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검색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법혜 작성시간 24.10.24 계와 정의 수행에 항상 통찰지, 반야가 작용한다는 부분이 흥미롭습니다.
윗글에선 주의집중이란 말이 나오다가 마지막에 통찰지란 말이 나오는데 같은 뜻이겠지요?
자비심이나 보살행 실천여부를 떠나서 깨달음이라는 부분에 국한시켰을 때
궁극에 도달할 최후처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브라만교나 혹은 상좌부 불교가 대승불교와 다른 점이 이것인가 싶습니다.
비상비비상처까지의 선정 어디쯤에 도달하는 것을 최후처라고 생각하는 것이 브라만교, 상좌부 불교가 아닌가 합니다.
혹은 상좌부 불교에서 최후처라 일컫는 아라한의 경지일 것 같기도 하고요.
브라만교는 차치하고라도
니까야는 초기경전인데
초기경전을 공부한 상좌부 불교에선 왜 이런 부분(통찰지로서 관찰하고 선정을 떠나는 것)이 간과되었을까요?
선정을 떠난 경계가 혹시 아라한의 경계일까요? 금강경에 보면 그런것 같기도 합니다만...
현대 힌두교 가르침을 보니
알아차림을 알아차리는 그것이 바로 그것이다라고 하는데
화두, 염불 등 수행에서 이것이 무엇인가? 염불하는 자가 누구인가? 의심하는 그 자리와 이러한 가르침이 같은 뜻인것 같기도 하고 아닌듯 하기도
좀 헷갈립니다.
-
답댓글 작성자연무심 작성시간 24.10.28 _()_
-
작성자누리달 작성시간 24.10.25 이.뭣고?
이~~~
이것이 무엇인가?
염불하는 이것이 무엇인가?
무엇인가? 묻고 있는 이것이 무엇인가? -
작성자연무심 작성시간 24.10.28 고맙습니다.
정혜쌍수인데
선정을 너무 부각시키는 일부 불교에서 이런 글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진정한 불교이고 초기 대승불교운동가들의 주장이 바로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고 이해해 봅니다.
우리 나라 불교는 상구보리 후 하화중생이거나 상구보리에 너무 치우쳐 있지 않나 하는 제 생각입니다.
보현행원이 널리 펴져 상구보리 하화중생이 동시에 이루어지기를~
마하반야바라밀...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