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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普賢.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4.09 아무 댓가 없이 누구에게나 공경하면 그 공경이 보시바라밀 입니다 공경 못할 사람 공경 못할 일에까지 공경하면 그것은 인욕 바라밀 입니다 그런 공경을 어떤 환경에서도 이어 나가면 그것이 곧 정진 바라밀 입니다 거짓말 없이 한결같이 공경 찬탄하면 그것이 또한 지계 바라밀 입니다 원행을 하다 보면 저절로 사마타 위빠사나가 이뤄지니 그것이 곧 선정 바라밀 반야 바라밀 입니다 이러면 보현행원이 곧 유바라밀 입니다
보현행원이 수행이 안될 리가 또 아닐 리가 없습니다 -
작성자 법혜 작성시간24.04.09 눈에 보이는 모든 것, 현실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의 실체가 공한 것이고,
그래서 그 공성을 체험하고 아는 것이 수행의 목적 즉 깨달음이라고 한다면....
윗글에서 언급한 화엄경의 모든 수행법과 일상적인 가르침이 부질없는 짓이 되고 말겁니다.
공성도 모르면서, 반야도 모르면서 중생놀음, 허깨비 짓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색즉공에 대해서는 그 경계에 도달하기 위해 다들 부단히 애를 쓰시는 반면에
공즉색에 대해서는 조금 무심한 것이 우리 수행풍토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중생세계로 나투어져 있는 이 모든 것이 여몽환포영이라 하더라도
그 역시 불성의 나툼이라 진리 자체임이 맞는게 아닐지요?
그러니 몽환포영을 부처님의 나툼으로 보고 정성을 다해 살아내는 것이 보현행자의 자세가 아닐까 합니다.
깨달음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니 화엄경에선 당연한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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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普賢.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4.09 법혜 광덕큰스님의 열반송이 그렇지요
울려서 법계를 진동하여 철위산이 밝아지고/ 잠잠해서 겁전(劫前) 봄소식이 겁후(劫後)에 찬란해라/ 일찍이 형상으로 몰형상을 떨쳤으니/ 금정산이 당당하여 그의 소리 영원하리
보세요
큰스님의 분상에서는 겁전 봄소식 즉 반야 공의 理의 세계(理法界)가 겁후에(事법계) 찬란하죠 바로 반야가 꽃을 피운 겁니다
반야가 꽃을 피운 게 바로 화엄 또는 화엄 세계죠
그리고 큰스님의 분상에서는 몰형상 즉 형상없는 세계를 형상으로 떨친 겁니다 이건 정확한 화엄반야의 소식에요
몰형상은 반야
큰스님이 떨치신 형상은 보현행원
그렇게 됩니다
보현행원으로 큰스님은 반야를 우리에게 직접 보여주신 거지요
그리고 이것은 화엄경 광명각품 게송
여래 몸은 색상으로 된게 아니지만 모든 색상 갖춰져 있어 세간에서 마음대로 본다는 가르침과 정확히 일치해요
금강경은 색으로 부처님을 못본다는 걸 일방적으로 강조하지만 화엄은 못보기는 하지만 또 색이 아니면 어디서 부처님 뵈리 라고 말합니다
양변을 떠난거죠
여래非爲相爲體 但是無相적멸법
身相위의悉구족 세간隨樂皆得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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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普賢.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4.10 인류의 보편행 일상 행을 떠나 수행이 있은 적이 없건만 사람들은 무슨 대단한 비법 특별한 것이 수행이라 생각
티벳 불교에서는 공경을 배우기 위해 절을 최소 십만번 많게는 50만 번을 하고서야 본격 수행을 시작한다는데 바로 공경을 수십만 번 하는건 왜 수행이 아닐까요 꼭 절을 수십만 번 해야 공경을 할수 있을까요 그리고 사실 지금 안 나오는 공경이 수십만 번 절을 한다고 없는 공경이 나올까요
제가 매일 300배 7년간을 하루도 안 쉬고 했으니 50만 배는 넘었을 듯 한데 그럼에도 공경이 저같은 경우는 절을 해서 더 일어나지는 않은 듯합니다
공경 찬탄 공양 이런거는 사실 무위법입니다 한마음 사무칠때 바로 일어나는 거에요
뭘 더해서 또 더해야 일어나는 거 아닙니다
그래서 한마음 사무칠때 모든 일상사가 수행이 됩니다 그게 두엄이 말한 生來의 行에요 뭘 인위적으로 더해서 이는 행이 아닌 겁니다 이런걸 놔 두니까 공경하러 삼천배 하러가자 하는 것이지요 바로 지금 당장 이웃을 공경하면 되는데 그건 안하고 삼천배 하는걸로 공경하려 드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