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대승의 마음 又
老龐은 云하되 但願空諸所有언정 切勿實諸所無라 하니 只了得這兩句하면 一生參學事畢이라. 今時 一種剃頭外道가 自眼不明하고도 只管教人으로 死獦狙地 休去歇去라. 若如此休歇이면 到千佛出世라도 也休歇不得이니 轉使心頭迷悶耳니라.
방(龐) 거사는 “다만 있는 모든 것을 비울지언정, 절대로 없는 것을 실물로 삼지 말라”고 했으니, 오직 이 두 마디만 알면 일생의 공부를 마칩니다.
오늘날 머리 깎은 외도들이 자기 눈을 밝히지도 못하고, 다만 사람들에게 죽은 고슴도치처럼 꼼짝 말고 마음을 쉬고 또 쉬라고만 가르칩니다. 만약 이처럼 쉰다면 많은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신다 하더라도 참으로 마음을 쉴 수가 없습니다. 마음만 더욱 답답할 것입니다.
又 教人으로 隨緣管帶하되 忘情默照리하나 照來照去 帶來帶去에 轉加迷悶이어 無有了期니라. 殊失祖師方便하여 錯指示人일새 教人으로 一向 虛生浪死로다. 更教人으로 是事를 莫管하고 但 只恁麼歇去하라. 歇得來에 情念不生하리니 到恁麼時에 不是冥然無知라. 直是惺惺歷歷이라하나 這般底는 更是毒害로 瞎却人眼하니 不是小事로다. 雲門은 尋常에 見此輩하고 不把做人看待라. 彼既自眼이 不明이어 只管將冊子上語하여 依樣教人하나 這箇作麼生教得이리오. 若信著這般底이면 永劫에 參不得이라.
또 사람들에게 인연을 따라서 공부를 챙기되 다른 생각이 없이 말없이 비춰 보라고만 가르칩니다. 하지만 오고 가면서 마음을 비추고 챙겨 보아야 마음만 더욱 답답하여 공부를 마칠 기약이 없습니다. 조사의 방편을 모조리 잃고서 사람들을 잘못 가르치기에, 그저 그들을 헛되게 살다 죽도록 하는 것입니다.
다시 또 사람들에게 “생사의 일을 상관하지 말고 오직 이렇게만 쉬어가라. 마음을 쉬면 중생의 알음알이가 생기지 않으리니, 이러한 때에 다다르면 흐리멍텅하여 조금도 아는 것이 없는 명연무지(冥然無知)가 아니라 바로 성성역력(惺惺歷歷)이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도리어 해를 끼치는 것으로서 사람의 눈을 멀게 하니 작은 일이 아닙니다.
저는 평소에 이런 무리를 사람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은 자기의 눈이 밝지 못하기에, 다만 경전이나 조사 어록의 글귀만을 갖다가 본보기로 삼아 다른 사람들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떻게 공부를 가르치는 일이 되겠습니까. 이런 사람을 믿는다면 끝내 참된 공부는 얻을 수 없습니다.
雲門도 尋常에 不是不教人으로 坐禪하되 向靜處做工夫이나 此是應病與藥이라. 實無恁麼指示人處니라. 不見가. 黃檗和尚이 云하되 我此禪宗은 從上相承以來로 不曾教人으로 求知求解라 只云 學道라하거늘 早是接人之詞라. 然이나 道亦不可學이라. 情存學道하면 却成迷道니라. 道無方所기에 名大乘心이라. 此心은 不在內外中間이어 實無方所이니 第一에 不得作知解어다. 只是說汝而今情量處로 為道이니 情量이 若盡하면 心無方所니라. 此道는 天眞하여 本無名字어늘 只為世人이 不識하여 迷在情中이라.
저도 할 수 없이 평소에 사람들에게 좌선을 시키되 고요한 곳에서 공부하도록 가르칩니다. 그러나 이것은 병에 맞춰 약을 지어 주는 것입니다. 실제는 사람들에게 이러이러하게 지시하여 줄 곳은 없습니다.
그대는 보지 못했습니까. 황벽(黃檗) 화상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선종에서는 예로부터 법을 전해 온 뒤로 사람들에게 알음알이를 찾도록 가르치지를 않았다. 다만 도를 배우라고 했을 뿐이다. 이 말이 벌써 사람들을 공부시키는 말이다. 그러나 도 또한 배울 수 없는 것이다. 도를 배우는 데에 생각을 둔다면 도리어 도를 망친다. 도에는 방향과 처소가 없기에 대승(大乘)의 마음이라 한다. 이 마음은 몸 안팎과 중간에도 있지를 않다. 실로 방향과 처소가 없다. 무엇보다도 먼저 알음알이를 짓지 말아야 한다. 다만 지금 너희가 쓰는 마음을 도라고 할 뿐이다. 마음 쓸 곳이 사라지면 마음의 방향과 처소가 없다. 이 도는 천진하여 본디 드러난 이름이 없다. 다만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여서 알음알이 속에 파묻혀 있을 뿐이다.
