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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普賢.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8.05 의상 역시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찾아 굉장히 구도를 했으나,
화엄에 딱 가로막힌 느낌.
화엄 이상을 보지를 못하셨던 같습니다.
더구나 의상 때는 40화엄이 없던 때라 화엄을 보현행원과 연결시키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서 화엄의 교학은 알았는데 실천법을 몰라 무지~~~ 헤맨 흔적이 여기저기 있지요.
당시 중국에 유행하던 동산법문(참선)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관법도 관심 있다가 결국은 정토신앙으로 화엄을 연결시키려 한 듯합니다.
그래서 의상을 엄정융합(嚴淨融合)으로 화엄을 실천의 가르침으로 만든 분으로 봅지요 -
작성자 普賢.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8.05 원효는 여러 경론을 공부한 뒤에 인생 후반부에 화엄으로 갑니다.
공부가 얕을 때는 화엄의 가치를 모르다가 공부가 익어가면서 화엄적으로 변하며 화엄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원효는 화엄뿐 아니라 여러 경론에 열려 있어요.
화엄 말고도 아는 것이 많습니다.(의상은 화엄밖에 모름)
제가 늘 말씀드리지요?
공부가 깊어지면 전부 화엄적으로 변한다고.
화엄을 몰라도 보는 관점, 생각하는 경계, 말과 행동 이런 것들이 전부 화엄적으로 변해요.
원효는 그런 스승님입니다.
원효는 기신론이 경론 중에 최고로 알던 분이지요.
그런데 기신론도 화엄과 닮은 점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후대 중국 화엄종은 오히려 기신론에 영향 받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