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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8.13 때와 곳은 앞의 편지와 같습니다.
원순스님께서 고향이 마산이라고 들었습니다. 문맥을 읽다보면 서부경남의 사투리 어투가 있어서 표준말처럼 보이나 어색한 부분도 있네요.
"비록 이번 생에 화두를 뚫지 못한다 하더라도 목숨을 마칠 때에는 반드시 나쁜 업에 끄달려서 나쁜 길에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다음생에 이번 생의 원력을 따라 반드시 반야 가운데에서 현재 있는 그대로의 공부를 이어갈 것입니다. 이것은 확고한 이치로서 의심할 것이 없습니다."
공부해햐 하는 이유이네요.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
답댓글 작성자 普賢. 작성시간24.08.14 체와 용이 따로인줄 알기 때문이죠 이건 중국 불교계의 고질적 병폐인듯
보현행원품이 중국에서도 유명했지만 그들의 화엄 이해는 어디까지나 先悟비로법계 後修보현行海 즉 먼저 깨닫고 그후에 보현행원 하겠다는 거지요 이건 한국 불교에도 지금까지 내려오는 고정 관념 입니다 그래서인지 무비스님이 그렇게 화엄을 좋아하고 화엄경 강의를 하시지만 화엄경 강의에 보현행원은 없어요 비로법계와 보현행원을 따로 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주위에서 보듯 오직 깨달음 먼저 입니다 성철스님도 그랬어요 깨친 후에 보살행이든 보현행이지 깨치기 전에는 그 분들께는 오직 깨침만 있어요 깨침이 보살행과 따로 있는게 아닌데, 수행을 보면 완전 따로 입니다
그러니 불교는 기독교 같은 실천행이 없다는 소리를 줄곧 듣지요 비로법계와 보현행원이 둘이 아닌데, 지금까지도 불교계는 둘로 알거든요? 이건 보조지눌도 마찬가지
제가 보기엔 오직 원효만이 둘이 아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