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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행원품이 중요한 이유 - 이 현상계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공도 무아도 연기도 아니다

작성자普賢.| 작성시간24.08.29| 조회수0|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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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普賢.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8.29 우리는 깨친 분 수행 깊은 분들이 의외로 단명 하시는 것을 자주 봅니다

    또 치매나 뇌졸중 같은 것이 와서 폐인으로 지내시는 것도 흔치는 않지만 보기도 합니다

    거기에 대한 제 의견입니다
  • 작성자 普賢.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8.29 우리 몸의 건강은 우리 몸의 수십조 세포가 서로 조화를 이룰 때 찾아 옵니다

    우리 세포는 하나하나가 모두 개별 생명체 입니다

    우리와 똑같이 오래 살고 싶고 건강히 살고 싶어 합니다 또 맛있는 것 많이 먹고 행복하고 싶어 합니다 일만 할게 아니라 쉬고 싶습니다

    이런 세포의 마음을 모르고 우리가 우리 몸을 혹사할때 세포 각각의 건강은 무너지고 몸의 조화는 깨집니다 그것이 병입니다

    이는 마치 독재자 폭군이 그 나라를 무너뜨리는 것과 같습니다

    나라고 하는 것은 사실 수십조 세포 생명을 거느린 임금과 같은 존재입니다

    백성을 편안히 할때 임금도 편안하고 나라가 태평성대가 되듯
    내가 내 몸의 세포 생명들을 편안하게 하고 서로 조화를 이루게 할때 우리 몸은 평생 건강해집니다

    세상 원리가 그렇습니다
  • 작성자 普賢.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8.29 깨닫는다는 것은 공 무상 무아 연기 중도를 아는 것입니다 이것은 알음알이(解悟)도 있고 온 몸으로 아는 證悟도 있는데 증오는 身證입니다 머리만 아니라 온 몸이 깨닫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시다시피 공 무상 무아 등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이것은 현상계를 사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공 무상 무아가 현실에서 전개되야 하는데 대부분의 깨친 분들은 현실에서 전개를 시키지 못합니다 당연히 형이상학이 됩니다 구름잡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공 무상 무아만 알아서는 현상계의 문제를 해결할수가 없습니다 병이 걸리면 그냥 공 무상 무아의 자리만 관하는 것이 고작(?)입니다
  • 작성자 普賢.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8.29 또 수행이라고 하는 것이 어찌보면 몸의 조화를 이루는 것과는 반대 방향이 많습니다

    수행이 깊을수록 범부의 일상과는 동떨어진 경우가 많지요

    대표적인 것이 무문관 수행입니다

    무문관 수행자라 하면 보통 수행을 한 것이 아닌데 실지로 무문관 수행을 한 후 심한 관절염으로 고생하거나 심지어 암이 발생하여 돌아가신 분도 있다고 합니다

    수행이 몸의 조화를 역행해서 일어난 일로 저는 봅니다

    그러니 수행하다 죽은 사람 없다, 이런 말씀은 자칫하면 일종의 혹세무민 큰일 날 말씀입니다 그냥 수행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씀으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 작성자 普賢.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8.29 석가모니부처님이 그 험한 고행을 하시다 멈추시고 우유죽 하나를 드신 후 그 날 깨치셨습니다

    수행을 하더라도 순리와 역행하는 수행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름지기 삶과 수행이 조화를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 작성자 普賢.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8.30 공, 무상 무아를 알고 살아가시는 분도 있고(깨치신 분),
    반면 그런 거 하나도 모르고 살아가시는 분(범부)도 있어요.

    그런 알면 해야할 일이 당연히 이웃을 공경, 찬탄, 섬기는 일입니다.
    공경 찬탄 섬김이 바로 공 무상 무아가 현상화된 현상계의 모습이거든요?
    그러니까 공 무상 무아를 아는 분은 반드시 공경 찬탄 섬김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공 무상 무아 같은 거 조금도 모르는 분들도,
    현실에서 그냥 이웃을 공경 찬탄 섬길 수 있어요.
    그니까 알든 모르든, 깨치든 못 깨치든 우리는 이미 공 무상 무아의 삶을 현상계에서 이루고 있는 겁니다.
    다만 알고 하느냐 모르고 하느냐의 차이만 있지요.

    그런데 공 무상 무아를 알아도 공경 찬탄 섬김을 못하는 이도 부지기수입니다.
    그저 공 무상 무아를 입으로만 되뇌이며 사람들에게 강의만 하는 거지요.
    이 세상은 다 허망해, 나라는 것은 없어!
    이런 강의를 수많은 현학을 동원해서 증명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없어요!
  • 작성자 법혜 작성시간24.09.02 그러니 참 이상하기도 합니다.
    똑같이 깨달음을 얻으셨다는데 어떤 큰 스님께는 자비심이 흘러나오고, 보현행이 나오는데
    어떤 분에게서는 그런경계를 볼 수가 없거든요.
    그런데 그런 두 분이 깨달음을 강조하시는 건 또 똑같아요.

    재가 불자들은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깨달음을 얻으면 자비심이 저절로 나오는 것 아닌가? 저 스님을 뵈면 그런데...
    이 스님을 뵈면 반드시 그렇지도 아닌것 같고....
    모르겠다. 일단 깨달음을 얻으면 알아지겠지.

    그렇게 보리심을 내고 일상에서 시간을 내어 수행을 해보지만
    재가 불자가 출가자만큼 수행을 하기가 어디 그리 쉽나요?
    지레 제 풀에 지쳐서 아, 복없는 이번 생은 그냥 흉내내는 정도로만 해야겠다....
    큰스님들의 대단한 고행과 수행담은 깨달은 스님들을 우리와는 상관없는 전설로 만들고 맙니다.
    우리 삶과 수행과는 괴리가 생기고 맙니다.

    조금 다른 말씀이긴 한데
    자비심을 잘 내기 위해서 수행을 한다는 분을 주변에서 뵌적이 별로 없습니다.
    저는 불교가 생명력을 갖고, 개인이 고통에서 해탈하기 위해서는 시작을 그렇게 하는 것이 맞지 않나.. 생각하거든요.
    부처님의 출가 동기를 봐도 그렇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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