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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普賢.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8.27 따라서 보현행원을 하면 신심이 솟지 않을래야 솟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내 생명이 부처님 생명이며,
나에게 무한 부처님의 위신력이 샘솟고 있다, 는 것을 매 순간 찰나찰나 확인하지요.
또 확인됩니다.
그러니 뜨거운 믿음, 뜨거운 신심이 솟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벅차요 그냥!
그리고 자비가 막 솟아올라요!
고해를 헤매는 이웃들의 모습에,
눈물이 나도 모르게 솟는 겁니다.
그래서 불청지우,
즉 중생이 원하지 않아도, 도와달라 말하지 않아도 내가 먼저 그들에게 달려나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실은 그렇게 하다보면 늘 호구 취급 받지만요...
우리 큰스님의 신심이 남달랐다는 것도,
물론 큰스님의 근기가 워낙 뛰어나신 것도 있지만,
큰스님께서 보현행원을 하셨기 때문도 있을 겁니다. -
답댓글 작성자 普賢.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8.27 재밌는 것은 원효사상의 대가이신 불연 이기영박사님께서 불청지우란 말이 나오는 경전을 소개하시며 유마경, 승만경만 드시고 화엄경은 말씀 안 하시더군요.
사실 불청지우는, 유마경에는 그냥 잠깐 스쳐가는 식으로 나올 겁니다(제 기억으로).
승만경 역시 제 기억에 불청지우가 깊게 새겨져 있지 않아요.
그런데 화엄경은 불청지우가 비교적 길게, 그리고 두 번에 걸쳐 나와요.
십행품에 나온 걸로 기억되는데, 확인해 봐야겠어요.
그렇게 두 번씩이나 나오는 불청지우를 불연선생께서 언급 안하셨다는 것에 대해 저는 조금 의아합니다. -
작성자 普賢.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8.28 불청지우는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불교는 우리에게 끝없는 불청지우를 원하는데(사실 불청지우를 원하는 경전은 위에 말한 세 곳밖에 없을 것임),
보살의 자비심에서 나오는 불청지우을,
보살 수준이 안되는 중생들은 올바로 받아들이지를 못합니다.
특히 감사가 없어요.
그냥 저 사람은 자기가 원해서 불청지우가 되는 줄로만 알아요.
그래서 자기가 원해서 한 것인데 내가 왜 감사해야 하느냐는 것이지요.
은혜로 생각지도 않습니다.
그런 걸 요구한 건 전혀 아니지만 아무리 불청지우라 해도 서운한 마음이 들 때가 있지요.
오죽하면 화엄경에도 중생들은 어리석어 은혜 갚을 줄을 모른다는 보살의 한탄이 나오겠습니까.
그리고 호의가 지속되면 권리가 된다는 말이 있듯,
불청지우가 계속 되면 상대방의 도움을 당연시 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쩌다 조금만 안 도와주면 섭섭하다며 뒷담화를 늘어 놓기 일쑤지요.
본의 아니게 상대방을 감사도 모르고 은혜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기 쉬워요.
제가 평생을 살며 요즘에야 느낍니다. 불청지우가 얼마나 고단한 삶인가 하는 것을.
그리고 어리석은 중생에게는 오히려 분노만 키울 수 있다는 것도. -
작성자 普賢.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8.28 윤복희씨 노래 '여러분'에 이런 가사가 있어요.
여러분이 힘들고 외로울 때 내가 위로해 주고 벗이 되어 줄께...
이렇게 쭉 벗이 되어주는 내용이 이어지다가,
맨 마지막에는 이렇게 묻습니다.
그런데 내가 외로울 땐 누가 위로해주지?
이렇게 물을 때 노래는 잠시 멎습니다.
그리고 다시 여러분!
하면서 노래가 끝으로 이어집니다.
이 노래가 찾아보니 1979년에 나온 노래인데,
그때 저는 의과대학 4학년일 때로 이 노래를 듣고 참 그렇겠다, 하는 생각을 했어요.
노래처럼 우리가 외로울 때 벗이 되어주는 이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막상 그 분이 외로울 때는 누가 벗이 되어줄까요?
해보면 알지만, 외로운 분의 벗이 되어준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까다로울 때가 많아요.
그것은 그 분이 나빠서가 아니라, 자격지심에 그러는 것이지요.
그런 걸 다 감안하고 받아주고 벗이 된다는 것은 참 힘듭니다.
그럼에도 노래는 그런 벗이 되어준다고 하지요.
그런데 막상 본인이 아플 때는 누가?
여기 나오는 주인공이 바로 불청지우입니다.
이 노래는 목사가 되신 윤항기씨가 작사 작곡했을텐데,
이런 노래를 보면 윤항기씨 역시 진리에 눈뜬 구도자이신 듯 -
작성자 법혜 작성시간24.08.28 염념상속, 무유간단, 무유피염이 왜 그리도 보현행원품에 반복되어지는지...
조금만이라도 행원을 해보면 그 이유를 알 수있을 겁니다.
자식에게도 그러기 쉽지 않은데 하물며 생판 남, 그것도 감사를 모르고, 무례하기 짝이없는 남에게 행원을 계속한다는 것이 얼마나 지치고 피곤한 일인지...
사실 보현행원품은 불청지우의 노래라 해도 과언이 아닐성 싶습니다.
얼마나 피하고 싶고, 에라 모르겠다...중간에 그만두고 싶고, 본의든 아니든 망각하기 쉬운(망각하고 싶은) 일인지요.
그래서 보현보살님께서는 단락 단락마다 그렇게 절절히 당부하고 또 당부하고 계시는 걸지도요.
말로만 보현행이 아니라 진정으로 보현행을 한다는 것은 이렇게 힘든 일이니 보살 아니고는 이루어지기 힘든 일이란 생각이 듭니다만
작은 불도 불임에 틀림없으니 쉽고 작은 행으로부터 우리의 보현행은 시작되고, 계속되어야 할까 봅니다.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보현행원력으로,
염념상속, 무유간단, 무유피염으로...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