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야의 어린 시절 추억
― 하얀 나라가 된 겨울날
12월의 어느 날이었다.
아침부터 창문을 두드리던 눈송이는 밤새 쉬지 않고 내렸고, 세상은 어느새 새하얀 솜이불을 덮은 것처럼 변해 있었다.
열두 살 희야는 이불 속에서 눈을 뜨자마자 창문으로 달려갔다.
"와아!"
창밖 풍경을 본 순간 작은 입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마을 앞 큰길도, 끝없이 펼쳐진 논도, 저 멀리 우뚝 서 있는 산도 모두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때였다.
마을 스피커에서 익숙한 이장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늘은 폭설로 인해 학교가 휴교합니다. 아이들은 안전하게 집에서 지내세요."
희야는 두 손을 번쩍 들며 소리쳤다.
"학교 안 간다!"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것처럼 마음이 두근거렸다.
희야가 살던 곳은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산골마을이었다.
집 앞에는 넓은 논이 펼쳐져 있었고, 산 중턱에는 오래된 절 청강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아름다운 마을이었지만, 이날만큼은 정말 동화 속 세상 같았다.
희야는 두꺼운 털모자와 장갑을 끼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발을 내딛을 때마다 뽀드득, 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마치 겨울의 노랫소리처럼 들렸다.
논으로 향한 희야는 깜짝 놀랐다.
눈이 허리까지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조심조심 걸어가던 희야는 문득 장난기가 생겼다.
"에라, 모르겠다!"
뒤로 벌러덩 누워 버렸다.
푹신!
마치 구름 위에 누운 것 같았다.
하늘에서는 하얀 눈송이가 천천히 내려왔고, 눈부신 겨울 하늘이 희야를 감싸 안았다.
세상은 온통 하얗고 조용했다.
그 순간 희야는 자신이 눈의 나라 공주가 된 것만 같았다.
잠시 후 동네 오빠와 언니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희야야! 눈사람 만들자!"
모두 함께 눈을 굴리기 시작했다.
커다란 눈덩이는 점점 더 커졌고, 어느새 희야 키만 한 눈사람이 완성되었다.
당근으로 코를 만들고,
숯으로 눈을 만들고,
빨간 목도리까지 둘러 주었다.
완성된 눈사람은 마치 살아 있는 친구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희야는 두 손을 모아 작은 소원을 빌었다.
"눈사람아, 오래오래 녹지 마."
겨울바람이 살랑 불어왔다.
마치 눈사람이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았다.
해가 저물 무렵,
산 위의 청강사는 노을빛과 눈이 어우러져 황금빛으로 반짝였다.
희야는 눈사람 옆에 서서 한참 동안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차가운 겨울날이었지만 마음만은 세상 누구보다 따뜻했다.
그날의 눈은 언젠가 녹아 사라졌고,
눈사람도 봄이 오기 전에 흔적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논에 벌러덩 누워 바라보던 하얀 하늘과,
친구들과 함께 만들었던 눈사람,
그리고 세상이 온통 하얀 나라가 되었던 행복한 하루는
어른이 된 지금도 희야의 마음속에 가장 반짝이는 겨울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날의 눈은 녹았지만, 그날의 행복은 아직도 내 마음에 쌓여 있다." ❄️🤍