이슬람교 쪽이 상대적으로 ‘죽은 후에도 영혼이 남는다.’라고 생각하기 쉬운 교리를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불교는 전생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증거가 되어 윤회를 믿지 못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 것이다.
윤회를 끊는 것이 열반(涅槃)이다.
만약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죽음=끝’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석가가 지향한 열반 그 자체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므로 굳이 불교를 믿을 필요가 없다는 모순에 빠지게 되는 문제가 대두되기도 한다.
참고자료
1) 금강반야바라밀경/법륜/정토출판
2) 불교와 과학, 진리를 논하다/사이토 나루야, 사사키 시즈카/출판 온주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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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잘못 된 부분이 있어 제가 추가 코멘트.
아마 기독인이 책 두권 참고로 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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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샘 감사드려요 그런데 누가 쓴 글인지 모르겠는데 조금 오해할만한 부분이 있어 코멘트 쬐끔만 할께요
1. "대승불교의 탄생으로 인해 불교는 자기 수양의 종교에서 신앙의 종교, 기원의 종교로 변신한 셈이다.
이렇게 ‘절대자를 갖지 않는 종교’로 출발한 불교에 일신교와 동일한 형태를 지닌 절대자의 불교가 된 것이다.
대승불교의 탄생으로 인해 불교는 자기 수양의 종교에서 신앙의 종교, 기원의 종교로 변신한 셈이다.
이렇게 ‘절대자를 갖지 않는 종교’로 출발한 불교에 일신교와 동일한 형태를 지닌 절대자의 불교가 된 것이다."
- 요건 완전 잘못 이해 & 잘못 말씀 입니다
소승이나 대승 구분없이 불교는 절대자가 없지요
설명은 복잡하니 패쓰~
2. "불교는 전생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증거가 되어 윤회를 믿지 못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 것이다.
윤회를 끊는 것이 열반(涅槃)이다.
만약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죽음=끝’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석가가 지향한 열반 그 그 자체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므로 굳이 불교를 믿을 필요가 없다는 모순에 빠지게 되는 문제가 대두되기도 한다."
- 요것도 완전 오해에서 나온 말씀 .
대승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발전된 대승은 윤회 끊으려 하지 않지요 소승에서나 윤회 끊으려 합니다
그리고 조금만 더 말씀드리면
불교의 영혼은 假我입니다 윤회의 주체이긴 하지만 허상이지요 眞我가 아닌 거지요
또 불교는 윤회를 말하기는 하나 有我윤회가 아니고 無我윤회에요(요것도 자세한 설명은 패스 ~)
그리고 우리가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 두가지 이유라 말해요
이유도 패스
좋은 글 보내주셨는데 오해할만한 부분이 있어 추가 설명 드렸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