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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普賢.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8.28 이런 뇌과학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불교의 원(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원으로 시작하는 보현행원 수행법이,
얼마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가르침인지도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지요.
제가 감히 단언하건데,
다른 기존의 불교 수행에는 원이 없어요!
사마타 위빠사나, 사념처, 염불, 참선, 절, 주력 독경 등등,
일체 수행에 원을 먼저 강조하는 수행, 없어요.
(염불에는 원이 있지만 그건 정토왕생원이라 사실 보현행원의 원에는 비할 수가 없을 겁니다)
보현행원이 얼마나 보편적이고 그렇지만 또한 뛰어한 가르침인지,
이런 뇌과학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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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법혜 작성시간24.08.28 좀 엉뚱한 말씀이 될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면에서 기독교가 오히려 원이 더 활성화되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가르치거든요.
고해성사에 들어가서도 이웃을 사랑하지 못한 행위에 대해 고백하는 것이 많습니다. 누구에게 거짓말 하고, 속이고, 다투고, 화내고..등등.
이웃을 섬기고 공경하지 못한 죄가 거의 태반일겁니다.
아, 또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고 하느님을 사랑하지 못했으니 좀 더 잘해야겠다....
다짐하며 나오곤 한 것이 기억속의 제 기독교 신앙이었습니다.
참 보현행원과 닮아 있지요. -
답댓글 작성자 普賢.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8.28 그렇죠 그렇게 볼 수도 있죠.
그런데 원이란 건 누가 시켜서, 또는 죄가 되니까 하는 건 아닙니다.
이기영박사님은, 원이란 스스로 솟아나서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지요.
그니까 누가 해라 해서 하는 게 아니라, 또는 당위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니까 하는 게 아니라,
이걸 하지 않고는 내 스스로 견딜 수가 없기에 스스로 하는 것이 원이다, 이런 말씀이지요.
자기가 못 견뎌서 하는 거라, 이겁니다.
보현행원의 원이 그런 것인데, 불연선생님은 정확히 지적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