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사정이 있어 대궐에서 사가(私家)로 내보냈거나 내쳐진 궁녀라 하더라도 상통(相通)하면 중죄로 다스렸는데, 그 이유는 대궐에 살 때 왕이나 왕세자 등과 관계를 맺은 전력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어서 평생을 홀로 살아야 하였다.
선조(宣祖)때 오성(鰲城) 이항복(李恒福)이 "지신(知申)"이라는 관직에 있을 때 집 청지기가
궁녀와 상통하는 죄를 범하여 벌을 받게 되었는 데 불쌍히 여겼으나 해결할만한 계책이 없었다.
이때 마침 왕이 오성을 불렀다.
오성은 일부러 늦게 들어가서 입시하니 왕이 "경은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왔는고 ?" 하고 물었다.
"상명(上命)을 받자옵고 들어오는 데 종로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떠들고 웃는 것을 보게 되어
신(臣)이 이상하게 생각하여 발길을 멈추고 들으니 한 사람이 말하기를, 말벌이 모기를 만나
'내 배가 너무 불러 수놈이 찔러야 배설을 하겠으니 시험삼아 너의 그 날카로운 주둥이로
구멍을 뚫어 주면 어떠한가?' 하자 모기가 말벌에게 '네 말이 어찌 나쁘다고만 할 수 있겠나.
그러나 요즈음 들리는 말에 이승지(李承旨)의 집 청지기가 본래부터 있는 구멍을 뚫었어도
중벌을 면치 못하는데, 만약 없는 구멍을 뚫는다면 그 죄 더욱 무거우리니 내 어찌 감히
감당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말을 듣느라고 이렇게 늦었사옵니다. 대죄를 지었사옵니다."
이에 왕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것은 동방삭의 골계(滑稽)에 속하는 말이로다.그 청지기의 죄를 용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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