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문(跋文)
「선가귀감」은 조계 노화상 퇴은 큰스님께서 지으신 글입니다.
아! 슬프게도 약 200년에 걸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의 법이 나날이 쇠퇴하여
참선과 교학을 하는 무리들이 저마다 다른 소견을 내고 있습니다.
교학을 으뜸으로 삼는 사람들은
문자찌꺼기에 맛을 붙여 부질없이 바닷가의 모래알만 셀 뿐
대소승을 막론하고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
‘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 스스로 깨쳐 들어가는 길’이
있는 줄 알지 못합니다.
참선을 으뜸으로 삼는 사람들은
‘스스로 천진한 성품만 믿어 도를 닦아 깨칠 것이 없다’하여
부처님 세상을 이해한 뒤에서야 비로소 발심하여
점차 온갖 행을 닦아 나가야 한다는 뜻을 알지 못합니다.
선과 교가 어지럽게 뒤섞여
모래와 금을 가리지 못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이는 「원각경」에서
“중생은 본래 부처님이었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는
본디 미혹이나 깨달음이란 없는 것이라고 여기어
인과를 부정하여 완전히 무시한다면 바로 삿된 소견을 갖게 되고
“오랫동안 닦아 무명을 끊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는
참성품이 망념을 내는 것이라고 주장하여
영원한 참성품을 잃어버린다면
이 또한 삿된 소견을 갖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아! 위태롭습니다.
부처님의 도가 바로 전해지지 못하는 것이
어찌 이다지도 심하단 말입니까?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을락 말락 이어지니
마치 한 올의 머리카락으로 천 근의 무게를 달 듯
그 명맥이 거의 땅에 떨어져 이어갈 길이 없습니다.
다행히 우리 노스님이 서산에서 10년 동안 바쁘게 공부하며
틈틈이 50여 권의 경전과 논서와 어록을 보시다가
짬짬이 요긴하고 간절한 말들이 있으면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그 시절 몇몇 제자들이 공부에 대해서 물으면
이 내용들을 가르치며 한결같이 양떼를 몰듯
넘치는 사람은 눌러주고 뒤떨어진 사람은 호되게 채찍질하여
깨달음의 문 안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노스님의 가르침이 이처럼 간절하였지만
몇몇 둔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이
법문의 수준이 높고 어렵다고 까탈 부리는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노스님께서는 그 어리석음을 안타깝게 여겨
다시 각 구절마다 주해를 달아 차례차례 풀이해 놓으셨습니다.
많은 글들의 내용이 하나로 쭉 이어져 뜻이 잘 통하니
팔만대장경의 요점과 다섯 종파의 근원이
모조리 여기에 다 갖추어지게 되었습니다.
말씀마다 이치에 맞고 구절구절이 종지에 어긋남이 없어
이에 편협했던 사람은 원만해지고 막혔던 이는 시원스레 통하게 되니
참으로 이 글은 선과 교의 본보기라 할 만하고
부처님의 법을 알고 실천하는 좋은 보약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노스님께는 늘 이 공부에 대해서
한 말씀 반 구절이라도 마치 칼날 위를 걷듯
문자로 기록될까 염려하셨으니
어찌 이 글을 세상에 널리 알려
당신의 솜씨를 내보이고 싶어 했겠습니까?
보원(普願) 스님이 이 글을 정서하고 의천(義天) 스님이 교정을 하니
정원(淨源), 태상(太常), 법융(法融) 스님들이 머리 숙여 절을 하며
“전에 없던 훌륭한 글들이다.”라고 찬탄하였습니다.
뜻을 같이 하는 몇몇 사람이 함께 수중에 있던 돈을 털어
목판을 새기고 이 글을 세상에 알려
큰스님께 받은 은혜를 갚기로 했습니다.
부처님이나 조사스님의 가르침은 깊고 넓은 바다와도 같습니다.
그러나 누가 이 바다 속에 들어가
용의 구슬을 찾고 귀한 산호를 캐낼 수 있겠습니까?
바다에 들어가는 것이 육지처럼 자유롭지 않으니
물만 바라보고 탄식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추려낸 공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을 깨우쳐 준 노스님의 은혜야말로
산같이 높고 바다처럼 깊습니다.
설사 천 번 만 번 뼈와 살이 으스러지도록 이 목숨을 바친들
어찌 노스님의 은혜를 털끝만치라도 갚을 수 있겠습니까?
천리 밖에서 이 글을 보고 들어도
놀라지 않고 의심하지 않으면서 받들어 읽고 보배로 삼는다면
참으로 천 년 뒤에도 꺼지지 않는 밝은 등불이 될 것입니다.
만력기묘(1579)년 봄
조계종 遺孫 惟政 口訣에 절하고
삼가 跋文을 쓰다.
출처: 선가귀감, 서산대사 지음, 원순 역해, 도서출판 법공양
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普賢. 작성시간 24.05.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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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普賢. 작성시간 24.05.28 우리나라 현대 불교는 사실 서산 불교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조선에 들어 명맥 끊어진 불교를 일으켜 세운 스승님 이시지요
선가귀감만 봐도 안목이 어떠하셨는지 바로 알수 있어요
우리나라 불교는 고려 때 지눌
조선의 서산 아니셨으면 아마 명맥이 끊어졌을 겁니다 -
작성자법혜 작성시간 24.05.29 사명대사께서 스승인 서산대사의 공덕에 감사하며 쓰신 글이군요?
감사합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_()()()_ -
답댓글 작성자보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4.05.31 예
유정 사명대사님 이십니다._()()()_ -
작성자연무심 작성시간 24.06.03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