所以로 諸佛이 出來하여 說破此事하되 恐你不了하여 權立道名하니 不可守名而生解也이니라. 前來所說에 瞎眼漢의 錯指示人은 皆是認魚目을 作明殊하여 守名而生解者라. 教人管帶는 此是守目前鑑覺而生解者라. 教人으로 硬休去歇去는 此是守忘懷空寂而生解者라. 歇到無覺無知하면 如土木瓦石相似리니 當恁麼時 不是冥然無知는 又 是錯認方便解縛語而生解者라.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오시어 “너희들이 알지 못할까 걱정이 되어 방편으로 도라는 이름을 세우니, 이 이름에 매달려 알음알이를 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앞에서 “눈먼 자가 사람들을 잘못 가르친다”고 말한 것은 모두 썩은 고기의 눈을 박은 구슬이라 하며 이름에 매달려서 알음알이 내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챙기도록 가르친다”는 것은 눈앞의 감각에만 매달려서 알음알이 내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억지로 마음을 쉬어가도록 가르친다”는 것은 모든 생각을 잊고서 공적(空寂)한 경계에 매달려 알음알이 내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을 쉬어가다 무각무지(無覺無知)에 이르러서 흙이나 나무 또는 기왓장과 같아지나, 이때의 경계는 흐리멍텅하여 아는 것이 없는 명연무지(冥然無知)가 아니다”라는 것은 또한 방편으로 얽힌 매들을 푸는 말을 잘못 이해하여서 알음알이 내는 것을 말합니다.
출처: 禪 스승의 편지 , 대혜 종고 『서장』, 원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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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普賢. 작성시간 24.07.19 又 教人으로 隨緣管帶하되 忘情默照리하나 照來照去 帶來帶去에 轉加迷悶이어 無有了期니라. 殊失祖師方便하여 錯指示人일새 教人으로 一向 虛生浪死로다. 更教人으로 是事를 莫管하고 但 只恁麼歇去하라. 歇得來에 情念不生하리니 到恁麼時에 不是冥然無知라. 直是惺惺歷歷이라하나 這般底는 更是毒害로 瞎却人眼하니 不是小事로다. 雲門은 尋常에 見此輩하고 不把做人看待라. 彼既自眼이 不明이어 只管將冊子上語하여 依樣教人하나 這箇作麼生教得이리오. 若信著這般底이면 永劫에 參不得이라.
또 사람들에게 인연을 따라서 공부를 챙기되 다른 생각이 없이 말없이 비춰 보라고만 가르칩니다. 하지만 오고 가면서 마음을 비추고 챙겨 보아야 마음만 더욱 답답하여 공부를 마칠 기약이 없습니다. 조사의 방편을 모조리 잃고서 사람들을 잘못 가르치기에, 그저 그들을 헛되게 살다 죽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문장 포함 다음 문장도 모두 공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는 말씀.
말없이 비춰보는 게 공 도리에 빠지거나 멍하게 참선하는 걸 말함
당시 묵조선이 아마 이런 폐해에 빠진 듯.
그래서 대혜는 간화선을 창시 -
작성자普賢. 작성시간 24.07.19 그대는 보지 못했습니까. 황벽(黃檗) 화상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선종에서는 예로부터 법을 전해 온 뒤로 사람들에게 알음알이를 찾도록 가르치지를 않았다. 다만 도를 배우라고 했을 뿐이다. 이 말이 벌써 사람들을 공부시키는 말이다. 그러나 도 또한 배울 수 없는 것이다. 도를 배우는 데에 생각을 둔다면 도리어 도를 망친다. 도에는 방향과 처소가 없기에 대승(大乘)의 마음이라 한다. 이 마음은 몸 안팎과 중간에도 있지를 않다. 실로 방향과 처소가 없다. 무엇보다도 먼저 알음알이를 짓지 말아야 한다. 다만 지금 너희가 쓰는 마음을 도라고 할 뿐이다. 마음 쓸 곳이 사라지면 마음의 방향과 처소가 없다. 이 도는 천진하여 본디 드러난 이름이 없다. 다만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여서 알음알이 속에 파묻혀 있을 뿐이다.
---망상을 내지 않지만 또한 망상이 없지도 않은 경게를 이름.
도를 배운다는 것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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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법혜 작성시간 24.07.19 결국 공 도리에 빠지지 말라는 말씀이군요. 공도 잘 모르면서 공도리에 빠지는 걸 짐작하려니 헷갈릴 수밖에 없네요.
오랜만에 보현선생님 말씀 들으니 좋네요. ^^
가르침 감사드립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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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청정수1 작성시간 24.07.19 댓글 가르침들. 오고 가는 질문과 답변들.. 감사합니다.
어렵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
작성자보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4.07.19 법혜님 덕분에
보현선생님의 자상한 가르침까지
모두모두 고맙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