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가 80 되어도 개업하고 있을지도 - 고희 아침에
회갑에 안성에 내려왔는데 어느새 9년이 지나 올해 만 69, 우리 나이로 고희를 맞습니다.
‘인생칠십고래희’라는 싯구를 처음 들은 것이 고등학교 때로, 그때는 정말 고희까지 사는 분들이 귀했습니다. 그래서 고래(古來)로 드물다(稀)하여 나이 70의 다른 이름이 고희(古稀)였습니다. 당시 남자들 평균 수명이 55세 전후였으니(제 친구들 아버님이 제가 고등학생 때 제법 돌아가셨음) 사실 고희는 까마득할 수밖에. 저 역시 70이 까마득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벌써 70! 도무지 믿어지지 않습니다.
백세를 산다 해도 이제 남은 건 30여년. 회갑 이후 10여년을 보면 30여년도 금방일 터. 게다가 통계를 보면 건강 수명은 70 넘어 80을 향하면 급격히 줄어 80 이후의 건강 수명은 형편없는데, 저 역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니 막막합니다. 6자와 7자의 무게가 사뭇 다르게 다가오는데, 혹시 8자나 심지어 9자라도 달게 되면 더할 것 같습니다.
고희와 더불어 올해는 제가 부처님 공부를 한 지 딱 50년 됩니다. 74년 대학교 1학년 봄에 불교학생회를 가입한 것이 그 시작이니 정말 딱 50년입니다. 그때 제 서원(誓願, 바라는 것) 중의 하나가 죽을 때를 알아 주위에 인사 모두 하고 웃으면서 가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 큰스님들의 열반 주류가 좌탈입망(坐脫入亡, 앉아서 죽는 것)인데 지나고 보니 좌탈입망한 큰스님은 적어도 제가 아는 한(법정스님은 젊을 때 당신 도반이 나이 40여에 좌탈입망하셨다고 글을 쓰신 적이 있음) 지금까지 한 분도 아니 계셨습니다. 법좌에 올랐을 때야 생사 해탈을 수없이 말씀하시지만 막상 열반에 이르러서는 상당수 큰스님이 저희같은 범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도(?) 뒤늦게야 알았습니다. 그만큼 세상과의 이별은 쉽지 않고 만만한 일이 아닌 모양인데, 저같은 흉내만 내다 만 사람은 정말 큰 일입니다. 그래도 다시 반성하고 좀더 발심(發心)한다면 그래도 좌탈입망 흉내(?)는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회갑 때는 빠르면 65세, 늦어도 70세 때는 은퇴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어림도 없을 듯. 아마 80이 되어도 여건만 되면 여전히 근무하고 있을 것 같은데, 그 생각을 하니 정신이 아찔합니다. 60 지나 70 오는 걸 보니 전광석화인데, 80 까지는 그렇다 쳐도 그 후는 또 어떡할지, 아주 어질어질합니다.
오래 전 이야기지만 천국을 다녀온 분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들은 적이 있습니다. 독실한 크리스챤인 그 분은 근사체험인지 뭔지로 천국을 다녀오시고 이야기를 이웃들에게 전하신 바, 천국에 가 보니 다들 이승에서 하던 일들을 거기서도 하고 있던데 그 중 가장 인기 좋은(?) 분이 이승에서 의사하고 오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의사는 거기서도 의사 노릇하고 있고(천국에도 아픈 분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보기도 좋고 인기도 좋았다고 합니다.
이 시각 내게 정말 중요한 게 뭔지, 청진기는 그걸 몰라 습관처럼 붙잡고 있는 건 아닌지...저도 죽는 날까지 청진기 만지다 가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고희 아침에
*좌탈입망은 사실 크게 어려운 것(?)은 아니라 합니다. 초기 불교의 선정(禪定)은 크게 9단계로 나뉘는데, 네 번째인 4선정에 들 수 있는 분은 좌탈입망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즉 4번째 선정에 들어 생명의 끈을 놓는 것입니다. 그러니 좌탈입망이 깨달음이나 성불의 충분 조건은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4선정은 결코 쉽게 이를 수 있는 곳은 아니니 좌탈입망 할 수 있음은 대단한 수행자라 하겠습니다.
*과거 베트남전이 한창일 때 당시 베트남 정권에 항의하여 대도시 중앙에서 소신공양하신 스님이 있습니다. 동영상을 보면 불길 속에서도 단정한 좌선 자세이셨는데, 아마 4선정에 드셨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